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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 부시코>에 관한 짧은 대담

다소 무성의하고 산만한 인터뷰

by 낙타

지난주 일요일, 동경의 한 카페에서 <나라야마 부시코>의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를 짧게 만났다. 먹는 걸 몹시 좋아하는 대식가답게 셔츠 아래로 늘어진 뱃살이 눈에 띄었고, 어딘가 후덕한 인상을 풍기는 얼굴과 호탕한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겉으로 보면 주택가에서 흔히 볼 법한 그냥 아저씨인데, 촬영 현장이 하드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에게 예정된 시간은 단 30분이었기에, 나는 인삿말 삼아 <나라야마 부시코>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축하한 뒤 빠르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 <나라야마 부시코>는 1957년에 발표된 후카자와 시치로의 소설이다. 이 소설을 영화화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


이마무라 쇼헤이(이하 '이') : 소설의 작풍도 독특했고 구성도 훌륭했지만, 내가 그 소설에 이끌린 것은 역시 소재 때문이다. 실제 일본 산골 마을에 있었던 이상한 풍습들을 한데 버무린 뒤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도 좋았고.


: <나라야마 부시코>가 다루는 풍습은 노인을 산에 버리는 것 말고도 갓난아기를 죽이는 마비키 풍습이나, 저주를 액땜하기 위해 마을 남자들이랑 순서대로 성관계를 한다던지, 하여간 희한한 풍습들이 나온다. 이 풍습들을 영화로 묘사하며 무슨 생각을 했나. 이러한 부조리한 풍습을 비판하려는 의도도 있었나.


: (단호하게) 결코 없었다. 이 영화의 그러한 풍습들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나는 이것에 대해 가치판단을 할 생각이 없다. 내가 영화를 통해 다루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생명력이다. 나는 아무리 한심한 인간일지라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강력한 의지 속에서 일종의 숭고함을 본다. 또는 생(生)에 대한 강렬한 충동이라는 테마는 언제나 나를 매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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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당신이 주로 사회의 하층민이나, 비극적 사연을 겪는 여성을 영화에서 자주 다루었던 것도 그것의 일환인가.


: 그렇다. 사람은 처지가 어려울수록 살기위해 더 구차해지고, 더 악착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때로 그러한 모습은 동물이나 짐승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그것이 현대 사회에 만연하는 위선이나 차별보다 훨씬 아름답고 가치있다고 믿는 쪽이다.


: 동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영화에서 동물을 담은 숏이 매우 자주 등장한다. 섹스 장면 이후 뱀이 교미하는 장면이 나온다던지. 이건 무슨 의도인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뭐 그런걸 표현하고 싶었던 건가.


: 정확하다. (웃음) 아주 심플한 방법이지. 너무 뻔했나.


: 연출이나 촬영 과정에서 유의했던 것이 있었나.


: 우선 배우들을 그 공간과 시대 속에서 살아숨쉬게 해야 했다. 연기 과정에서 굉장히 엄격한 나만의 원칙이 있었고, 그래서 촬영 기간이 5년이나 걸렸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클로즈업을 배제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일종의 동물을 관찰하듯 영화 속 인물을 바라보길 원했다. 극적인 효과보다는 관조적인 느낌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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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의 백미는 아들이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이 영화 속 풍습의 가장 독특한 지점은, 자식이 부모를 버리러 가는 과정에서 절대 말을 하면 안된다는 설정이다. 이 장면을 찍을 때는 무슨 생각을 했나.


: 나 역시 소설을 읽으며 이 장면이 가장 흥미로운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지 않나. 말을 한다고 해서 진짜로 신이 듣고 그들에게 천벌을 내릴 리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만큼 그들은 절박한 것이다. 부모 자식이 생이별을 하는데 말 한마디도 나눌 수 없다니. 그들은 정말로 우둔하면서도 절박한 것이다. 게다가 나는 원래 영화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말보다 동작을 담을때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나도 이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 이 장면은 흡사 무성영화 같다.


: 그렇다. 내가 이 장면에서 가장 공들였던 부분도 그러한 부분이다. 작은 동작 하나하나, 눈빛, 시선에서 인물의 모든 것이 드러나길 원했다. 어쩌면 가장 동물적인 장면이 아닐까. 그래서 찍을 때 굉장히 고생했다. 배우들에게 미안하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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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야마 부시코>를 통해 근본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 영화감독은 그런걸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진 않는다. (웃음) 다만 이 영화를 대하는 나의 태도랄까, 관점은 변한 것이 없다. 나는 영화를 통해 사회적 문제도 자주 다루었지만, 결국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 본능 같은 것이다. 도덕, 윤리, 제도, 상식 같은 것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틀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일본은 다신교적이고 범신론적인 종교 풍토를 가지고 있다. 또 사회가 굉장히 엄격한 편이다. 일본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전통과 신앙, 혹은 사회적 제약 아래에서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나는 그러한 개인들이 세상과 충돌하는 과정에 흥미가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나는 무언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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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우리의 인터뷰는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다음 작품인 <검은 비>의 프로듀서가 그를 데리러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음 인터뷰를 기약하고 헤어졌다.


(위 인터뷰는 실재하는 인터뷰가 아닌, 가상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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