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에 글을 4편 이상 쓴다.
아침기상시 긍정적인 글을 쓰고, 책이나 브런치를 읽다가 느끼는 글을 핸드폰으로 쓰고, 감사일기를 쓰고, 나만보는 감상일기를 쓰고, 공식적인 글을 브런치에 쓴다.
내가 글을 어떻게 이렇게 많이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책읽기 보다 글쓰기를 훨씬 더 일찍 부터 좋아해왔고, 또 많이 해왔다.
글쓰기는 책읽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 어린시절이었다.
책을 너무 안읽어서 오빠는 내가 편지를 써서 주면 누구 글을 베껴서 써온 줄 알았다.
초등학교2학년 크리스마스 때였던 것 같다.
나는 빨간색 도화지를 오려 카드처럼 만들고, 반짝이풀로 예쁘게 트리가 그려진 표지를 만든다음,
"추억이 담긴 크리스마스 보내길 바래."
라는 내용의 글로 카드 안지를 채워 오빠에게 줬다.
오빠는
"니, 이거 솔직하게 말해라. 이거 어디서 베꼈노?"
라며 놀라워했다.
난 황당했다. 그런데 그말인즉, 글이 좋다는 뜻.
그런식으로 의심을 덧붙인 인정은 그리 기분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춘기가 되었다.
과목마다 딸린 공책이 있듯, 내 감정을 위한 공책도 필요했다.
처음으로 장만한 다이어리,
보라색 가죽으로 된 다이어리였는데, 내 기억에 엄마가 쓰려고 샀던 것인지, 아무튼 엄마의 것이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나는 매일 숙제를 끝내고 나면 일기를 썼다. 그 보라색 가죽으로 된 다이어리에 말이다.
펜 욕심이 많아 예쁜 하이테크 펜과 사쿠라 펜으로 일기를 썼다.
깨알같은 글씨로 다이어리 전체를 빼곡히 채웠다. 그 다이어리는 내가 결혼하면서 내 방을 비울 때 함께 버렸다. 세월이 지나 읽어보니 사춘기시절의 감성이 이렇게 가시가 많이 돋아나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내성적인 성격의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다. 생각은 많아서 할말도 많았는데, 입 밖으로 말이 되어버리지 못한 말이 글이 되어 다닥다닥 빼곡하게 붙은 한 면의 정사각형으로 줄과 행을 맞춰 다이어리에 박혀 있었다.
적나라하게 적힌 내용이 내 얼굴을 붉혔다.
내가 적은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나의 자아는 너무 까칠했다.
내 다이어리는 스무권이 넘었다.
초등학교때 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기를 썼다.
에피소드가 없던 날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게는 매일 에피소드가 생겼다. 아니 내 내면은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나는 생각이 많아서 남들이 그냥 쉽게 넘어가는 장면도 내 내면속에서 내 생각대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내용들을 글로 옮겼다. 그 덕분에 기억력은 좋았다. 친구들이 추억 너머로 흐릿하게 떠오를까 하는 장면들을 회자할 때면 나는 그 때가 몇시쯤이었고, 어느 장소였고, 누가 함께 였는지를 모두 기억해서 말 해줬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날보고 어떻게 그런것 까지 다 기억을 하느냐고 뜨악해했지만, 내게 사진처럼 박힌 기억은 내가 그날그날 썼던 일기로 다시 재생시키면서 내 뇌로 각인시킨 덕분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나의 기록습관은 사라져버렸다.
매일 전쟁터와 같은 직장터에 나가면 이사람 저사람 눈치를 보느라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고, 그 때 그 때 완수해야 하는 할일에 치이느라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 어떻게 하면 오늘 하면서 들었던 잔소리를 내일 되면 듣지 않게 될까.' 그 생각밖에 없었던 나는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어 방전되는 체력때문에 책상 앞에 앉을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글을 쓰는 습관이 서서히 사라지게 된건 그 때 부터였다.
글을 쓰지 않은바람에, 내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짐작컨데, 글로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바람에 내 인생이 수직으로 곤두박질 쳤다는 건 알 수 있다.
내려갔으면 오를일만 남았다는 말 처럼.
나는 바닥을 쳤고, 지금은 오르는 중이다.
오를 수 있는 건 지금 내가 자리에 앉아 이렇게 기록을 하듯, 글로 나의 일상을 남기는 덕분이 아닐까 .
요즘 내 일상에서 최고로 힐링이 되는 시간은 글쓰기 시간이다. 글쓰기를 통해 내뱉고,돌아본다.
쓴 글을 보며 나 자신을 다시 느낀다. 그리고 댓글과 답글을 읽으며 위안과 도움을 받는다.
타국에서 쓰고있는 요즘의 내 글은 모두 나를 향해 있다.
예전에는 나를 제외한 내게 보이는 바깥세상과 사람들. 현상들에 대한 글들이 많았는데..
다 나이때문일까.
글을 쓰면서, 내 속에 뭉친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내 감정들을 차근차근 풀어내며 다시 원래의 나로 회복시켜 보려고 한다.
글을 쓰지 않은 지난 세월은 쏜살처럼 지나갔지만,
하루하루 글로 남기는 요즘은 찰나도 내게 금쪽같기만 하다.
[-다음편에서-]
2022.08.04
브런치작가 정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