존재만으로도 충분한 너에게
가끔 내 영혼은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다고 느껴져. 나는 일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내 안의 야망, 이 모든 걸 감당하려 애쓰며 고무줄을 한껏 늘여 놓지.
그리고는 1밀리미터라도 놓는 순간 모든 게 무너져 버릴까 봐, 고무줄이 손가락을 아프게 칠까 봐 온 힘을 다해 붙들고 있어.
우리는 영원히 여름처럼 빛나고, 만개하며, 24시간 내내 풍성한 열매를 맺으라고 요구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 하지만 해조차도 하늘을 식히기 위해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가잖아. 왜 우리는 스스로에게 노을이 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걸까?
네 마음이 아끼는 도자기 찻잔이라고 상상해 봐. 매일 그 안에 몇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있지. 누군가의 무심한 말, 불안한 소식, 지하철 긴 여정의 피로 같은 것들 말이야.
우리는 이 물방울들을 알아채지 못하다가, 어느 날 문득 표면 장력이 깨지고 사소한 일—예를 들어 커피가 떨어졌거나 신발 끈이 풀린 것 같은—하나 때문에 물이 넘쳐흐르게 돼.
그런 순간 우리는 자신의 나약함을 꾸짖지. 하지만 물이 넘친 건 신발 끈 때문이 아니야. 찻잔 안에 더 이상 채울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지.
치유는 그저 물웅덩이를 닦아내려는 시도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찻잔이 잠시 텅 비어 있도록 허락하는 데서 시작돼.
이것이 바로 영혼의 공간이고, 마음의 자유이며, 스스로에게 잠시 멈춤을 허락하는 것이야.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차를 청소해야겠다는 생각 대신 그저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그런 마음이지.
우리는 공장의 기계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건 그들이 '포기했거나' '푸른 세상을 만드는 임무에 실패해서'가 아니야.
겨울을 이겨내고 새로운 봄을 위한 힘을 축적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야.
네가 느끼는 무기력함, 이불속에 숨어 전화도 받지 않고 싶은 마음, 그건 게으름이 아니야. 그건 네 안의 겨울이야. 네 영혼이 "나에게는 잎을 떨굴 시간이 필요해. 내 뿌리를 지켜야 해"라고 말하는 방식이지.
삶은 아주 긴 문장과 같아. 만약 문장 부호 없이 계속 쓰인다면, 읽는 이는 숨이 막힐 거야.
오늘 저녁을 너의 쉼표가 되게 해 줘.
쉼표는 이야기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야. 그저 잠시 숨을 고를 기회를 주고, 글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뿐이지.
집으로 가는 길에 칼로리가 너무 많다고 망설이던 달콤한 음료를 사 마셔 봐.
시끄러운 번화가 위에 걸린 달을 바라봐. 아무도 보지 않아도 달은 빛나고 있잖아.
선반 위의 먼지는 하루 더 그대로 두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낡고 지쳐도 괜찮다고, 조용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해 줘. 빛나지 않아도 소중할 수 있어.
오래된 스웨터는 새것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데, 그건 네 몸의 형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야.
오늘 너는 누구도 구원할 필요 없어. 심지어 너 자신조차도. 그저 존재하면 돼. 창가에 놓인 작은 선인장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살아 있고, 빛을 향해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