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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에 관한 짧은 감상

결국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by 낙타

<레이디 버드>

2017, 그레타 거윅 / 코미디, 드라마 / 1시간 34분


안녕 내 이름은 "레이디 버드"라고 해 다른 이름이 있지만, 내가 나에게 이름을 지어줬지 모두가 나에게 잘 살아보라고 충고로 위장한 잔소리를 해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출처 : 네이버 영화)


잘 풀리지 않는 연애, 어려워져만 가는 관계의 문제, 도와주지 않는 세상, 애정과 미움이 묘하게 공존하는 가정이라는 세계. 그레타 거윅의 데뷔작 <레이디 버드>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성장담을 능숙하게 펼쳐 보인다. 얼핏 전형적이고 관습적으로 보이는 이 영화의 화법에는 사실 시시한 성장영화의 관성적인 세계를 나름대로 일신해 보려는 신인감독의 치열한 고민이 숨어 있다.


태어나고 자란 세계를 부정하고, 찾아오는 곤경에 무작정 부딪혀 싸워 이기는 것만이 성장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케케묵은 성장영화들은 이 데뷔작 앞에서 반성해야만 할 것이다. <레이디 버드>의 인물들은 싸우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자신들의 방법론으로 세상과 마주하려고 한다. 그레타 거윅은 성장 혹은 세상에 관해 거창한 질문을 제시하고 미학적 성취에 목매기 전에,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지루한 세상의 따분한 광경에게로 시선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그다지도 동경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maxresdefault.jpg 나도 내가 동경하는게 뭔지 모르겠어

지금 속해 있는 따분한(혹은 따분해 보이는) 세계에서 저 멀리 앞서 있는(혹은 그렇게 보이는) 세계를 동경하며 느끼는 질식감은 그레타 거윅에게 삶의 가장 핵심적인 딜레마이다. <레이디 버드>의 화자가 여고생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막 성인이 되기 직전의 단계의 인간은 가장 거대하고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세계 앞에서 질긴 딜레마를 겪는다.


즉 <레이디 버드>는 다른 흔한 영화들처럼 장르를 먼저 택하고 인물과 사건을 그것에 맞춰 찍어내지 않았다. 이 영화의 진심어린 고민과 세심한 통찰, 섬세하게 가공한 인물들은 장르보다 앞서 있다.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관한 노력이 선행된 이 영화의 안정적이고도 참신한 각본은 <레이디 버드>의 세계가 장르 속에서 길을 잃기는커녕 성장영화의 전통 너머로 작지만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딛게 한다.


maxresdefault.jpg 어쩌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도 몰라

이 영화의 가장 마술적인 순간. 자동차를 운전하는 주인공 크리스틴과 그녀의 어머니가 겹쳐진다. 이 때 영화는 단순히 성장이라는 좁은 텍스트를 넘어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다른 세계를 향한 조바심. 내가 나고 자라고 속한 세상을 향한 들끓는 애증. 늘 한달음 달려간 뒤에서야 우리를 옥죄는 후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레타 거윅은 그렇다고 한다. <레이디 버드>는 결국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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