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처음 공황발작을 앓았을 때, 나는 목구멍이 조여서 숨쉬기가 곤란해져 불안이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안의 우울로 인해 모자라는 호르몬이 나의 무조건 반사작용을 방해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신경정신과를 찾아갔을 때, 진료를 보면서 내 심정을 선생님께 이야기를 드렸고, 선생님은 내게 약물을 처방해주셨다.
대구 친정에서 포항 시댁으로 들어가면서 병원을 옮겼다. 포항지역에 있는 신경정신과로..
대구에 살 때 다니던 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곳이었다.
시댁에서 버스로 6코스를 가면 있는 곳.
버스를 타는 것도 당시엔 불안했기에 약을 먹고 병원을 향했다.
내가 그 병원을 처음 갔을 때에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병원이었다. 나는 9월 중순부터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이 병원은 9월 초에 개업을 했다.
선생님의 이력이 적힌 간판을 보고 있자니, 대학병원에서 쭉 근무를 하시다가 개인병원을 차려 나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원은 깨끗했고,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 모두 친절했다.
조용한 뉴에이지 음악이 잔잔히 흘렀다.
새 건물에서 나는 페인트와 목조 냄새, 그리고 그 냄새를 없앨 숲 속 향기가 나는 방향제가 뒤섞인 흰 백색의 깔끔한 공간이었다.
온통 흰색 공간에 개업 축하를 알리는 녹색 화분들이 병원 입구에 줄줄이 서서 생기를 내뿜고 있었다.
공간을 나누는 곳마다 책장이 놓여 있어서 환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면 불편해할 것을 고려한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가 숨어 있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아늑한 소파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키는 힐링 도서로 가득 찬 서재에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 나는 늘 책을 꺼내 읽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속삭이듯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책을 제자리에 꽂고 나서 진료실로 향했다.
진료실의 문에 노크를 한다.
모든 것이 다 괜찮다는 듯한, 포용하는 느낌의 선생님은
'어서 오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라고 다정하게 속삭이듯 말을 걸어오셨다.
무거운 내 발걸음은 한 발과 또 다른 한 발을 번갈아 내딛으며 터벅터벅 걸어가 환자석에 앉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흐를 것만 같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선생님과 상담하는 시간은 매우 편안했다.
내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내도 선생님은 경청하듯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며 들어주셨다. 이야기를 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 이야기 하지만, 선생님께 내 속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꺼내는 건 정말 부끄러웠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 불안에 대해 적극 공감해주셨고, 또 약을 먹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말기를 당부했다. 그러나 약에 의존해서 계속해서 약을 늘리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약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누구나 다 겪는 불안의 순간을 견디며 넘어가는 힘이 스스로에게 생길 때까지만 약이 도와줄 거라 했다.
내가 먹기 시작한 약은 강도가 센 것이었는지, 아님 내 몸이 처음 받아들여서 그 효과가 극대화되어 나타난 건지는 모를 일이다. 그 약을 먹고 나면 잠이 무지 쏟아졌다. 그리고 일상을 멍하게 보냈다. 그다음 날, 내 임의로 약을 안 먹어도 그 효과는 지속되었다. 나는 선생님과 상담도 하지 않은 채 내 마음대로 약 조절에 들어갔다.
그렇게 약을 먹지 않고 버티다, 조금 불안해진다 싶으면 약을 먹었다.
그렇게 병원에 가는 횟수도 줄고, 약을 먹는 횟수도 줄였다.
2019년, 남편의 초대를 받고 베트남 호찌민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전까지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 푸껫, 파타야, 일본 등 수많은 나라에 다니면서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공황발작이 최고치로 내 심장을 강타했다. 뜨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호흡곤란이 아주 심하게 왔고, 옆에 탄 아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창밖을 보며 비행기가 뜨는 모습을 손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20여 분간 지속된 공황발작. 한번 심하게 앓고 나서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비행기를 탔는데 발작이 너무 심하게 와서 정말 죽을듯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정기적으로 약을 꾸준히 복용하기 시작했다.
약을 선생님과 상의하지 않고 임의로 줄인 내 잘못이었다.
올해 2022년 1월까지 병원을 성실히 다니며 약을 꾸준히 복용했다.
비행기를 타고 다시 나타난 공황발작은 그 뒤로도 일상생활을 지속함에 있어서도 쉽게 드러났다. 비행기를 타는 것도 아닌데, 버스를 타거나, 차를 탈 때에도 느끼고, 뒷산으로 등산을 갈 때도 느끼고, 방 안에서 책을 읽다가도 느끼고 말이다. 몸소 한 번이라도 느끼게 되면 이 공황발작이란 녀석은 계속해서 내 몸에 붙어서 조금이라도 면역력이 떨어져서 나타나는 감기 증상처럼 느닷없이 출현했다.
올해 둘째가 들어섰다.
약을 먹으면 둘째에게 영향이 갈까 조심스러웠다. 임신 가능성이 있었기에 늘 조심하던 부분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또 임의대로 약을 줄이거나 끊었다가 더 큰 후유증으로 더 많은 약을 먹어야 될까 봐 이제는 마음대로 약을 끊지 않기로 다짐했다. 내가 불안해서 아이에게 내 기분이 전달되는 것보단 약을 먹고 편안한 기분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이 훨씬 더 이로울 거란 생각을 했다. 약을 먹어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베트남 현지 종합병원 신경정신과에 다니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약을 줄여보자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3개월 전에는 끊을 수 있으면 좋다면서 말이다.
벌써 6개월이니. 6개월부터 시작해 2주마다 약을 반틈, 반의 반, 반의 반의반 이렇게 1/2의 제곱으로 약을 줄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