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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May 16. 2022

5월 셋째 주 에세이

매일 싸니 느는 김밥

어릴 때 소풍 가면 엄마가 싸주신 김밥을 별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없다.

나는 밥보다 햄버거나 피자 또는 돼지고기 두루치기 같은 음식을 더 좋아했고

소풍 갈 땐 김밥보다 차라리 유부초밥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아마 김밥 안에 들어있는 속재료들의 식감 때문이었던  같다.




나이가 들수록 입맛은 바뀌어 갔다.

아니,

딱히 먹을 음식이 없어서 김밥을 자주 사 먹게 됐다.

직장 다니면서 빠듯한 점심시간에 김밥 한 줄이 시간도 아끼고 영양도 챙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한 끼였다.

그리고 가로 늦게 김밥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세월흘러 어른되니 친정엄마가 나 어릴적 싸주신 불고기김밥이 정말 최고로 맛있었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다...주르륵.ㅜ


김밥천국에서 김밥 한 줄을 사서 나오면 김밥 꼬다리 쪽 은박지만 사악 걷어내서 세로로 길게 해서 들고는 꼬다리부터 하나씩 입안에 쏙 넣고 우물우물거리고 걸어 다녔다.

은박 포장지 채로 손에 쥐고 김밥 한 개씩 입안에 넣는 재미가 의외로 있었다.


직장을 다니며 아이의 소풍 도시락을 쌀 시간이 없었다.

김밥을 말아본 적이 없어서 늘 천국 가서 김밥을 사고서는 도시락통에 껍데기만 바꿔 넣은 채 보냈었다.

아무렴 집에서 싼 김밥 맛을 따라갈쏘냐...

생각하면 우리 아들에게 미안해진다.




베트남에 살게 되면서 본격적인 한국음식 이것저것을 만들어본다.

역시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나 보다.



한국에 살 때도 간혹 김밥을 둘둘 싸 보곤 했는데

김밥용 김이 집에 없어서 집에 있는 돌김이나 곱창김으로 김밥을 싸 보니 밥이 옆구리로 새거나, 썰다 보면 맨날 터져서 한 줄 그대로 먹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처음으로 김밥용 김을 사서 김밥을 말아보게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썰어도 터지지 않는다.


얏호ㅡ


너무 기분이 좋았다.

모양은 그러하나 자세히 보면

속은 집에 그냥 있는 재료를 넣었고,

밥도 간을 하지 않은 채 만들었더니 김과 밥과 속이 입안에서 따로 놀았다... ㅠㅠ


첫 김밥은 그렇게 해서 대충 완성이 되었는데.

우리 아들은 내가 처음 싸준 미흡한 김밥 네 줄을 맛있다며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주었다.



예쁜 건 아들 주고 못난 건 내가 먹어야 아들 인생이 탄탄대로가 될까 싶어 나는 삐죽삐죽 속이 튀어나온 못난 꼬다리만 모아서 먹었다.

그런데, 꼬다리가 더 맛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그렇게 김밥을 싸고 오늘은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오이를 넣어서 다시 김밥을 말아보았다.




오이하나 들어갔을 뿐인데 모양이 훨씬 잡혔다.

맛도 훌륭하다. ^^

어릴 때 먹던 그 김밥 맛이 났다... 아~~~이 감개무량함.





그동안 김밥 쌀 줄을 몰라 밥에 참기름과 간장 간을 하고 물기를 뺀 김치를 넣어 둘둘 말아 한 줄 그대로 먹었는데,


김밥의 원조 그대로 오이, 어묵, 햄, 당근, 계란을 넣고(단무지와 우엉은 없어서 못 넣음) 밥에도 참기름, 설탕, 식초 간을 해서 쌌더니 진짜 꿀맛이었다.


역시 김밥은 원조가 제일 맛있는 것 같다.


나도 내가 이런 훌륭한 김밥 맛을 낼 수 있다니

감동적이다.


나이 마흔에 처음 김밥을 싸 보는데.

누구나 재료만 잘 준비한다면 집에서 김밥을 쌀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꼬다리 모음은  역시 나의 차지다.


ㅡ끝ㅡ





2022.05.16

브런치 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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