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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고 기묘한 '동시성' 나타나라!

내 삶이 잘 흘러가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서

by 하몽



영성 분야(또는 신비주의)에는 ‘동시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동시성’은 사실 정신과의사/심리학자 카를 융이 무의식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만든 용어인데 영성분야에서 다루는 동시성의 개념은 융이 설명하는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동시성은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삶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또는 기묘한! 일’이다

어떤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연결성을 갖고 내 삶에 동시에 일어난다는 뜻이니까.


예를 들면, 평생 먹은 적도 없고 관심도 없던 과일 ‘낑깡’이 우연히 머리에 떠올랐다고 하자. 그때까지는 별 일이 아니다. 오래된 기억, 쓸데없는 생각은 원래 갑자기 불쑥 떠오르곤 하니까.


하지만 1시간 뒤에 엄마가 집에 들어오며 말한다.

“낑깡 사 왔어”


소오름- (ㅋㅋ)


이런 게 동시성이다.


아마 영성분야나 신비주의를 몰라도 살면서 이 정도의 신기한 일은 다 겪어봤을 것이다.

또 ‘낑깡’ 정도의 일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꿀만한 동시성을 경험한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동시성은 중학생 때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그리고 20대 초반에는 꽤나 강렬하고 삶에서 매우 중요해 보이는 동시성을 몇 번 경험했기도 했다.



이 ‘동시성’의 용어와 개념을 모르던 중, 고등학생 때는 이런 일은 너무나 알고 싶은 신기한, 재밌는 ‘현상’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성당을 다녔는데, 한 번은 전 날 꾼 꿈의 내용을 갑자기 신부님이 설교 내용으로 말하시기에 혹시 이게 종교적 현상인가 싶어 정색을 하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신부님에게 이게 뭔 일인지 아냐고 물어봤던 적도 있다. (신부님은 웃으면서 내가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러다 20대 초반 데이비드 호킨스의 책에서 (놓아버림, 의식혁명 등)이 기묘한 현상의 제대로 된 이름을 알게 되었다.


<동시성 synchronicity>


내가 지금까지 겪던 ‘기묘한 현상’이 설명이 되는 일이었다니, 이것에 대해 이미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니.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기뻤다.

영성분야에서는 ‘동시성’을 ‘삶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처럼 설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인지 동시성을 제대로 알게 되자, 소소한 동시성들도 잘 안 나타나기 시작했다.

괜히 이전엔 없던 조바심이 들었다.

‘지금쯤이면 내 삶을 ‘마법처럼’ 바꿔줄 엄청난 동시성이 있어야 하는데 - 지금 내 삶이 잘 안 풀리고 있다는 뜻인가? …' 하면서.




지금은 그로부터도 시간이 꽤 지났다.

여전히 동시성의 정체?를 안 이후로 엄청난 동시성은 경험하지 못했다.

(깜찍뽀작한 동시성은 종종 있지만)


어쩌면 정말 지금도 내 삶이 잘 안 풀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삶에 큼직한 동시성이 일어나게 할 어떤 특별한 방법이나 기법이 분명 있는데, 내가 그런 것을 배우고 익히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정말 그런 기묘한 정신세계를 통달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동시성을 경험하며 그것으로 삶의 방향을 쉽게 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삶에 동시성이 있든 없든 신기한 일을 경험하든 안 하든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

신기한 일에 초점을 맞추니 그 주변의 다른 것들이 흐리멍덩하게 보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고 보니, 내 삶은 사실 온통 언제나 늘 신기한 것으로만 채워져 있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엇! 소름!’ 할만한 갑작스럽고 특이한 사건이 신기한 게 아니라, 내 삶이 지금 여기에 이르게 된 하나하나의 모든 과정이 다 ‘동시성’ 그 자체이며, 그것이야말로 정말 신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 생각, 지금의 내가 사는 곳,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 지금 내가 하는 일 전부가.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된다고 그래서 별로라고 생각했던 한 영성분야(세 가지 원리)가 언젠가부터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그러다 내 머릿속에 ‘관련 책을 번역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오고, 뒤이어 ‘내가 해본 적도 없는, 관심 가진 적도 없던 출판을 어떻게 하겠어-‘라는 생각도 함께 들어왔지만,

나도 모르게 첫 번째 생각에 더 끌려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고,

이미 세상에는 본인이 만들고 싶은 책을 내기 위해 1인 출판을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사람들의 발자국을 하나씩 따라가며 이리저리 시도해 보고



이렇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혼자 책 한 권을 완성하고, 그것에 대해 계속 얘기하고 있다는 거


이런 게 진짜 동시성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일련의 삶의 과정들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고 너무나 일상적이어 보이지만,

하나씩 살펴보면 이상하고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나는 왜 그때 ‘내가 어떻게 번역을 하고 출판을 해-‘라는 생각에 더 힘을 실어주지 않았는지,

과정 하나하나가 다 처음 하는 것들이라 어렵고 지루한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재밌고 보람된 순간들에 더 기대어 포기하지 않게 되었는지.


정말로, 신기하고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 삶의 다른 모든 요소들도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이렇게 보면

동시성이라는 게 어쩌면 '밖'에서 일어나는 신기한/기묘한 사건을 뜻하기보다는,

내 '안'에서 시작되어 내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사건을 뜻하는 게 아닐까 한다.



'밖'에서 일어나는 동시성은 1회성, 한 번 신기해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의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냥 밖에서 짜잔하고 일이 일어나길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안'에서 시작되는 동시성은 끝이 없다. '안'에서 바라보는 동시성은 언제까지라도 내가 원하면 이어갈 수 있다.





정말 단순해서, 너무 일상적이어서 잊고 있었지만

알고 보면 너무나 신기한 내 안의 힘.


내가 직접 옮긴 이들의 이야기에서 그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fDTXMYt_uk&t=40s







출판사 하몽

첫 책 <내면의 공간>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738697


# 시드니 뱅크스의 세 가지 원리 (3원리)

출판사 하몽은 시드니 뱅크스가 전한 삶의 이해를 옮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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