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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Mar 27. 2023

베트남에서 느끼는 요리와 삶


베트남살이 어느덧 만 1 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아들이 학교로 가는 시간에 나는 떤미시장으로 향한다.

시장으로 가는 길은 험한 편이다.

그러나 부지런함을 빼면 시체인 나는 일부러 고행을 사서 한다.


싸고 신선한 재료를 얻는 기쁨이,

비싼 음식을 편하게 배달받아먹는 기쁨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집 앞 한국마트는 가깝고 깨끗하지만 비싸다.

그만큼 편하다. 

편한 것과 돈은 반비례해왔다.

돈의 기회비용은 편함이듯, 

편함의 기회비용 또한 돈인 것처럼..


 순간의 편안함들을 포기하고 또 포기하다 보면 모아진 돈으로 중요한 순간에 아들친구들을 위해 마카롱을 살 수도 있고, 엄마들에게 코코넛커피스무디를 한잔씩 돌릴 수도 있다.


시장에서 사 온 저렴하고도 싱싱하고, 푸짐한 쪽파에 양념을 버무려 파김치를 만들면 엄마친구들에게도 나눠주고도 우리가 먹을 게 넘친다.

그리고 행복도 넘친다.





사람들을 만나면 일부러 베트남 현지식당을 찾는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현지음식을 사 먹으려 하는 것은 이곳에서의 적응이 순응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한국음식은 집에서만 해 먹는 걸로,~~





내가 나고 자란 경상도에서는 갈치를 치라고 부른다.


 칼치가 베트남로컬마트에 있길래 사서 구워 먹었지만 한국에서 먹는 만큼 맛은 없다.

탱자가 바다 건너 귤이 되었다고 하던데 그래서일까. 

칼치도 이곳에서 구해 먹는 것보다 한국산 제주도칼치가 제일 맛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굳이 이곳에서 조차 한국스러움을 고집하기 싫은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제목에 올린 사진의 정구지찌짐을 부치기 위해 정구지를 한 올 한 올 다듬고 마지막으로 물에 담궈 남은 흙먼지를 씻어냈다.


참고로 정구지는 부추의 사투리다. 경기도에서 온 친구가 정구지가 뭔지 모르던.. 나는 정구지가 표준어인 마냥 쓰다가 한참 뒤에야 부추라고 고쳐말했다.

이 곳 호치민은 대한민국사람도 수도권과 지방권에 살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살다보니 사투리도 표준어가 되고, 국어, 베트남어,영어가 짬뽕되어서 희안한 말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네 삶에는 순서가 있듯,

음식도 이렇게 입에 들어오기 전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불이 맛을 좌우한다.


음식 중에서는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있고,

불에 익혀야만 먹을 수 있는 게 있다.


물로 씻어낸 재료들을 불에 올려 먹는다.






우리 인생에서 물과 불은 뭘 의미하는 걸까.


물은 숙제를 ,

불은 성장을 의미하노라 말하고 싶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는 일은  

때를 벗겨내고 오로지 본질만 남기게 하는 ,

숙제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쓸데없는 잡념과 찌꺼기를 제거하고 본연의 의미를 되찾는 것.


되찾은 본연의 자성으로 세상을 배우고 그 속에서 성장이 따르는 게 아닐까 한다.


불은 그렇게 음식을 익히고 맛을 높이며 

인생 또한 성장시키는 것 같다.







물과 불로 완성된 요리들..


글을 쓰는 새벽에 음식사진들을 보니 배에서 신호가 온다. "꼬르륵~~" 또 먹고싶다...

집 가까운 pub집에서 먹은 맥주와 수제버거,

Phố 집에서 먹은 소고기,돌솥,게살쌀국수와 bún chả...


베트남 쌀국수는 날이 갈수록 더 맛있어 진다.














친구가 만들어 선물해준 장조림

한편,
숙성된 음식들도 있다.


숙성된 재료들은 그 자체로도 값지고 멋지지만,

그 재료들을 활용해

주무르고 조각해서 예쁘게 장식하면

음식은 한층 더 고급스러워진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숙성은 물과 불이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음식도 인생도

멋들어지게 만드는

최고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친구가 선물해준 장조림은 하루만에 클리어 해 버렸고,

스시는 배가 터지도록 양도 많고 맛도 좋은데 가격도 한국에 비해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깔끔하고 부내 나는 마트 안의 모습.

부촌이라 불리는 미드타운 내 안남마켓을 운동삼아 걸어가 보았다.


모든 물건들에 다 탐이 다.

너무나도 많아서 헷갈렸다.


과욕이 올라오기 전에 미리 계획해서 목록을 작성한 후 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두 손 가득 쥐고서도 양쪽 어깨와 온몸에 이고 지고하는 스스로에게 한숨을 쉬게 된다.






내가 만든 음식들.



어느 것은 맛있었고, 어느 것은 맛이 없었다.

그러나 내게 맛은 의미가 없다.

본래 먹성이 좋기 때문에 다 나의 입에 들어가게 되어있다.






음식을 통해 나는

맛있는 것을 지향하기보다,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 같다.

실험하는 것도 좋아한다.

궁극적으로 맛있는 음식 만들기를 위한 방법이 셀 수없이 차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레시피 하나 제대로 보고도 따라 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수도 많다.


너무 한국스럽지도,

그렇다고 또 베트남 스럽지도 않은

이름 없는 이 새로운 음식이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와 같기도 하다.


기분이 좋으면 여행에세이를 쓴다.

매일 이런 여행에세이가 써지면 좋겠다.





2023.03.27

브런치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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