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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령 Mar 20. 2024

나의 주거문화사 3

산번지 : 나의 ZIP

 집은 ZIP이다. 아주 많은 것들이 압축돼 있는 공간이다. 네 식구의 얼굴과 어떤 날의 말이나 행동 따위, 노란 초가지붕, 내가 뛰놀았던 마당과 종일 앉아 책을 읽었던 툇마루, 작은 텃밭과 거기서 기르던 고추나 오이 같은 채소들… 그 모든 것들이 집이었다. 집의 총체는 부분들의 총합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게 “너희 집에 가도 돼?”라는 질문은 “너희 집의 모든 것을 내가 알아도 돼?”라고 묻는 것과 똑같았다. 당연히 나는 싫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은 이미 속속들이 아는 사정이었지만 그밖의 친구들에게 나의 집이 어떤 집인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나의 집은 나의 몸의 다른 이름이었다.


 지금은 좀처럼 쓰이지 않지만 누추하다는 관용적 표현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겸손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누추한 것을 더 낮추어 이를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가끔 빨랫줄에 널어둔 옷들이 어느새 마르고 그것들이 바람에 나부끼다가 마당가 밖까지 날아가곤 했다. 마당가를 벗어나면 곧 ‘낭떠러지’였다. 실제로는 그렇게 부를 만큼 높지 않았겠지만 내가 체감하는 높이는 결코 그 이름과 다르지 않았다. 운이 좋으면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붙잡고 비탈에 떨어져 있는 빨래를 주울 수 있었지만 운이 좋지 않으면 나는 위험한 곡예를 하듯 아슬한 사면을 타고 저 낭떠러지 아래까지 내려가야만 했다. 지금이야 아파트 층수가 높으면 높은 만큼 더 높은 가치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 될 수 있지만 시골마을에서 높은 곳에 산다는 것은 그저 번거롭기 짝이 없는 일일 뿐이었다. 굳이 사면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나뭇가지를 붙잡을 필요도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꼭대기집에 살았던 내가 그 높이만큼 다시 아득하게 꺼져버린 지반 위에서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나는 지금도 넉넉히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누추나 가난이라는 말로 압축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오월이면 아카시아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내가 앉아 있는 툇마루는 초가집과는 무관한 별채가 되었다. 나의 집에 허락된 손바닥만 한 햇살만큼 색이 바랜 툇마루의 끝에 걸터앉아 난 마치 새로운 세계를 향해 이제 막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즐비하게 서 있던 아카시아나무와 무성한 잎들과 꽃들까지, 아무도 자신의 것이라 부르지 않던 것들을 나만이 가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산번지의 집에서도 조금 행복했다. 나도 ‘앤 셜리’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면서 더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믿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이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아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겠지?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딱해. 세상에는 말야. 얼마든지 좋은 게 있는데, 아카시아꽃 향기도 바로 그 중 하나야.      


 만약 ‘앤 셜리’가 그 때 산번지의 집에서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았다면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를 동경한다는 것이 저 아래에서 꼭대기집을 목이 꺾이도록 바라본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산번지의 집 아래, 우물가에서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아주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산번지의 집에 살면서도 너처럼 그렇게 꿈꿀 수 있다는 게 부러워. 너 때문에 나도 매일매일 새로운 꿈을 꾸고 싶어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정말로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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