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그리고 화해

18. 바꿀 수 없던 탄생.

by 햇살나무

어렸을 때는 겁이 많아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에게 빌었다.


'내일은 제발 그만 맞게 해 주세요.

예수님. 그리고 부처님.'


항상 잠자리에 들 때면 눈을 꼭 감고 빌었다.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깨달았다.

'왜 나는 불행할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열 살이 되기 전의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뭐가 그토록 힘들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냥 가정환경이 그랬다. 철저하고 걱정을 달고 사시는 아빠와 씩씩하고 긍정적이기만 한 엄마의 다툼은 끊이지 않았고, 그걸 본 오빠는 불안했으며 그 불안함을 동생인 나를 때리는 것으로 해소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매일 맞았고, 울면 더 맞았다. 울 수도, 울 줄도 모르게 된 나는 어릴 때부터 울음을 억압당했고 그랬기에 우울장애가 공황발작과 함께 어느 나이가 되자 툭 튀어나오게 되었다.


얼마 전 작년에 서평단으로서 지원받은 책으로 론다 번 작가가 지은 [위대한 시크릿]이란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16년 전에 세상에 큰 반향을 일으킨 베스트셀러 [더 시크릿]의 후속작이다.


작년에 이 책을 받고서 읽었을 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정말 내 본성의 알아차림이 절실해졌는 건지 이 책이 술술 잘 읽혔다. 한 문장 한 문장 똑똑히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다 읽고 나면 전체가 하나의 진리로 두리뭉실하게 이해되는 느낌. 말로 표현의 한계를 느끼고, 그 말을 표현하게 되면 그 표현조차 틀리게 되는 느낌이라 내용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읽고서 내 본성을 알아차리려 노력했고. 어떤 것도 내 생각과 마음에 자리하지 않은 그 상태를 나는 드디어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그러하다.

나는 정말 평화로워지고 싶었다.

이제는 정말 평온해지고 싶었다.

지금이 그런 때인가.

아마 불행이 포화가 되었기에 온 것 같다.

어디서 본 글처럼 내려놓고 행복해지자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말뿐인 내려놓기는 내 입에서 더 이상 어느 곳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진정한 내려놓기를 실천할 줄 몰랐다.






가족에 대한 미움이 괴로움으로 자리 잡아 그 괴로움에 집착하고 괴로워하니 몸이 더 괴로워지는 거 같았다.

그 괴로움이 싫었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나는 세상 모든 것에 미안하다고 빌었고, 심지어 괴로움에게조차 나는 미안하다고 빌었다. 그런데 나는 괴로움에게 빌고 있으니 괴로움으로 괴로워한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빌고 있었다. 괴로움 덩어리를 끌어안은 내게 미안하다고 빌었다. 그리고 괴로움을 끌어안은 나를 끌어안았다.

괴로움은 더 이상 자신의 존재는 이유가 없다는 듯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오빠의 얼굴이 그려졌다. 괴로워하며 울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가족이라는 구성원으로 나를 키워주고 지켜준 가족들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내가 엄마가 되고, 엄마 나이가 되어 엄마랑 똑같이 아프고 나니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들을 보니 오빠 생각이 절로 떠올랐고 남편을 보며 우리 아빠 생각이 절로 났다.


이젠 내 뱃속에 있는 나의 딸이 태어나면 어릴 적의 나에 대한 생각이 절로 떠오를 것 같다. 딸이 내 인생처럼 슬프지 않고 괴롭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갖고 있는 아픈 기억을 똑같이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내 딸을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싶다.


내 인생과 같아질까 봐 둘째를 갖기 꺼려했던 지난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딸이 생긴 순간 이것은 내가 미워하던 가족과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그들과 지금의 내가 화해할 때가 되었다고 내 운명이, 내 본성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2022.08.25

브런치 작가 정글







이전 17화왜 나는 힘들게 살아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