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령 Mar 21. 2024

나의 주거문화사 4

산번지 : 지구라는 꿈


 산번지의 집은 지구에 있다  

   

 그 시절, 내가 스스로를 위로할 때 종종 생각했던 것이었다. 산번지의 집이나 동네에서 가장 잘 사는 집이나, TV에서 보던 아파트들도 모두 이 지구에 있는 집들 중 하나였다. 그 집들은 모두 지구라는 공동의 터에 자리잡은 주거공간이었다.

 그 시절, 나는 내가 사는 집의 가치에 대해 말할 줄 몰랐다. 집이라는 것이 돈을 주고받고 거래하는, 그러니까 부동산의 개념이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다. 

 산번지의 집은 쌀 다섯 가마니를 주고 산 집이었다. 당시만 해도 쌀은 현금성을 띠었고 일반화폐의 가치에 따라 유통되었다. 당시 쌀 한 가마니에 대략 십만 원 정도 했었다. 당시 십만 원은 엄청 큰돈이었다. 돈의 가치는 산번지 마을에서나 마을 밖에서나 같았겠지만, 나에게는 산번지 마을에서의 십만 원이 더 큰 돈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덜 개발되고 덜 문명화되고, 그래서 더 빈곤한 동네, 그곳이 바로 내가 사는 마을이었다. 

 그 시절에도 제3세계 국가의 빈민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당시 TV는 절대적인 매체였다. TV 뉴스는 곧 정론이었고 공익광고는 우리에게 절대적인 윤리 강령을 전달해주었다. 제3세계 국가의 생활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친구들은 시혜의식에 사로잡혀 학급회의 시간에 쌀을 모아 아프리카에 보내야 한다는 의견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 친구는 그 때 무릎이 해진 바지를 입고 있었다. 동정이나 연민에 전제된 마음이 기쁨이나 안도라는 것을 그 때는 몰랐을 것이다. 콜버그(Kohlberg)식으로 말하자면 나를 포함한 교실의 아이들은 ‘착한 소년·소녀 지향’의 단계를 충실히 밟아나가는 윤리적 주체들이었다. 어른들, 특히 선생님들의 승인에 따라 ‘우리’의 선악이 판단되는 시기였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나도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보통의 아이일 뿐이었지만 규격 편지봉투에 쌀을 담아 보내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이들에게 구원의 순간이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살갗이 갈라질 정도로 야윈 얼굴에 파리가 들끓는 그 아이들의 얼굴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내 얼굴이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지구라는 공동의 터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앞으로앞으로.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필요 이상으로 희망찼고 진취적이었다. 산번지의 집까지 ‘행진’하는 건 불가능했다. 무릎을 짚은 채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야 하는 그 길은 ‘행진’의 길이 아니었다. 차라리 행군이었다.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을 다 만날 수 있다지만 나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때론 극심한 허기를, 매서운 바람에 흔들리는 바람벽이 끝내는 아예 날아가버릴 것 같은 불안을, 그럼에도 영영 이곳을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울을 나도 겪고 있는 중이라고 알리고 싶지 않았다. 만나지 않아도 만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 만나고 싶지 않았다.      

 같은 지구에 산다고 해서 다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산번지의 마을에도 계급이란 게 존재했을 정도인데 지구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산번지의 집이나, 다큐멘터리 속의 움집들은 아주 작은 흠집들이었다.      

 나와 그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흠집에 살았다.      



 지구를 떠나거라     


 그 때 그 시절의 유행어였다. 정말로 재미있는 농담이어서 웃었던 게 아니다. 채널은 한두 개뿐이었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딱 그 정도였다. TV 속 방청객들이 웃었고 나도 따라 웃지 않으면 문명에 뒤처지거나, 그래서 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아니면 정말로 지구를 떠나겠다고 결심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속절없이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따금 정말로 지구를 떠나는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다. 산번지의 집, 쪽마루에 앉아 그대로 우주공간까지 날아가는 꿈.     

 

 지구에서 꾸었던 꿈들 중에 가장 서글픈 꿈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주거문화사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