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 공주》에서 공주의 긴 머리는 여성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타인에 의해 구속당하는 역할과 굴레를 상징하고 있다. 아버지의 강요로 긴 머리를 유지해야 하는 공주는 점점 자유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의지대로 살게 된다. 자신을 아름답게 돋보이도록 도왔던 머리는 어느새 공주의 자유를 빼앗고, 공주는 점점 가고 싶은 곳도 갈 수 없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공주는 머리를 감는 것조차 혼자 할 수 없어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긴 머리를 주체하지 못하던 공주는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방 두 개에 담아 들고다니고, 이 가방을 혼자 들 수 없게 되자, 서커스 남자를 고용하여 그와 항상 함께 다니게 된다.
가난한 나라의 공주로서 나라의 경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느꼈던 공주는 자신의 긴 머리 덕분에 나라의 부가 축적되자, 자유로운 영혼의 서커스 남자와 야반도주를 한다. 타인에게 통제당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점점 무기력해지던 공주는 스스로 선택한 삶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다시 활력을 되찾는다.
새로운 삶을 찾은 공주는 행복할 수 있을까? 공주는 서커스 단원이 되기 위해 그동안 길러 왔던 머리를 자르는데, 이때 공주의 머리를 서커스 남자가 잘라준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서커스 남자의 뒷주머니에는 공주의 것으로 보이는 빗과 가위가 꽂혀있다. 이 장면을 보며 공주가 서커스를 하는 것과 머리를 자른 것이 과연 공주 내면의 목소리였는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서커스 남자는 공주에게 또 다른 아버지 역할을 하며, 자신의 욕구를 공주에게 강권하지는 않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있기는 한 것일까? 태어난 순간부터 주위 어른들로부터 학습되어 사회화된 인간으로서 자유의지가 얼마나 가능하단 말인가? 어린 시절부터 주변인에 의해 학습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는지 의문이 든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역할에 충실한 삶이 자신의 자유의지가 되어 버린다. 이들에게 자유 의지란 존재할 수 없다.
살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역할들이 우리의 숨통을 조여올 때가 있다. 긴 머리 공주의 머리카락처럼 우리를 구속하는 다양한 역할과 책임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역할을 모두 버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사실 자신의 자유를 위해 역할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역할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긴 머리 공주》의 주인공은 역할에 충실한 시간을 보낸 후,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의 자유를 위해 궁을 떠난다. 공주가 진정한 자유의지를 갖게 된 것인지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공주는 선택했고, 이제 공주의 삶은 또 다른 일들로 채워질 것이다.
인간은 대부분 역할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간다. 역할에 충실한 삶을 실컷 살다가 자유의지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으며,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삶을 살다가 역할을 중시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무엇이 옳은지 어떤 선택이 더 나은 삶인지 알 수 없지만, 선택은 우리의 몫이어야 한다. 타인에 의한 선택이 아닌 나의 선택으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나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역할에 충실한 삶이든 자유의지가 충만한 삶이든.
이 책은 우리의 삶에서 역할과 자유의지의 균형된 삶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고 지금까지 내가 선택했던 자유의지가 과연 내가 순수하게 원한 것이 맞는지 한 번 더 성찰하게 해주는 책이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면서 순수한 자유의지란 없을지도 모르지만 좀 더 예민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세상에 물들지 않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순간이 오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