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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May 05. 2022

마음이 무거운 어린이 날.

아들아 정말 정말 사랑해. 우주만침!

아들은 올해가 마지막 어린이날이다.

이날을 기다리며 며칠전부터 어린이날 맞이 선물을 기대했다.

벌써 열세살이나 됐지만,

아직 내 눈엔 아가야고 어린이다.


내게도 어린이날은 늘 들뜨고 설레는 날이다. 나는  순수한 동심의 어린이들을 참 좋아한다.해맑은 웃음, 투명한 눈빛, 천사같은 마음.

어린이는 하늘사람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사람중에서도 세상의 때가 묻지않은 순수한 사람들이기 때문인듯 하다.


어린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은 지금도 내 마음을 아프게한다. 때로는 그들이 가엾어 눈물이 흐른다.

도화지같은 순백색의 마음을 타고난 그들에게 어른이라는 색채도구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도, 어둡고 무서운그림을 그리기도 한다.아이를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고 하듯, 아이는 부모의 사랑과 원망을 먹고 산다.

그런 그들에게 이 세상의 전부는 부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들려오는 어린이날 관련 뉴스와 소식들을 보며 오늘은 어린이날인데 아들과 어디 다녀오는게 좋을까 연신 생각을 했다.

아들은 며칠전부터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자기가 원하는 선물은 게임프로그램이라고 살짝 언질을 해주었다.

그런 앙증맞은 애교가 귀여워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흔쾌히 안아주고 뽀뽀도 해주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어린이날 행사차 열리는 체험학습터나 공원등에 나들이를 다니며 김밥도 사먹고 솜사탕도 뜯어먹으며 마지막 어린이날을 원없이 어린이처럼 보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들이 원하는것은 집밖에서의 자유로운 체험보다 집안에서 소소히 보내며 게임하는것을 원한다고 하니 ,

어릴때부터 제대로 데리고다니며 놀아준적이 없어 밖에서 노는재미를 모르는 아들에게 집에서 게임만 하는것을 가르쳐준것만 같아  미안함을 느꼈다.

미안함이어야 하는데,아직 낫지않은 내 몸상태가 내 머리를 어지럽히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게 끔 만들었다.

몸이 아프면 생각도 부정적이 된다.


주말에야 보는 아빠를 어린이 날 특급찬스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아들을 위해 맛있는 저녁을 쏜다고 왔고,

아들이 좋아하는 짜장면과 치킨을 시켜놓고 상을 차리는데 아들이 그만 짜장면을 엎어버려 짜장이 바닥에 쏟겨 버리고 만것이다.

밥상앞에 무거운머리를 부여잡고 억지로 앉은 나는 순간 결벽적인 성격이 가시돋치듯 뻗쳐버려 아이에게 그만 고성과 상처가 말들을 해버렸고

아이는 당황한 나머지 울음을 터뜨렸다.

 무서운 아빠와 늘 잘 보이고 싶어하는 엄마가 함께 앉은 밥상 앞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파서 예민한 내 눈치를 보느라 식사는 입에도 대지않았고, 퉁퉁불어버린 면과 바닥을 덮어버린 짜장을 치울힘조차 없어 나는 그 장면을 외면해버리고 내 식사만 챙겨먹기 시작했다.

남편이 사온 약이라도 빨리먹어서 내 상태가 온전해질 생각만 한것이다.

그런 엄마아빠의 앞에서 아들은 자기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저 마음좀 추스리고 나올게요"


이 한마디를 던지고 아들은 방으로 들어가 숨죽이며 훌쩍훌쩍 울음소리를 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식사를 마쳤고, 아들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 휑한분위기에서 남편또한 아무말도 없이 밥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남편은 아들의 마지막 어린이날인데 싶어 먼길을 달려왔는데 ,아들의 사소한 실수보다 아내인 내가 불같이 화를 내고, 아빠가 쏘는 맛있는 식사를 손도 대지못하고 들어가 우는 아들이 있는 우리집안의 상황이  내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참지못하고 터진 아들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찢어져 아들방에 노크를 했고,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 더 큰소리를 내어울며 방문을 열어주었다. 아들을 말없이 껴안았다. 아들의 온몸은 북받친 서러움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그의 등을 어루만져주니 내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 예전 나 어릴적에 친절했던 엄마로 돌아와주면 안돼? 나 요즘 엄마가 무서워. 엄마 엄마.."


아파서.힘들어서 갖가지 이유로 핑계를 대며 엄마로서 자애롭지못한 내 모습에는 여유와 기쁨이라곤 눈꼽만큼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아들에게 양해구하듯 할 수도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말 없이 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미안하다. 아들아. 어서가서 짜장면 먹으렴. 다 불어터지면 못먹어.. 알았지?"


아들은 금새 뚝그치고 일어나 불어터지고 쏟은 짜장범벅을 주어담아 비벼먹었다.비빌때 잘 비벼지지않으니 남편이 아들에게 비비는 법을 세심히 가르쳐주었다.

남편은 아들이 먹을 치킨 그리고 함께먹을 짜장면이라고 시켰는데, 치킨보다 짜장면에 먼저 손을 대는 아들의 모습에 자신은 한입도 먹지않고 짜장면곱배기 한 그릇을 모두 아들에게 양보했다. 흘리고 불어터진 짜장면을 아들이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고있는 모습을 남편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래도 어린이 날인데. 어린이 날이었는데...

따사로운 햇볕아래 싱그러운 숲속을 거닐며 솜사탕 하나도  못사주고 아들에게 마지막 어린이날을 후회가득한 아쉬운 날로 남겨주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들은 오늘 행복하게 잘 보냈다고 말한다.


 좋은건 금새금새 까먹어버리는 정말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내 아들.


어쩌면 좋을까 .

 이를 어째...


2022.05.05

브런치작가 정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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