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틈만 나면 책을 읽으셨다. 시댁은 아파트였고, 바로 앞동에는 시립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버님은 책을 빌려 읽으셨다. 거실 한 복판, 다과상 앞에 앉으셔서 책을 펼쳐놓으시곤 조용히 읽어 넘기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면서 요란했던 내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고, 읽고 싶은 책을 빌려 읽었다.
처음으로 빌려 읽은 책은 조정래 작가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었다.
어릴 때엔 마음이 심란해서 인지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읽는 행위가 힘들었다. 난독증도 있었다. 첫 문장을 읽으면 그다음 문장을 읽어야 되는데, 그다음 문장을 읽으려고 하니 첫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책을 펼치면 첫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던 내가 사십이 되니 기적처럼 책을 , 그것도 대하소설 10권을 완독 했다.
평생 읽지 않던 책을 그제야 읽게 된 배경에는 내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을 했다.
불안하고 요란했던 내 마음. 나는 의식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어서 무언가에 몰입을 하고 싶었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서예를 하시고 책을 읽으시는 아버님과, 쉬지 않고 돌아다니시며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 청소하시는 어머님 덕분에 나는 책을 더 잘 읽을 수 있었다.
어머님은 집안일을 하시다가 책을 읽는 내 모습을 보시고 기특해하셨다.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집중을 했고, 잠이 올 때에는 단잠도 자면서 편안하게 책에 몰입 했다.
내가 서평을 쓰면서 만난 작가님이 있다.
자신의 아픔을 고스란히 책으로 녹여낸 작가님은 변호사로 활동 중이시다. 아픈 가정사로 인해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모두 잊고, 그분은 이제 자신의 직업에 완전히 몰두하시면서 승승장구중이시다. 게다가 공황장애와 우울마저 이겨내신, 내게는 희망과도 같은 분이 되셨다.
나는 그 작가님이 지으신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겼는데, 서평을 쓴 나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우리는 줌으로 영상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공황발작 때문에 힘들어하는 내게 작가님은 책에 적히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 글을 쓴 사람들의 책을 50-60권을 사서 일주일 만에 그 책들을 다 읽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10일 만에 책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병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을거라는 말로 큰 희망을주셨다. 또, 언젠가 내가 내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내보기를 권유도 해주셨다. 작가님 본인도 책을 쓰시고 나서 많이 달라지셨다고..
그렇게 나는 작가님 말씀에 큰 힘을 얻었다.
책은 내 밑바닥에서부터 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인기피까지 있었던 나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1년 만에 무려 200권 가까운 책을 읽었다. 평생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던 내가 단 1년 만에 200권의 책을 읽게 된 건, 내가 공황과 우울을 낫기 위한 과정에서 일어난 일 들이다.
많은 작가님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꼭 내 친구가 된 것 같다. 그들의 진솔함 덕분에 나는 세상을 향해 가슴을 열 수 있었고, 그들의 글에서 실패로부터 단단해지는 방법을 알았으며, 희망을 얻었다.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서평을 썼고, 그 책을 쓰신 한 분 한 분의 작가님을 진심을 다해 추앙했고, 작가님들의 피땀 흘린 책들을 가슴에 품어 안았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속으로 응어리져 아무 말도 되지 못했던 내 감정들을 나는 서평을 통해 조금씩 털어놓게 되었다.
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고, 나는 그들의 손을 잡고 대인기피에서 벗어나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