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령 Jul 17. 2024

행위자로서의 인간

2022학년도 3월 3학년 학력평가

  인간은 행동한다. 인간의 행동에는 '토마스 리드' 식으로 말하자면 물리적인 행동과 정신적인 행동이 있다. 어느 쪽이든, 어떤 행동이든 인간의 그것은 자유로운 능력의 발현이다. 이 능력을 가진 행위자는 모두 인간이다. 인간이라는 행위자의 행동만이 어떤 현상의 실질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자유롭지 않은 능력'이 발현될 때도 있다. 아무런 의욕 없이 행위자가 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마스 리드는 그런 경우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논의에서는 '의욕 없는 행위자'를 배격한다. 리드가 이해하는 자유로운 능력의 발현이란 행위자로서의 의욕을 동반해야만 한다. 

  

  밥을 먹는다.

  친구를 만난다.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 

  친구와 여행을 간다. 

  잠을 잔다.

  일어난다. 

  걷는다.  

 

  이런 행위들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밥을 먹고 싶다는 의욕, 친구와 만나고 싶다는 의욕,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의욕, 여행을 가고 싶다는 의욕, 자고싶다는 의욕, 일어나 걷고 싶다는 의욕…들과 같은 원인으로 가능해진 행위들이다. 직접 신체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행위자로서의 인간이 갖고 있는 의욕인 것이다. 



  멈춰 있는 흰 공에 빨간 공이 부딪쳐 흰 공이 움직였다고 하자. 흄은 빨간 공이 흰 공에 부딪친 사건과 흰 공이 움직인 사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성립하기 위한 세 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원인이 결과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있어야 하고, 원인과 결과가 시공간적으로 이어서 나타나야 하며, 원인과 결과 사이에 ‘항상적 결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적 결합이란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공이 움직여 부딪친다면, 같은 식으로 공들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리드는 위 사례와 같이 흄이 말하는 세 가지 조건이 성립하는 경우에도 인과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오직 자유 의지를 가진 행위자만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행위자 인과 이론에서 리드는 원인을 ‘양면적 능력’을 지녔으며 그 변화에 대한 책임이 있는 존재로 규정하였다. 양면적 능력은 변화를 산출하거나 산출하지 않을 수 있는 능동적인 능력이다. 그리고 행위자는 결과를 산출할 능력을 소유하여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그 변화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이다. 리드는 진정한 원인은 행위자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빨간 공이 흰 공에 부딪쳤을 때 흰 공은 움직일 수만 있을 뿐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빨간 공은 행위자일 수 없다.

 경험론자인 리드의 관점에서 보면 관찰의 범위 내에서 행위자는 오직 인간뿐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흰 공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빨간 공을 굴렸고 흰 공이 움직였다면 그 사람은 행위자이고 흰 공이 움직인 것은 결과에 해당한다. 리드는 이와 같이 결과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행위자가 양면적 능력을 발휘해야 하며, 행위자의 의욕이 항상적으로 결합해야 한다고 보았다. 리드는 의욕이 정신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보았다. (중략)  

 리드는 ‘기회 원인’의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당시에는 중세 철학의 영향으로 어떤 철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비롯한 사건들의 진정한 원인은 오직 신뿐이며, 행위자는 기회 원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기회 원인은 일상적으로는 마치 원인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정한 원인이 아닌 것이다. 리드는 이러한 입장을 경험주의 관점에서 배격했다. 그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행위자의 의욕과 행위뿐이며 행위에 신이 개입하는 것은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신이 사건의 진정한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리드는 궁극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행위자에게 달려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의 주체적 결단이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종교론자들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되어지는' 것을 중시한다. 아니 모든 것을 절대자의 섭리 안에서 '되어지는' 현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과격하게 말하면 행위자로서의 인간의 자유로운 능력이 아니고서는 신은 선택되지 않는다. 인간의 의욕이 무시된 인과론은 오직 자연의 섭리 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제시문의 마지막 단락에서) 리드는 '궁극적으로 내리는 모든 결정은 행위자로서의 인간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인간의 주체적 결단을 강조하는 것이다. '궁극'이란 인간의 의지가 다한 끝, 또는 인간이 의지를 다하여 이르게 되는 지점이다. 그 궁극의 지점을 향해 가는 것은 어찌어찌해서 '당하게 되는' 피동의 상황이 아니다. 그렇게 '되어질' 수 없다. 오직 인간 스스로의 자유로운 능력과 의욕과 행위로서 도달할 수 있다.   


이전 01화 '나'라는 사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