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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령 Jul 10. 2024

'나'라는 사실

2025학년도 6월 3학년 모의평가

 차(茶)는 '나'와 가까운 단어다. 그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대개 '艹(풀 초)'에 '余(나 여)'가 결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余의 훈(뜻)이 음가의 일부가 되는 형식이지만 왠지 다르게 이해하고 싶어진다. 차는 '나' 즉, 인간의 머리 위에 풀이 얹힌 꼴이라고 말이다.

 '艹'은 빛과 흙, 바람과 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자연물이다. 그 풀이 인간의 머리 위에 얹혀 있는 형상이라고 굳이 말로 풀지 않더라도 풀을 포함한 모든 자연이 인간과 가깝다는 것은 굳이 깨닫지 않아도 되는 이치이다. 가까운 정도가 아니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 그 자체이다. 

 다시 차(茶)는 '나(余)'이다. 뿌리로 만든 것도 있고 가지를 쪼개고 다져 만든 것도 있지만 대개 차는 풀의 잎으로 만든다. 그래서 엽차葉茶라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잎이 차의 주원료가 되는 것은 잎이라는 것이 풀이나 나무 따위가 거느린 것 중에서 가장 순하기 때문이다. 풀이든 나무든 빛을 머금고 바람을 쏘이고 안으로 물을 들이고 흙을 통해 양분을 빨아들이는 자연물 자체지만 그 내부는 복잡다단한 체계로 이뤄져 있어서 걸러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물의 줄기와 빛의 줄기가 만나 흐르는 잎맥이 눈에 띄게 된 것이고 그 무늬를 우려내는 마음으로 차를 끓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순하고 선한 것에 손이 가고 마음이 가는 것은 인간의 본래적 지향이 그렇기 때문이다. 사람이 차를 마시는 것도 순하고 선한 마음의 지향을 따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행위이다.



  나는 차를 앞에 놓즈넉한 저녁에 호을로 마신다. 

  내가 좋아하는 차를 마신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사실일 뿐,

  차의 짙은 향기와는 관계 없이

  이것은 물과 같이 담담한 사실일 뿐이다. 


 시에서 화자(나余)가 차를 좋아하고 마시는 것은 '물과 같은 담담한 사실'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물은 어떤 질서도 배반하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순하고 정한 이치이다. 인간의 몸속에서도 물은 이치대로 흐른다. 성질이 다른 물이라면 몸 내부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겠지만 차는 인간의 내성을 닮은 물이다. '차의 짙은 향기와는 관계 없이' 말이다.  



차를 마시는 것은

이와 같이 스스로 달갑고 가장 즐거울 뿐, 

이것은 다만 사실이며 또 관습이다. 

나의 고즈넉한 관습이다.


물에게 물은 물일 뿐 

소금물일 뿐,

앞으로 남은 십년을 더 살든지 죽든지

나에게도 나는 나일 뿐,

이제는 차를 마시는 나일 뿐,


'물에게 물은 물일 뿐'이며 '나에게도 나는 나일 뿐'이다. '차를 마시는 나일 뿐'이다. 순하고 정하지 않은 것들을 다 쳐내고 나면 남게 되는 것은 '나'와 '차'뿐이다. '나'라는 존재, 그리고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 차. 바슐라르식으로 말하자면 차는 본질적이면서도 우월한 '부드러운 물'에 대한 사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김현승 시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절대자의 존재에 기대어 이해하고 바라보았던 시인이다. 그 시인이 오직 자신의 존재와 경험에 의거하여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이해하고 삶의 새로운 주체가 되겠다는 담담한 의지를 그린 것이 바로 「사실과 관습 : 고독 이후」이다. 


  이 짙은 향기와는 관계도 없이

  차를 마시는 사실과 관습은

  내가 아는 내게 대한 모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도 된다.


  결국 '나'라는 사실만 존재한다. 그 사실이 전부이고 이 삶의 모든 것이다. 그러고도 남는 일이 있다면 차를 마시는 일뿐이다. 




* 「눈물」과 「가을의 기도」로 잘 알려진 김현승의 작품은 꾸준히 출제되고 있다. 2019년 3학년 3월 모의평가에서 「오월의 환희」가 2018년 3학년 4월 모의고사에서 「밤은 영양이 풍부하다」가, 2005년 1학년 11월 모의고사에서는「지각」이 출제된 바 있다. 보통 해당 학년도 3학년 모의평가에서 출제된 작가의 작품은 대수능에서 좀처럼 출제되지 않는 편이지만 절대자의 질서 안에서 윤리적 성찰이나 대상에 대한 주관적 감응을 표현하는 김현승 시인의 시적 경향을 중심으로 아직 출제되지 않은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살펴볼 만한 작품으로「겨울까마귀」, 「마음의 집」, 「견고한 고독」을 비롯한 '고독'을 제재로 한 작품들이 있다. 김현승 시인에게 고독이란 부정적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내적 세계의 완성을 향한 절대적 시간'에 근접한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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