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낸다는 말 앞에서

워킹데드 4

by beyond note

시즌4 어느 에피소드에서

“나는 그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싶어.”

– 워킹데드, 베스


요즘 다시 워킹데드를 정주행하고 있다.

예전에 봤을 땐 몰랐던 장면들이 새삼 마음에 박히고,

그저 지나쳤던 대사가,

지금의 내 삶 속에 와서 자꾸만 걸린다.


그중 한 장면.

어두운 산속, 대릴과 함께 술을 마시던 베스가 조용히 말한다.

“나는 그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싶어.”


그 말이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았다.


어렸을 때 나는 서울 미아리 달동네에서 살았다.

세탁기 소리보단 곰팡이 냄새가 익숙했고,

장난감 대신 비닐봉지와 돌멩이가 친구였다.

가난은 배고픔보다 더 깊은 무력감을 줬고,

꿈이라는 단어는 TV 속에서만 존재했다.


그때 나는

1년 후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고,

10년 후의 내 삶은 상상할 가치조차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 이 하루만 잘 넘기자,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런지

‘살아간다’는 말보다

‘버틴다’는 말이 훨씬 익숙했다.


그런 나에게,

요즘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살아간다’는 감각을 다시 일깨운다.


하루를 끝내고 퇴근한 저녁,

작은 식탁에

아내, 아들, 그리고 처제까지 둘러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누며

밥 먹다 웃고, 놀리고, 티격태격하는 그 시간.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살아가는 거구나.


고기반찬이 있는 날도 있고,

김치만 있는 날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식사,

그 안에 오가는 말과 표정,

그게 지금의 나를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살아남는다는 건

시간을 견디는 일이고,

살아간다는 건

그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는’ 일 아닐까.


지금도 나는 완벽하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내일이 불안하고,

가끔은 뭘 위해 이러고 사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베스의 말은 드라마 속 대사였지만

지금의 내 삶 안에서

아주 현실적인 질문이 되었다.


오늘 하루,

나는 살아남은 걸까?

아니면 살아낸 걸까?


버티던 시절의 나에겐 없던 질문이고

지금의 나는

그 질문 앞에 조용히 미소 지을 수 있게 됐다.


살아간다는 건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하루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웃을 수 있는

그 순간 하나하나가 쌓이는 것 아닐까.


#버틴다는말을넘어서

#평범한하루가주는의미

#나는오늘도살아냈다

#브런치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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