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전
이 이야기는 내가 탱크복서로 불리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나는 어려서부터 많은 운동을 해왔었다. 합기도, 주짓수, 복싱 등 많은 운동을 해왔었다.
운동선수만큼의 재능은 아니었지만 재능이 있었다 생각했다. 힘을 쓰는 일은 자신 있었고 실력이 금방 늘었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운동시간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코로나도 겹쳐서 운동과 점점 멀어졌다. 코로나가 끝나고 대학에 진학 후 군대에 갔다 왔다. 나의 몸은 예전 같지 않았고 많이 무거워졌다.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떻게 살을 뺄지 고민하게 되었고 가장 재밌게 했던 운동이 뭔가 생각해 보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복싱이었다. 복싱만큼은 게임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했다. 혼자서 몰입하여 1시간 내내 힘든 줄도 모르고
샌드백을 쳤던 경험 관장님과 함께 미트를 쳤던 기억 등등 좋은 추억이 많았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집 근처 복싱장에 등록했다.
첫날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운동을 하였다. 오랜만에 하는 운동은 죽을 맛이었다. 고작 1시간을 하지만 땀에 옷이 젖어 마치 모래주머니를 찬 거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열심히 2주를 다녔다. 내가 다니는 체육관은 매주 금요일마다 스파링을 한다. 관장님이 국가대표 출신이고 관원들을 가르치는 스파링을 한다. 나는 2주째 되는 금요일 링 위에 올라갔다.
종이 울리고 나는 관장님을 향해 돌진했다. 사실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을 거다. 내 주먹이 관장님에게
닿을 줄을..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내 라이트 훅이 관장의 왼쪽 얼굴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나는 놓치지 않고 바디샷과 원투로 연계하여 깔끔하게 클린히트를 연계했다. 지켜보던 관원들은 환호를 했고 관장님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내비쳤다. 그 뒤 관장님은 진지하게 임하셨고 나는 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맞았다. 정말 아팠지만 참고 앞으로 돌진했다. 그렇게 라운드가 끝나고 관장님은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때 관장님은 웃으며 너에게 재능 있다고 말하였고 마치 탱크같이 복싱한다고 말했다. 이 날이 내가 탱크복서라고 불리는 첫날이었다. 그날 나는 내 주먹이 관장님에게 닿았다는 사실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그 기억이 반복재생된다. 사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도 도파민이 나온다. 그만큼 기쁜 날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나는 이제 운으로 가 아닌 실력으로 관장님이랑 스파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올라왔다. 그리고 때마침 대회가 2026년 3월에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관장님이 나한테 적극 추천을 하였다. 사실 나는 대회에 나가기 싫었다.
대회에 나가게 되면 체중관리도 해야 될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힘든 훈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차례 거절했다. 하지만 친하게 지낸 관원분이 신청서에 내 이름을 작성하였고 나는 거절을 하지 못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취소할 수 있었지만 속으로 하고 싶었나 보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니 남은 기간 열심히 준비했다. 대략 대회까지 2개월 남은 상태였고 1개월은 학교를 다니면서 준비해야 했다. 가장 문제는 체중이었다. 나는 85kg으로 신청하였지만 그때 몸무게는 92kg이었다. 그때부터 먹는 거를 줄이고 개강하기 전 매일 가서 운동을 하였다. 그때 운동 중인 나는 한국에서 가장 힘든 1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힘든 사람도 많겠지만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했다. 입에서는 침이 말라 숨쉬기도 힘들었고 근육은 굳어서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다리는 간신히 버텨서 서있는 상태. 나는 이렇게 훈련을 진행했다.
그렇게 학기가 시작하고 나의 몸무게는 87이었다. 살도 빠졌지만 근육량이 늘었다. 몸은 힘들지만 92kg의 나였을 때보다 가벼운 맘이었고 대회 우승에 대한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학업이 바빠 매일 운동을 가지는 못했지만 점심을 적게 먹고 밤에 뛰면서 체력을 길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대회 당일이 되었다. 아침에 바나나를 간단히 먹고 관원들과 함께 대회장으로 갔다. 그날 가장 떨리는 시간이 왔다. 계체량 측정이다. 요기서 떨어지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리는 것이다. 줄을 서서 혈압을 제고 대기표를 받았다.
계체량 측정줄에 서있을 때 나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내 귀에 들릴 정도로 긴장되었다. 짧지 않은 대기가 끝나고 체중계 위에 올라갈 차례가 되었다. 나는 두려움 맘을 다잡고 올라갔다.
결과가 나오자 나는 굉장히 후회했다. 몸무게는 82kg였다. 무려 3kg나 더 뺀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걱정이 환희가 되고 기분이 상기되면서 좀 더 밥을 먹을 거를 굉장히 후회했다. 고작 3kg 차이지만 그것조차 체급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사히 계체량 측정이 끝나고 국밥을 먹으러 갔다.
나의 순서는 43번째 굉장히 뒷 순서였다. 그렇게 참아왔던 배고픔을 국밥으로 달래고 다시 우승에 대한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 마음도 잠시 계속된 대기에 마음과 몸이 지쳐갔다. 쉴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았고 관객석에 앉아 쪽잠도 자기 어려웠다. 그렇게 힘든 대기를 보내고 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다행히 미트를 치면서 몸을 풀어 몸 컨디션을 올렸고 잠이 왔지만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이제 결승전 차례다. 그렇게 내 차례가 오고 나는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착용하고 마치 전쟁에 나가듯이 경기장 위로 올라갔다. 밑에서 관장님과 코치님이 이렇게 말했다. "그냥 탱크처럼 밀어버려서 죽여버리라고" 나는 이 말을 기억하고 조용히 경기 시작종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상대는 180 정도 되는 거구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붙어서 때리면 무너지지 않겠는가.
나는 상대를 향해 달려 나갔고 연습했던 거처럼 바디샷을 꽃아 넣었다. 상대가 나를 때리든 말든 나는 묵묵히 양손으로 대포를 날렸고 상대는 주춤했다. 그렇게 1라운드가 끝났다. 하지만 나는 실수를 해버렸다. 흥분을 해서 체력분배를 못해버렸고 지쳐버렸다. 하지만 상대도 분명 지쳤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2라운드를 올라갔다. 나는 똑같이 달려들었고 이것은 나의 가장 큰 실수가 돼버렸다. 상대가 던진 주먹에 우연히 카운터를 걸려버렸다. 운도 실력이라 하지 않는가 강하게 카운터를 맞은 나는 급격하게 밀리기 시작했고 정타를 많이 허용했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끝가지 물고 늘어져 싸웠다. 그렇게 나는 판정승까지 가게 되었다.
심판이 나와 상대를 중앙으로 부른다. 굉장히 긴장됐다. 나의 왼손을 잡고 상대방의 오른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제발 내 손을 들어주길 기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냉정했다. 심판의 판정은 2대 1 1표 차이로 졌다. 나는 분명 억울한 부분도 있었지만 참고 예의를 잊지 않고 인사하고 내려갔다. 어쩌겠는가 결과는 나왔고 바뀔 수 없는 것인데 경기가 끝나고 얼굴이 아파왔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배는 고파왔다. 나는 매달을 수여하고 올라가서 제육도시락을 먹었다. 얼굴이 부어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데 그냥 욱여넣었다. 머릿속은 이번 경기만 이겼으면 금메달인데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지금 이 자리 오기까지 너무 많은 응원을 받았기에 더더욱 아쉬웠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하룻밤 자고 지나가면 과거의 일이 되지 않는가. 나는 집으로 돌아가 일찍 잠을 청했고 그날은 아무 생각 없이 깊게 잘 수 있는 날이었다.
나는 내년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생각이다. 과정은 무척 힘들었지만 배운 점도 많았다. 지금은 대회가 끝났음을 즐기고 다시 열심히 준비해 우승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 탱크복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