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를 곧 떠난다고?

도깨비. 대학. 엠마

by 필리소


줄리안과 도깨비는 옛날 얘기를 하며 밤낮 없이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니, 그래서.. 친구 너는 그럼 그 비오는 날 이후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고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건데? 계속 랭캐스터에 있던건 아니였다며.”


“아, 그게.. 난 지금 뉴욕에 있어. 사실 그 당시 나는 한국에 있었을때의 내가 아니었어. 미국으로 건너온것 자체가 우리 종족에게 무리였다고 하더라고. 처음에는 못 느꼈었는데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약해져 갔었지. 사람 몸으로 변하는게 불가능 해질 지경이었어.”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이렇게 건강 해졌어?”


“아.. 하하.. 그게. 그.. 흐흠. 도깨비 죽으라는 법은 없더라. 이곳에서 엄청난 존재들 눈에 띄게 되어서 도움을 받게되었어.”


“엄청난 존재들? 그게 뭔데?”

갈수록 이상한 얘기만 하는 도깨비가 말 하지 않고있는 존재들이 궁금해서 계속 물었지만 도깨비는 끝끝내 입을 닫았다.


“중요한건 그들이 아냐. 줄리안. 너만 생각해.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도울수 있어.”


“난 괜찮아 친구.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어. 언젠가부터 나도 모를 특별한 힘이 나네? 그래서 나 고등학교도 졸업을 했어. 대학을 가보려고해.”


“대학? 너.. 나이가?”

“조기 졸업 했어. 난 지금 16세 이지만 대학을 못 들어갈 나이는 아니야. 그레이스와 션 선생님께서 도와주고 계셔. 무엇보다.. 난 여기서 빨리 떠나야해.”


도깨비는 아무말 없이 줄리안을 쳐다만 봤다.

흠…

‘특별한 힘이 난다고? 온라인 공부를 해서 16세에 고등학교를 혼자힘을 마쳤다..라. 이거, 샤칼 찰라흐의 파워가 발현을 했나본데?’


도깨비는 에이든과 피터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 “그 꼬마는 일단 두고 보고 네 기력이나 빨리 되찾자, 도깨비야.”

— “그래. 너 이러다가 곧 소멸하겠다. 꼬마에게는 에이든이 샤칼 차할르를 심어 줬어. 만일 소년이 의지가 생기기 시작하면 그 힘은 알아서 발현이 될꺼다.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점이 오면 아무도 두렵지 않은 어른으로 성장 할꺼야.”


샤칼 찰라흐가 제대로 발현을 하게되어서 자신의 기를 숨길줄 알게 되면 제아무리 도깨비라고 할지라도 줄리안의 흔적을 찾을수 없을거라고 했다.


그래서 마음이 급해졌었다.

‘빨리 줄리안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밀이 없이 친해져야 줄리안이 또 사라져 버리지 않지. 적어도 줄리안에게 나는 믿을만한 도깨비가 되어야해. 생명의 은인에게 보은은 꼭 한다.’


구박하는 피터와 에이든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먹으라는거 다 먹고, 하라는 훈련 다 해가며 2년간 미국형 도깨비로 거듭났다. 이젠 영어도 꽤 하고, 미국 사람의 모습으로도 탈바꿈이 가능하다. 에이든 회사에서 직함도 얻었다.

줄리안이 살고 있는 세상에 어울리는 도깨비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줄리안, 그래서.. 대학은 어디로 가기로 했는데?”

“아직 결정은 안했어. 선생님들께서 도와주고 계셔.”


===

그레이스는 줄리안을 위해 동부와 서부의 여러 대학에 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든 학교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션과 그레이스는 이를 축하하기 위해 집에서 작은 파티를 열었다. “줄리안, 여기 앉아봐.” 그레이스가 환한 미소로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세 개의 봉투가 들려 있었다.


“우리가 네 미래를 위해 세 곳의 학교로 추렸어.” 션이 줄리안을 향해 봉투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윌리엄스, 칼텍, 와싱턴 유니버시티. 어디로 가고 싶니?”


줄리안은 잠시 봉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멀리 가면 주인 남자로부터 멀어질 있겠지... 하지만 너무 멀리 가면 선생님들과도 멀어지잖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요. 윌리엄스 대학으로 가고 싶어요.”


션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응? 세인트루이스로 안 가? 왜 하필 매사추세츠야? 넌 멀리 가고 싶어 했잖아?”


줄리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네... 사실 멀리 가고싶어요. 주인 아저씨가 저 못찾는 곳으로 가고싶지만. 그래도 동부에 있고 싶어요.”


그레이스는 줄리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왜 동부야? 멀리 가면 더 안전할 텐데.”


줄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멀리 가면 주인 아저씨로부터 더 멀어질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선생님들과 너무 멀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덧붙였다.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라면, 선생님들이 가끔 찾아와 주실 수도 있잖아요.”


그레이스는 줄리안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윌리엄스라... 정말 좋은 학교야. 네가 거기서 많은 걸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윌리엄스는 작지만 강한 학교야. 네가 잘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줄리안은 선생님들의 격려에 작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스무 살까지만 죽도록 살아보기로 했잖아... 스물한 살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는 선생님들과 너무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파티가 끝난 후, 션과 그레이스는 줄리안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줄리안,” 그레이스가 입을 열었다.

“학교 다니다가 군대를 가겠다고 했었지?”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학교 다니다가 군대에 갈 생각이에요.”


그레이스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가능하면 학교는 마치고 군대를 가지 그러니? 졸업을 하고 가면 장교로 갈 수 있어. 학교 다니다가 군대를 가면 다시 돌아와서 공부 마치기가 힘들어질 거야.”


션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아, 줄리안. 졸업을 하고 나서 군대를 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물론 네 선택이지만, 우리가 보기엔 그게 더 좋은 길일 것 같아.”


줄리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선생님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다.


“알겠어요,” 줄리안이 조용히 대답했다. “일단 생각해볼게요.”

“그레이스, 아직 시간이 있잖아. 줄리안, 군대 얘기는 나중에 나이가 되면 그때 다시 의논 해보자꾸나. 자, 그럼 우리 언제 떠날까?”

“네? 선생님, 어딜 가시는 거예요?”

“네 학교에 짐 옮겨주러 가야지!”

“학교요? 기숙사..말씀 이신가요?”


그레이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줄리안. 이제 윌리엄스로 가야지. 학교측에 네 입학 결정을 빨리 알리고 장학금과 정부 보조금 신청도 해야 하니까 이번 주 안에 마무리하자꾸나.”


션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아. 그리고 학교가 있는 동네로 직접 가서 네가 지낼 기숙사와 주변 환경도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줄리안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물었다.

“학교를 .. 이렇게 빨리 간다고요? 학기 시작하려면 아직도 멀었을텐데.. 기숙사로 가는것 아닌가요?”


그레이스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응, 뭐 결국은 기숙사로 들어가야겠지만, 우선 네가 윌리엄스에 입학한다는 걸 학교쪽에 알려 네 입학을 확정 짓고 필요한 서류들을 보내야지. 그것밖에 남은 일이 없으니 이곳을 빨리 떠나는게 낫지 않겠어? 뭐하러 학교 시작할때까지 기다려?”


줄리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선생님 말대로 학교가 결정된 이상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는 좋다.’ 그는 속으로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션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윌리엄스면 그리 먼 곳도 아니야. 운전해서 한나절이면 갈 수 있단다.”


그레이스도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션과 내가 학교까지 운전해서 데려다줄 거야, 줄리안. 넌 이제 이 동네에서 정말로 사라지는 거야. 마음 단단히 먹어. 아무도 네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간다는 걸 몰라. 우리 생각에도 주인 남자가 너 운전면허증 만들어 준 게 이상해. 되도록이면 빨리 떠나자.”


줄리안은 선생님들의 따뜻한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참으며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그런데 학교는 가을에 시작되잖아요. 9월이 되어야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을텐데.. 지금은 아직 봄인데요.”


그레이스는 줄리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윌리엄스에 션 은사님이 계셔. 널 부탁할 거야.”


줄리안은 놀란 표정으로 션을 바라보았다.

“아, 맞네요. 션 선생님 졸업하신 학교라면서요? 벌써 꽤 오래 되었을텐데 아직도 연락하시는 교수님이 계셨던 거예요?”


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래된 인연이지. 내가 윌리엄스를 추천했던 이유 중 하나야. 그분께 네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혹시 윌리엄스에 오게 되면 흔쾌히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어.”

“사실 우리는 이 학교에 원서를 넣으면서도 네가 되도록 멀리 가고싶어할줄 알고 기대도 안했었던다.”


줄리안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님들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레이스는 줄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줄리안, 윌리엄스는 네게 정말 좋은 선택이 될 거야. 학교도 시골에 있어서 사람들을 많이 안 만나도 되고, 무엇보다 우리와 멀지 않은 곳이라 우리가 언제든 찾아갈 수 있어.”


션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아, 그리고 네가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에게 연락할 수 있잖아. 그레이스 말대로 하자. 어짜피 고등학교 졸업식은 안 갈거잖니. 학교도 정해졌고. 내가 위딘 교수님께 부탁해 놓을께. 선생님과 사모님 두분만 사시는 집인데 손님용 방이 두개나 있어. 네 사정을 말 하면 교수님께서 도와 주실꺼야. 그 집에서 여름을 지내자. 그리고 돈을 벌도록 해.”

“돈이요?”

“동네 식당에서 일을 하던가, 주유소에서 일을 하던가, 동네에 사는 학생들 수학 과외를 한다던가. 몇개월간 일을 하면 용돈 벌이는 될꺼야.”


그렇다. 자신은 이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사라져야 했다.


===

[엠마의 방]


차르르... 탁탁. 차르르... 탁탁탁.


엠마의 손가락이 타로 카드를 섞으며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녀의 방은 은은한 라벤더 향초의 향기로 가득 차 있었고, 창밖으로는 늦은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엠마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오늘은 줄리안이 엠마에게 마음이 생겼을까요? 타로야 알려줘,"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손가락이 카드를 섞는 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타타닥. "오늘은... 줄리안이 나에게 어떤 마음일까... 줄리안이 나에게 마음이... 생겼을까..."


쏴악. 엠마는 카드를 펼쳤다. 툭툭 툭툭툭. 그녀의 손가락이 카드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파이브 오브 펜타클... 역방향," 그녀는 첫 번째 카드를 뽑아들며 중얼거렸다. "나인 소드... 무너진 타워..." 엠마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카드들이 오늘 다 왜 이래!"


엠마는 잠시 고개를 들어 방 한켠에 진열된 다양한 타로 카드 덱들을 바라보았다. 크고 작은 카드 케이스들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가장 작은 크기의 카드덱을 선택했다.


처음 나온 파이브 오브 펜타클 역방향 카드를 손에 들고 생각에 잠긴 엠마는 보조 카드들을 뽑기 시작했다.


"펜타클 26번, 나인 소드..." 그녀의 손가락이 카드를 쓰다듬었다. 사각, 팟 팟.


"흠..." 엠마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오늘도 카드는 줄리안이 엠마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엠마는 카드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해석을 시도했다.


'줄리안이 바쁘고 분주한 어떤 일을 끝을 내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 고립에서 탈출을 한다... 조만간 이동을 하게 될 수가 생긴다...'


바닥 카드들을 계속해서 넘기던 엠마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새로운 출발? 이동?'


엠마의 마음속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줄리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녀는 카드들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며, 이 예상치 못한 메시지의 의미를 파악하려 애썼다.


엠마는 우연히 타로를 접한 이후, 그 신비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호기심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타로의 매력에 깊이 매료되었다. 지난 몇 년간 그녀는 틈나는 대로 타로를 공부하며, 돈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카드 덱을 모았다. 방 한쪽에는 크고 작은 타로 카드 덱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각 덱은 그녀가 걸어온 시간과 노력을 상징하는 듯했다.



오늘도 엠마는 책상 앞에 앉아 타로 카드를 펼쳤다. 방 안은 은은한 촛불의 빛으로 가득 찼고, 조용한 음악이 배경을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줄리안에 대한 질문을 품고 카드를 섞었다. 차르르... 탁탁. 손끝에서 느껴지는 카드의 질감이 익숙했다.


"이번 달 안에 줄리안에게 새로운 출발이라는 운이 들어와 있다니..." 엠마는 중얼거렸다. 그녀가 뽑은 카드들은 분명히 새로운 시작과 이동을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타로... 그래, 지가 잘 맞아봤자 카드놀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달래듯 생각했다.


줄리안이 갑자기 떠난다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늘 이곳에 있었고, 어디론가 떠날 이유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카드는 계속해서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새로운 출발, 고립에서 벗어남, 이동...


엠마는 다시 한번 카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새로운 출발이라..." 그녀의 손끝이 바닥에 놓인 마지막 카드를 천천히 넘겼다.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이 미묘하게 떨렸다.


'혹시...' 엠마는 머릿속에서 여러 가능성을 떠올렸다. 줄리안에게 무언가 큰 변화가 다가오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자신의 오해일 뿐일까? 그녀는 답을 찾기 위해 다시 한번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엠마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줄 안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여자아이. 줄리안처럼 똑똑하지도 않았고, 외모가 눈에 띄는 것도 아니었다. 공부도 뛰어나지 않아,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만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타로를 접하게 되었고, 그저 장난삼아 시작했던 것이 예상 밖으로 재미있었다.


타로의 세계에 발을 들인 후 몇 년 동안 엠마는 꾸준히 공부했다. 틈만 나면 관련 서적을 뒤지고, 돈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카드 덱을 모았다.처음 1년은 혼란스러웠다. 카드의 의미를 외우고 배열법을 익히는 것조차 벅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점점 타로 해석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이제는 단순히 키워드를 암기하는 것을 넘어, 카드가 전하는 미묘한 상징과 흐름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그녀는 온라인에 타로 리딩 채널을 만들어 매주 일반 리딩 영상을 올렸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정확하다"는 구독자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이어졌고, 채널은 점점 성장했다. 하지만 엠마는 여전히 자신이 풋내기라고 생각했다. 개인 상담을 할 수준은 아니었고, 그저 재미 삼아 즐기는 초보 타로 리더일 뿐이었다.


줄리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시 뽑은 세 장의 카드가 여전히 그녀를 당황하게 했다. 두 장이나 등장한 열 개의 컵 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컵 카드는 감정과 관계를 상징하는데, 열 개의 컵은 특히 완성과 성취를 암시했다. 엠마는 이 카드들이 줄리안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고민했다.


“또 새로운 출발이라고? 새로운 출발이라니..."

그녀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가 가긴 어딜 가? 이동? 풉." 그녀는 카드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매일 방구석에 처박혀 주인 눈치나 보고 사는 주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열 개의 컵 두 장이 동시에 나타난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려웠다. 이 카드는 오랜 시간 보이지 않게 준비된 어떤 일이 마침내 완성 단계에 도달했음을 암시했다.


엠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끝으로 카드를 쓰다듬었다.

'뭘까...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줄리안이 이동하거나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카드를 다시 섞으며 속삭였다.

그래, 타로야... 이번엔 좀 더 명확하게 알려줘봐."


엠마는 줄리안을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이 끌렸다. 이 작은 마을에서 토마스 농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줄리안이 입양아임에도 불구하고 토마스 부부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줄리안은 언제나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아이였다. 사랑받는 아이. 귀공자 같은 존재. 만약 토마스 부부의 갑작스러운 사고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 후 줄리안이 파양되지 않았다면, 엠마가 그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살며 같은 처지가 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엠마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운명이란 얼마나 기묘한 것인가. 한때는 닿을 수 없는 별과도 같았던 줄리안이 이제는 그녀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감정들을 정리하려 애썼다.


"줄리안..."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엠마는 자신의 감정이 단순한 호감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줄리안과 자신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엠마는 줄리안과는 달랐다. 그에 반해, 그녀는 버려진 아이였다.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자란 엠마의 어린 시절은 매일 술에 취해 있던 엄마와 함께였다. 엄마는 늘 술병을 손에 들고 있었고, 엠마는 그런 엄마를 보며 자랐다.


어느 날, 보호 센터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엠마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지, 매일 밥은 먹었는지, 엄마가 매일 집에 들어왔는지를 물었다. 엠마는 그들의 질문에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들은 집 안을 둘러보며 냉장고 안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다. 냉장고 안에는 오래된 피자 몇 조각이 전부였고, 방 안 곳곳에는 빈 술병들이 굴러다녔다. 청소가 되지 않은 집 안은 엉망이었다.


결국 보호 센터 사람들은 엄마가 더 이상 엠마를 돌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술과 마약으로 망가진 엄마는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엠마는 놀랍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결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몇 곳의 위탁 가정을 거친 끝에 엠마는 지금의 집에서 몇 년째 살고 있다. 그녀의 엄마는 재활 센터에서 나온 후에도 엠마를 찾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지금은 뉴욕의 어느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엠마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씁쓸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는 자신을 버렸다. 이 사실은 그녀에게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그녀의 가슴 한구석에서는 알 수 없는 허전함과 상실감이 고개를 들곤 했다.

엠마는 줄리안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우정을 쌓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점차 흔들렸다.


줄리안은 이곳에서 마치 갇힌 동물처럼 보였다. 그는 끊임없이 이곳을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그의 눈빛에는 언제나 불안과 분노가 서려 있었고, 그의 행동은 자유를 갈망하는 몸짓으로 가득했다. 심지어 주인과 법정 싸움까지 벌이며 탈출구를 찾으려 애썼다. 엠마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줄리안의 고통을 이해하려 했지만, 그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줄리안은 갑자기 모든 저항을 멈추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몇 년을 살아갔다. 그의 눈빛은 텅 비어 있었고, 예전의 불꽃 같은 에너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는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대신,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견디고 있는 듯 보였다.


엠마는 그런 줄리안을 보며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한때는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그가 이제는 손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줄리안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그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의 고독과 침묵 속에서 자신과 닮은 무언가를 본 듯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주인 남자가 줄리안을 바깥 차고 윗방으로 쫓아낸 이후로, 엠마는 그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세상과 단절된 사람처럼 보였다. 고등학교에도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누군가는 그가 우울증에 걸렸다고도 했다. 엠마는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줄리안은 방 안에서 하루 종일 혼자 시간을 보냈다. 그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해서 몇 번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시큰둥한 반응뿐이었다.


줄리안의 침묵은 엠마를 답답하게 했다. 그녀는 그의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줄리안은 자신의 세계를 철저히 감추고 있었다. 엠마는 타로 카드를 통해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지만, 아직 미숙한 실력으로는 그의 사생활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다. 카드가 전해준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줄리안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엠마는 혼자서 추측했다. ‘아마 게임을 하고 있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컴퓨터를 설치해 주고 갔다니, 줄리안이 매일 밤 그걸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엠마는 알 수 없었다.


엠마의 온라인 타로 채널은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귀신같이 딱 맞는다"는 후기가 쏟아졌고, 구독자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하지만 엠마의 관심은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의 하루는 매일 줄리안에 대한 질문들로 채워졌다.


오늘 줄리안이 엠마를 궁금해했을까? 오늘은 줄리안이 엠마를 조금이라도 좋아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혹시 다른 이성 친구가 생긴 걸까? 그녀는 이런 질문들을 품고 카드를 섞으며 답을 찾으려 했다. 타로 카드는 그녀에게 줄리안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문이었다.


그날 타로 리딩은 평소와 달랐다. 카드에서 읽힌 에너지는 지난 이년간 보았던 그 어떤 리딩보다도 강렬하고 역동적이었다.

이동.

카드들은 줄리안에게 ‘이동 에너지’가 충만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엠마는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거지?"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줄리안이 이곳을 떠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카드에서 느껴지는 메시지는 확고했다.


불안감이 그녀를 휘감았다. 엠마는 마지막으로 네 장의 카드를 더 뽑았다. 그중 하나는 마술사 카드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는 마술사 카드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와 함께 나온 조합은 지난 이년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독특한 배열이었다.


엠마는 머릿속에서 가능성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줄리안이 정말 어디론가 간다면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할 거야."

그녀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주인 남자에게로 향했다.

"혹시 주인 아저씨가 줄리안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 주인 아저씨를 리딩해 보자.’ 엠마는 곧바로 새로운 질문을 떠올리며 카드를 다시 섞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이번 리딩이 무엇을 말해줄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무언가 큰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엠마는 주인 아저씨의 근황과 여행 계획에 대해 타로 리딩을 시작했다. 그녀는 다양한 키워드로 질문을 던지며 카드를 펼쳤다.

"주인 아저씨가 조만간 여행을 가나요? 요즘 공들이는 일이 뭘까요? 혹시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계획이 있나요?"

엠마의 손끝에서 카드는 부드럽게 섞였고, 하나씩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주인 아저씨의 카드에는 특별한 이동 운이 보이지 않았다.

"줄리안을 데리고 여행을 가는 건 아닌데…"

그녀는 중얼거렸다. 이동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는 없었지만, 다른 무언가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아저씨의 카드들은 계속해서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전했다. 숨기는 것, 비밀, 보물. 매번 카드를 펼칠 때마다 이 단어들이 떠올랐다. 주인 아저씨는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그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엠마는 카드에서 읽힌 메시지를 곱씹었다.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지어지는 것들."

그것은 분명히 주인 아저씨에게 큰 만족감을 주는 어떤 것이었다.

엠마는 고민에 빠졌다.

"비밀스러운 보물이라니… 그게 뭘까?"


그녀는 타로 카드에서 보물이라는 단어가 가진 상징성을 떠올렸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감정적이거나 상징적인 가치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다시 카드를 섞으며 생각했다.

"만약 줄리안과 관련된 거라면? 아니면 완전히 다른 무언가라면?"


엠마의 손끝은 긴장으로 떨렸다. 주인 아저씨의 비밀은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동시에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그래," 엠마는 결심하듯 속삭였다.

"이번엔 더 깊이 파헤쳐보자."

그녀는 다시 질문을 던지며 카드를 펼쳤다. 주인 아저씨의 비밀스러운 보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줄리안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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