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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 대한 짧은 감상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영화

by 낙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 고레에다 히로카즈 / 드라마 / 2시간 8분


나는 엄마랑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삽니다. 동생 류랑 아빠는 저기 멀리서 따로 삽니다. 엄마랑 아빠랑 맨날 싸우더니, 이런 꼴이 될 줄 알았습니다. 나의 소원은 우리 가족들이 다시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저기 저 위에 있는 화산이 폭발해서 아빠랑 류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 됩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는 말이 새로 생기는 고속열차가 반대편에서 서로 달려오다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싸~ 그럼 거길 가서 소원을 빌면 되겠네! 그래서 좋아하는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은 친구랑,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친구랑 거길 가려고요. 동생도 오라고 해서 나랑 같은 소원을 빌라고 해야겠어요. 난, 우리 가족이 꼭 같이 살았으면 좋겠거든요… (출처 : 네이버 영화)


세상에 이것보다 사랑스러운 영화가 또 있을까. <진짜로~ 기적>은 보고 나면 마음 전체가 충만한 따뜻함과 이상한 행복감으로 젖어 오는 영화다. 그러나 그것은 이 영화가 무조건적인 연민과 희망을 이야기해서가 아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이 영화의 서술 방식은 안온한 주제의식과 섣부른 기적을 설파하기 위함이 아니다.

1280 결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버거운 현실을 전혀 외면하지 않는다. 대신 기적이 요원한 험난한 생태 위에 어린아이들을 올려놓는다. 여기서 정말로 가슴 아파지는 지점은 관객은 영화 속 세상이 비극이라는 것을 아는데, 영화의 주인공인 어린이들만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때 생겨나는 관객과 인물 사이의 기이한 공백.

이 공백에 흘러드는 것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비관적인 상념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미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 태도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낙천적인 인식으로 일관하는 어린아이의 태도가 그저 무망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지점에서 우리들을 일깨운다. 곁에 있는 기적을 알아차리라고 소리친다. 일상의 권태에 짓눌려서 오로지 푸념만을 늘어놓기에 바쁜 우리를 자꾸만 부끄럽게 만든다.


기타노 다케시의 <기쿠지로의 여름>처럼, 이 영화는 결국 어른들이 보라고 만든 영화이다. 우리가 정말로 고통스러운 이유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의 끝나고 나면 고이치는 한 단계 성장한 상태다. 그 어린 소년은 사실 누구보다 현실을 똑바로 보았고, 지키기 어려운 양심을 따랐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 그것은 모순적인 세상의 토양에 뿌리내린 우리의 안간힘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순진무구하면서도 따스한 가치관을 단 하나의 티끌도 없는 진심으로 보여준다.

MV5BM2ZiMWQyMzMtYzIwYS00MDRhLWFkOTctNjU0YzBlMjgxOTQ2XkEyXkFqcGc@._V1_.jpg 자본주의의 중심에서 기적을 외치다

왜 하필 신칸센이여야 할까. 그것도 막 개통된 신칸센이다. 류의 꿈에서 되풀이되는 부부싸움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작품의 근저에 흐르는 것은 자본주의의 냉엄 앞에서 황폐하게 부서져가는 가정과 파편화된 가족이 만연하는, 21세기 일본 사회를 향한 뼈아픈 응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신칸센으로 달려간다. 고속화의 중심으로, 현대화의 상징으로, 자본주의의 가장 화려한 결과물로. 영화에서처럼 그들의 간절하고 애달픈 외침이 열차의 굉음을 뚫고 세상 곳곳에 도달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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