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고등학교

by 필리소

끙.. 몇시간 못잤네.

"아우, 피곤해. 그레이스, 늦기 전에 빨리 가요."

"그래요. 주인 남자 외출 하기 전에 마무리 해요."


밤새 줄리안의 상황을 논의하며 해결책을 고민했던 그레이스와 션은 새벽이 되어서야 잠깐 눈을 붙였다. 하지만 아침이 밝자마자 그들은 서둘러 줄리안이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줄리안을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결심은 단단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안채 안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남자는 그레이스와 션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뭐..? 아니, 선생들이 웬 일이신가? 이른 아침부터."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 묻어 있었다.


션이 입을 열기도 전에 주인 남자는 손을 내저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놈 만나러 온 거라면 차고 쪽으로 가 보시오. 난 바쁘니까." 남자는 문을 닫으려는 듯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아니에요, 저희는 아저씨를 만나러 왔어요. 저희가 너무 일찍 왔지요? 밤새 잘 쉬셨어요?"

남자 앞에 선 그레이스의 몸짓은 단호했지만 오늘따가 목소리 만큼은 사근사근 했다.


그레이스의 부드러운 말투에 주인 남자는 멈칫하며 다시 돌아섰다.

"나를? 나를 무슨 일로?" .

그레이스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무슨 일이겠어요. 당연히 줄리안 일이죠. 아저씨가 알게 모르게 줄리안 위해서 신경 많이 써주시는거 다 알거든요. "


'줄리안'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주인 남자의 얼굴이 즉시 굳어졌다. 짜증스러운 표정이 그의 얼굴에 드러났고, 그는 문 앞에서 팔짱을 끼고 기대 섰다.

'신경을 쓰긴 무슨..'

그러나 못내 우쭐한 마음에 표정이 풀어졌다.


"크흠. 거, 무슨 일로 왔는지 말해보시오."

그의 태도는 마치 '얼른 말하고 끝내라'는 듯했지만 그레이스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줄리안이 우울증 진단을 받았어요."

그녀는 일부러 천천히, 또렷하게 말했다.

"뭐라고?"

주인 남자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레이스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고 정기적으로 상담사를 만나야 하는 상황이에요. 줄리안은 미성년자라 병원에 갈 때마다 동행할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이건 아이의 건강 문제라 꼭 해주셔야 해요. 부탁 드려요."


주인 남자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우울증? 그놈이 우울증이라고? 선생들, 농담하는 겁니까?"


션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농담 아닙니다. 줄리안의 건강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인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봐요, 선생들. 난 바쁜 사람입니다! 줄리안 말고도 돌봐야 할 애들이 두 명이나 더 있어요. 병원 갈 때마다 동행하라니, 그건 무리예요."


그레이스는 차분하게 말했다.

"아저씨가 보호자로서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러나 주인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른 방법이 없다 해도 난 못 합니다. 그놈 일에만 전념을 할 수 없소."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는 듯 보였다.


션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아이들을 돌본다는 사람이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다니.' 하지만 그는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다.

"아저씨, 줄리안의 건강 문제는 그냥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주인 남자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물론 병원비는 정부 보조로 모두 지불 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놈을 데리고 병원을 매주 가야하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렇지만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고 놈을 돌보는 입장이니 자신도 막무가내로 버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골치 아프네. 이걸 어쩌나…


주인 남자는 짜증이 잔뜩 묻은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레이스와 션이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때, 그레이스는 그런 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근래에 지어본 적 없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한 발짝 다가섰다.


“그게, 아무래도… 좀 어려우시겠죠?”

그녀는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다른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바쁘실 텐데 쉽지 않을 줄은 알았어요. 줄리안 돌보는 것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도 지장이 가면 그것도 어렵죠.”


주인 남자는 그녀의 말에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오! 선생, 오랜만에 말이 좀 통하는구만!”

그의 얼굴에는 짜증 대신 약간의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레이스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걸려들었다.'


“그럼, 저희가 좀 도울까요?”

그레이스는 한층 더 다정해진 목소리로 제안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줄리안 상황을 잘 알고 있잖아요. 어르신이 많이 바쁘실 테니, 만일 괜찮다면 저희가 줄리안 병원 일을 맡겠습니다.”


“선생님이요?”

주인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네,” 그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우울증이 온 아이를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에요. 더구나 운 좋게도 제가 잘 아는 상담사가 있어요. 줄리안을 정말 잘 도와줄 겁니다.”


뜻밖의 제안에 주인 남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곧 그의 얼굴에는 은근한 기쁨이 떠올랐다. ‘이게 웬 떡인가.’ 그는 속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겠소? 나중에 딴말 하기 없기요.”

그는 벌써 이 상황에서 벗어난 듯 문을 닫으려 몸을 돌렸다.

“그럼, 알아서 데려 가시고, 난 이만…”


“잠시만요!”

그레이스는 재빨리 손을 뻗어 문을 닫으려는 주인 남자를 붙들었다.

“뭐요, 또 뭡니까?”

주인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지만 그레이스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아저씨의 동의서가 필요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단호함이 느껴졌다.

“현재 아저씨가 줄리안의 대리인 자격으로 있으시잖아요. 병원에서 미성년자 환자를 치료할 때 합법적인 대리인이 동행해야 하는데, HIPAA 법률상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동의서?”

주인 남자는 눈썹을 찌푸렸다.


“네.” 그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줄리안의 치료와 상담을 위해 필요한 서류입니다. 아저씨가 줄리안 병원 방문마다 동행을 하시면 필요가 없는 절차 이지만 저희가 줄리안을 데리고 다니려면 아저씨께서 서명해 주셔야 병원에서도 절차를 진행할 수 있어요. 저희가 미성년자의 법적 보호자가 아니라서.. 그래도 동의서 한번만 작성 해 놓으면 앞으로 병원 방문은 저희가 도맡아서 할 수 있으니 .. ”

주인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런 거라면 당연히 해 줘야지. 뭐가 필요하시오? 아니,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요.” 그는 문을 열어 그레이스와 션을 집 안으로 들였다.

그레이스와 션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단계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남자의 나태한 성향 덕분에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그레이스와 션은 남자가 가지고 있던 줄리안의 위탁 서류 원본과 남자의 신분증 복사본, 그리고 주소 확인서 복사본을 손에 넣었다.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아 있었다.


그레이스는 미리 준비해 온 서류를 꺼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 이건 제가 미리 작성해 온 동의서예요. 병원 일을 보려면 꼭 필요한 부분이라 읽어보시고 아래에 사인만 해 주시면 돼요."

남자는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쉬며 그레이스가 내민 서류를 힐끗 쳐다봤다.

"뭐,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그는 내용을 읽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펜을 들어 서명했다.

그레이스는 속으로 환호했다.

‘됐다!’ 그녀는 얼굴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유지하며 서류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션이 옆에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이걸로 줄리안 병원 일 처리가 훨씬 수월해질 거예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휘저었다.

"뭐, 다 아이를 위한 일이니 해야죠. 난 바쁜 사람이니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시오."

생색을 다 낸 그는 문을 닫으려 몸을 돌렸다.


그레이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 덕분에 줄리안이 큰 도움을 받을 거예요."

문이 닫히자마자 그레이스와 션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성공이야.’

물론, 줄리안은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줄리안의 상태를 검사받게 하면 좋은일 아닌가? 무엇보다 남자가 순순히 서명을 해 준 동의서로 션과 그레이스의 주소를 줄리안 이름 앞으로 합법적으로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일석 이조!


이 동의서는 단순한 병원 방문 허가가 아니라, 줄리안의 공동 대리인 자격을 션과 그레이스에게 부여하는 법적 효력을 가진 문서였다. 게으른 남자는 작은 글씨로 써 있는 서류 내용은 커녕 서류 타이틀도 제대로 보지 않고 싸인을 휘갈겼다.

남자의 안일함 때문에 일이 정말 쉽게 풀렸다.


션은 서류를 가방에 넣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 첫걸음을 뗐어."

그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이제 줄리안을 안전하게 보호할 방법만 찾으면 돼요."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했다. 남자의 무관심과 나태함 덕분에 일이 이렇게 쉽게 풀렸지만, 그들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갑자기 병원 가서 진단을 좀 받아보자는 선생님들의 권유에 줄리안은 공부를 하다가 영문도 모르고 따라 나섰다.

줄리안은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레이스의 설명을 들으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온라인 고등학교에서 모든 서류가 이 집으로 오게 되는 거였다고?'

그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온라인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주소로 서류와 편지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꼰대 같은 주인 아저씨가 내가 거짓말 한걸 알게 됐더라면...’ 줄리안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주인 남자의 비열한 얼굴이 떠올랐다. **"쓸모 있는 애들 골라서 써먹다가 없애버리면 된다"**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줄리안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인간이었다. 줄리안은 이를 악물며 속으로 욕했다. ‘그 쓰레기 같은 인간. 나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도 모자라, 거짓말 했다는 죄값으로 고등학교도 못가게 막으려고 했겠지.’


그레이스와 션이 아니었다면, 그는 주인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주인 남자에게 한 거짓말이 들통 나서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18세가 되기도 전에 팔려갔을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션이 운전대를 잡은 채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줄리안, 잘 들어. 딱 한 번만 말할게."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네가 사라질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너를 도와줄 사람들이야. 그리고 네 편이야. 혹시라도, 어디에 있든지,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연락해."


줄리안은 션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도와줄 사람들... 내 편...’ 그는 이 단어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줄리안에게,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싸워주겠다고 말하는 건 생소한 일이었다.


션의 진지한 태도에 긴장했던 줄리안을 보고 그레이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션, 목소리가 너무 비장해! 줄리안 겁먹었잖아."

그녀는 장난스럽게 션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하하, 줄리안, 걱정하지 마. 저 사람 원래 저래."

줄리안은 그레이스의 농담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그레이스는 뒤를 돌아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이 줄리안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이 가여운 아이가 안전하게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해.’ 그녀는 속으로 다짐하며 말했다.


"줄리안," 그녀가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지금 내가 주인 남자에게 받아온 이 서류들은 합법적인 서류야. 이걸로 네가 다닐 온라인 고등학교에 우리 집 주소를 넣도록 허락받을 수 있어."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덧붙였다.

"네 전화도 션과 내 공동 라인 밑으로 되어 있으니, 네가 밖에서 뭘 하든 그 집으로 서류나 편지가 가는 일은 없을 거야."


줄리안은 그 말을 듣고 눈을 깜빡였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해요?"

"물론이지" 션이 대답했다. "우리가 너를 위해 준비한 거니까 걱정하지 마."


줄리안은 다시 한번 창밖을 바라보았다. 선생님들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줬다는 사실에 마음속 깊은 감정이 일렁였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션과 그레이스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미소 지었다. 그들은 줄리안이 자신들에게 조금은 마음을 열게 된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2년 후]


“줄리안, 정말 대단한걸? 16살에 고등학교 과정을 다 마치고 졸업이라니!”

그레이스는 전화기 너머에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션 역시 옆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덧붙였다.

“너 정말 대단하다, 줄리안! 우리도 네가 이렇게 해낼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우리가 다 알고 있잖아.”


줄리안은 전화기 너머에서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사실... 정말 힘들었어요.”

그레이스는 줄리안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피로를 놓치지 않았다.

“힘들었겠지. 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우리가 다 알아. 그런데도 이렇게 해냈잖아! 정말 자랑스럽다, 줄리안.”


하지만 줄리안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주인 남자는 그가 창고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유를 우울증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줄리안은 그 좁고 춥고 더운 방에서 혼자 코피를 쏟아가며 공부에 매달렸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녹화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고, 월반을 거듭하며 졸업 요건을 충족시켰다.


그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며 달렸다—군대에 입대해 주인 남자의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


그러나 사람의 일은 늘 그렇듯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언제나 변수는 있는 법이었다.

며칠 뒤, 줄리안은 그레이스와 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선생님들, 저... 이제 군대에 갈 거예요.”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 지금 당장?”


션도 놀란 듯 물었다.

“줄리안, 너 군대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하는 얘기야?”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고등학교 졸업하면 군대에 갈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 말을 들은 그레이스는 잠시 침묵하더니 청천벽력 같은 말을 꺼냈다.

“줄리안... 네가 고등학교를 마치긴 했지만 넌 아직 16살이야. 그리고 16살에는 군대를 갈 수 없어.”


줄리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믿을수 없다.

“뭐라고요? 갈 수 없다고요? 왜요?”


그레이스는 차분히 설명했다.

“미국 군대는 최소 17세부터 입대할 수 있어. 그나마도 부모님이나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해.”

“17세요?”

줄리안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거예요?”


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줄리안. 네가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입대할 나이가 안 돼.”

줄리안은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1년이라니... 내가 여기서 1년을 더 버텨야 한다고?’

그레이스는 그의 표정을 읽고 부드럽게 말했다.

“줄리안, 네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 하지만 1년 동안 우리가 너를 도울게. 네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할 거야.”

션도 덧붙였다. “그리고 그동안 군대에 대해 더 많이 알아보자. 네가 원하는 분야나 직업이 있을 수도 있잖아.”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그의 마음은 가라앉았고, 의기소침해졌다. 마치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그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불안한 일들은 꼭 한꺼번에 몰려오는 걸까?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의 생각을 끊었다.


“줄리안! 안에 있냐?”

주인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줄리안은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갔다.

“왜요?”

“오, 그래. 너 안에 있었구나.”

주인 남자는 문 밖에서 비웃듯 말했다.

“뭐 하고 있었냐?”

“그냥 있었어요. 피곤해서요.” 줄리안은 최대한 무심하게 대답했다.

‘하는 일도 없이 방구석에 쳐박혀만 있으면서 피곤은 무슨...’

주인 남자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얼굴 가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표정을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줄리안을 재촉하며 말했다.

“바쁜 일 없으면 나오거라.”


줄리안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문을 열고 나갔다. ‘또 뭘 하라는 거지?’ 그는 주인 남자의 뒤를 따라 안채로 들어갔다.

안채 거실로 들어선 순간, 줄리안의 심장이 갑자기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소파에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고, 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었다. 줄리안의 눈이 그 남자를 향해 멈췄다.


‘혹시... 몇 년 전 그날 밤, 인신매매를 얘기하던 그 남자일까?’

그의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켜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손끝이 차가워졌다.


주인 남자는 줄리안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는 듯 손짓하며 말했다.

“인사하거라. 시내에 있는 운전 학원 직원이야.”


줄리안은 여전히 긴장한 채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오늘부터 너에게 운전을 가르쳐줄 거다.”

주인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너도 벌써 16살이니 운전을 배워야지.”


줄리안은 잠시 말을 잃었다. 이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운전이라니? 왜 갑자기 운전을 배우라고 하는 거지?’

그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주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멍하니 서 있냐? 고맙다고 해야지.”

주인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줄리안은 거실에서 주인 남자의 말을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나를 위해 돈을 들여 운전학원에 등록을 해줬다고? 나한테 운전을 가르쳐 주겠다고?’ 그는 속으로 되뇌며 주인 남자를 바라봤다. 그동안 자신에게 보여준 그 남자의 태도를 생각하면, 이 상황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주인 남자는 줄리안을 향해 짧게 손짓하며 말했다.

“운전을 할 줄 알게 되면 쓸 데가 많다. 잘 배워둬. 비싼 돈 쓴 거니까. 하라면 그냥 해.”


줄리안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운전하고 다닐 차도 없는데 돈까지 들여서 운전을 배우지 않아도 돼요. 나중에 필요하면 그때 제가 따로 배울게요.”


그의 목소리는 최대한 침착했지만, 속으로는 의심과 불안이 가득했다.

주인 남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누르려 애쓰는 듯 보였다.

‘이 망할 놈의 자식은 고분고분하게 뭐 하나 한번에 하는 법이 없지.’

그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미 비싼 돈을 지불하고 운전학원 직원을 데려온 상황에서,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라면 해.”

주인 남자는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운전은 배워두면 쓸데가 많다니까.”


줄리안은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쓸데가 많다니? 무슨 쓸모? 내가 운전을 배운다고 해서 이 사람이 얻는 게 뭐지?’ 그는 속으로 질문을 던지며 주인 남자를 관찰했다.

그동안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폭행 문제로 집을 나갔던 사건 이후, 주인 남자는 줄리안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이년 전 겨울에 코트 하나를 얻어 입었고, 지난여름에는 겨우 운동화 한 켤레를 받아 신었다. 그마저도 마지못해 던져주듯 건네준 것이었다. 전에는 두 달에 한 번씩 데리고 가던 이발소조차 점점 더 드물게 가게 되어, 지금은 머리가 길어 묶고 다니는 지경이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돈까지 들여 운전학원에 등록해줬다고? 줄리안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뭔가 이상하다.’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주인 남자는 줄리안을 힐끗 보며 말했다.

“내일부터 시작한다니까 준비해둬라.”

그리고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 없는 듯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실에 홀로 남겨진 줄리안은 소파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운전을 배우면 면허증을 따야 할 텐데... 면허증에는 이 집 주소가 들어가겠지.’


그는 머리를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

‘완벽하게 사라져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내 흔적이 남아버릴 거야.’


줄리안의 계획은 간단했다—군대에 입대해 주인 남자의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 하지만 군대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려면 아직 1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그 1년 동안 그는 어떻게든 주인 남자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지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의 계획에 큰 변수를 던졌다. 운전학원이라니? 면허증이라니? 모든 것이 그의 흔적을 남기게 만들었다.


‘왜 갑자기 나에게 운전을 배우라고 하는 걸까? 정말 단순히 내가 커서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줄리안은 몇 년 전 밤중에 들었던 인신매매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날 밤 주인 남자가 다른 남자와 나눈 대화는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서 생생했다.

“키도 크고 힘도 세서 쓸모가 많을걸세...”

“써먹다가 없어진들, 죽어버린들 누가 알겠나...”

그 말들이 다시금 귀에 맴돌았다. 줄리안은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너무 과민반응하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그의 본능은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왔다.

다음날 그레이스와 션의 집에서 저녁을 먹던 줄리안은 그레이스와 션의 놀림을 받으며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하하하하. 줄리안, 너 정말 17세 전에는 군대 갈 수 없다는 걸 몰랐다는 거야?”

션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레이스도 거들었다.

“이런, 이거 실망인데 줄리안? 너 같은 수재가 군 입대 전형에 대해 검색도 안 해봤다고?”

줄리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냥... 너무 바빠서요.”

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데? 네가 그렇게 똑똑하면서...푸하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줄리안은 그들의 반응이 장난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국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선생님들께 운전 면허 얘기를 해야겠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주인 남자의 의도를 알 수가 없는 줄리안은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줄리안은 식탁 앞에 앉아 손을 꼼지락거리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들, 저... 주인 아저씨가 저한테 운전면허를 따라고 하세요.”


그레이스와 션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션이 먼저 물었다.

“운전면허? 갑자기 왜?”


줄리안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제게 돈을 들여 뭘 해준다는 게 좀 이상해서요.”


그레이스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정말 이상하네. 그동안 너한테 그렇게 무관심하던 사람이 갑자기 운전면허를 따라고 한다고?”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그래서 더 이상해요. 제가 그 사람한테 받은 거라고는 몇 년 전에 코트 하나랑 지난여름에 운동화 한 켤레뿐이었어요. 이발소도 안 데려가줘서 지금 머리가 이렇게 길잖아요.”

그는 머리를 가볍게 묶은 손을 들어 보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션이 팔짱을 끼고 의자 뒤로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돈까지 써서 운전면허를 따게 해준다? 뭔가 수상하긴 하다.”


줄리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저는 운전면허에 그 집 주소가 찍히는 것도 싫어요.”


그레이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면허증 주소 때문에 걱정돼?”


줄리안은 깊은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네, 면허증에 그 집 주소가 들어가면 제가 어디에 있는지 추적당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완전히 사라지고 싶어요. 그런데 면허증이 있으면 그게 어려워질 것 같아요.”


션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네 말이 이해돼. 면허증은 신분증으로 자주 쓰이니까, 주소가 남으면 문제가 될 수 있겠네.”


그레이스도 동의하며 말했다.

“맞아, 줄리안. 네가 그런 걱정을 하는 건 당연해.”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근데 주인 아저씨는 왜 갑자기 운전을 배우라고 하는 걸까? 너한테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걸까?”


줄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그냥 이상해요. 그 사람이 저한테 이렇게까지 신경 쓸 이유가 없잖아요.”


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뭔가 꺼림칙하긴 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리고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줄리안, 네가 걱정하는 건 충분히 이해해.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볼게.”


그레이스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아, 줄리안. 너 혼자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네 편이잖아.”


줄리안은 선생님들의 말을 듣고 조금 안심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줄리안의 의기소침한 표정을 보고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줄리안? 그러지 말고 대학을 가자.”

줄리안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네? 대학이요?”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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