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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마사지를 좋아하는 나의 남편.
뽀시라운 건 아니고...
by
햇살나무
May 18. 2022
내 남편은 머리 만지는 것, 귀 파는 것, 발 만져주는 것을 좋아한다.
연애할 땐 진중하고 근엄한 선배여서 든든하고 멋져 보였는데 결혼하고 나니 신혼 때 갑자기 귀를 파달라는 것이다.
회사 쉬는 날.
티브이 보는 나의 다리를 베고 누우며.
"자기야, 나 귀 파줘."
순간 잘못들은 줄 알았다.
'어.. 뭐지?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다시 물었다.
"귀 파 달라고? 귀? 뭘로 파주까?"
"뭘로 파주긴~~ 면봉으로 파지. 이르케 이르케 (면봉을 쥔 손으로 귓구멍을 돌리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이렇게'를 '이르케 이르케'로 귀엽게 얘기하는 남편.
또 하루는
"자기야, 나 머리만져줘 . 이르케 이르케 (앞머리를 뒤로 쓰다듬는 시늉을 하며)
진중하고 근엄했던 선배의 모습은 어디가고 남편이 된 선배는 귀여운 언어들을 많이 구사한다.
집 앞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은
'꺄악~꺄악~'
'○○야~~ 나잡아봐!!!!!!'
'엄마~~ 엄마!! 나 좀 봐!!!!'
물놀이가 신이 나서 아파트 옥상까지 들릴 몇 dB로 고함을 치기도 몇 옥타브로 고음을 선사하기도 하는데,
그런 어린이들을 보고
꼬꼬마쉥키들
이라고 부른다.
"오늘도 꼬꼬마쉥키들 한 무디기 모여있네. (수영장을 내려다보며)" 야들아!!!! 너희 집에 안 가나?
"
길거리 지나다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기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저 아가야 볼때기 봐라. 앙앙앙해주고 싶다."
"저 딸내미 머리카락 봐라. 뺑글뺑글 돌려주고 싶다."
"헤엑~~ 저 집 봐라. (애 넷을 데리고 가는 엄마를 보며) 아가 야들 천지다. 우와~~"
아들의 뽀얀 볼은 하루도 성할 날이 없다.
입으로 쭉쭉 물고 빨아서 시뻘겋거나 시꺼멓거나..
아들은 당할 땐 괴로워하지만, 막상 자국이 나도 자기눈에 보이지 않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옆에서 보는 나는 아들의 볼에 난 자국이 꼭 키스마크 같아서 학교 가면 친구들이 놀릴까 봐 속이 상한데 말이다.
아가야를 좋아해서 아기가 되어버린 남편은 밤이 되면 내게 발마사지를 요청한다.
"자기야. 나 발 만져줘."
힘든 나는 핑계를 대며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임신해서 수고한 내 발은 누가 만져줘?"
"내가 만져줄게."
하곤 퉁퉁부은 내 발은 호사스러운 남편의 손아귀 힘으로 노골노골해진다.
여러 해 발마사지를 해줘서인지 남편의 손맛이 점점 좋아졌다.
하루는 내가 발마사지를 받다가 잠이 들어 그다음 날 아침까지 쭈욱 자버렸다.
그랬더니, 남편은 아침부터
"왜 어제 내 발은 안 만져줘?(안 만져주고 계속 잔 거야? )"
"미안, 어제는 내가 너무 피곤해서.. "
정말 미안했다.
발 만져주기를 좋아하는 거 아는데 내가 먼저 잠들어서 말이다.
이제는 남편이 쉬는 날에 소파에 누워 있는 시간 틈틈이 발을 만져주려 한다.
내 발바닥은 각질이 일어나 까끌까끌한데 남편 발은 굉장히 매끄럽고 부드럽다.
남편의 발바닥이 부드러워진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생산직으로 일할 때에는 12시까지 풋살도 차고 오느라 발 냄새도 지독했고 굳은살도 많았다.
어느 날 무릎의 십자인대가 파열되어 양쪽 무릎 수술을 하게 됐다.
의사는 평발인데 어떻게 그 고통을 참았느냐고 했다.
남편은 자신의 발이 평발인지를 모른 채로 35년을 뛰고 살았다.
남편에게 무릎 수술로 많은 게 변했다.
돌아다니고, 뛰고, 서있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앉아있는 시간, 가만가만 걷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삶의 여러낙을 잃게 되었다.
베트남으로 건너와 홀로 타향살이 4년을 고생하고 감내하면서 자리 잡느라 ,
그 좋아하던 축구는 못하고 성향에 맞지 않은 골프를 배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
이제 둘째가 생겨 허리띠 졸라맨다고
골프마저 못하게 된 남편의 발은 더욱더 고와지고 있다.
겉으로는 고와 보이겠지만
속으론 많이도 문드러졌을
남편의 발.
그 발을 응원한다.
아니,
추앙한다
.
누워있는 남편의 발과 그 발을 만져주는 나의 손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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