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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글. 5

말이란 온도.

by 햇살나무

아들에게 말을 예쁘게 전하는 것이 왜 이리 안될까?




나의 말뽄새는 참 못났다..


그 역사는 어릴 적부터 시작됐다.

엄마와 함께 살던 어린 시절.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매번 엄마기분과는 상관없는 내 말만 되받아쳐서 엄마기분을 상하게 했었더랬다.

엄마는 그랬다.

"서방복이 없으니 자식복도 없네.!!"


같은 여자끼리 통할법도 한데 나는 늘 엄마아빠가 싸우면 현실적이고 냉정한 아빠 편을 들었더랬다.


"냉장고에 음식이 넘쳐나는데도 또 만들었네.

아~ 나 미치겠네."

아빠가 말했다.



"당신 입맛 맞추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허구한 날 삼시세끼 밥상 차리는 게 스트레스야!"

엄마가 말했다.


"앞으로 사 오지 마라.

내가 냉장고에 있는 거 탈탈 다 긁어먹을 테니깐! "



" 그래 엄마. 만들지 마. 아빠 먹지도 않는데 뭐 하러 돈 써? 만들어 주지 마. 아빠도 냉장고 속 맛없는 음식 먹어봐야 엄마가 매끼 만드는 거 고마운 거 알지."

내가 말했다.





엄마는

"그러다 네 아빠 죽어.

네 아빤 매끼 해다 바쳐야 돼.

밥상까지 방안에 들여놔야 먹어.

혼자 차려먹는 거?

어림없어. 손하나 까딱 안 해.

너는 딸년이 돼서 어째 그리 엄마 맘을 모르노?

네도 니 아빠 닮아 참 매정하다. 말 그리 하지 마."





"..."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윤 씨가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인정머리 없는 집안에 시집와서 너무 외롭다고.


나는 엄마의 사심이 그득 담긴 이야기를 듣는 게 불편했다.

어린 내 생각에 엄마의 불행을 귀담아 들어주면 엄마가 진짜 불행해질까 봐 겁이 났다.

아니, 불행한 엄마를 인정하기 싫은 거였다.


어진 척, 현명한 척.

사회의 평안을 위해 정의를 저울질하는 재판관처럼

나는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나쁘게 생각했다.

하나뿐인 내 엄만데

사회정의고 대의를 위한 답시고

내 엄마 편은 한 번도 들어드린 적이 없었다.


"인정머리 없는 년."


나는 그랬다.



아들이 수학학원 숙제를 안 했다.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 아드님이 또 숙제를 안 해와서 오늘은 진도를 못 나갔어요. 오늘은 숙제만 하다 갑니다.

숙제 양이 많아서 그것도 다 못하고 보냈어요.

참고해 주세요."


고개를 푹 숙인 아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선생님께 꾸중을 들어 기가 죽은 듯 보였다.


"엄마. 나 안아줘."

아들이 말했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너 잠깐 니 방에 가 있어라."



차가운 말투에

아들은 짐짓 놀래더니 숙인 머리 그대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생각을 정리하고 아들을 불렀다.


" 선생님께 내가 면목이 없네.

너는 어째 그리 숙제를 안 해가니? 학원이 노는 데가? 선생님이 니 친구야?

니가 아무리 사교적이고 농담을 잘하더라도

선생님은 웃긴 농담을 해서 자기를 웃게 하는 학생보다는

자기가 가르친 대로 잘 배우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학생을 더 좋아할 거다.

니가 그 학원을 계속 다니고 싶다면 당장 숙제부터 다 하고 못하겠으면 지금 말해.

니한테 맞는 스파르타식 학원 아는 데 있으니까."



"그래 엄마, 숙제할게.

근데 엄마.

나한테 말할 때 팩폭(팩트폭격) 하듯이 말하지 않아 줬으면 해.

내가 지금 배우는 게 매우 어려운 거란 말이야.

내가 푸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농담만 하고 오지는 않아.

나한테 상처주듯이 정곡은 찌르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곧 내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한숨이 나왔다.


"엄마, 내 말에 상처받았어? 그랬다면 미안해. "

그리곤 내 등을 토닥여주며 슬며시 미소를 짓는 아들.


사실 나는 엄마를 생각하고 있었다.



'인정머리 없는 년.'







"아냐.

니 말을 듣고 엄마가 생각이랑 감정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 "

그리고 덧붙였다.


"석아, 너는 머리가 좋아. 그치만 수학문제를 푸는데 있어서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아. "


"그래, 엄마.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듣기가 좋잖아.

알겠어.

고마워.

사랑해. "


그리곤 미소 짓는 아들.


누가 어른인지 모르겠다 라며 허튼 웃음으로 괜찮은 척했지만 실로 나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어 마음 한편이 찝찝해졌다.


그러나 차마 부끄러운 나머지

미안하다는 말은 결국 입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산 적이 있다.

제목만 보고 산 책이었다.

내가 말뽄새가 없다는 것을 나도 내가 알고 있었나 보다.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도 새겨진다고. 마음 깊숙이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이며, 우리는 그 꽃으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고."





어릴 적 엄마에게 위안의 말들을 가득 담아 심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엄마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아들에게 잘해주는 것으로 갚아야겠다.




예쁜 말로.

예쁜 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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