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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Aug 10. 2023

[책리뷰] 아버지의 해방일지

해방은 죽어서야 끝이 나는가.


[아버지의 해방일지]
지은이;정지아 작가님

문장이 구수하다.
그러나 문장을 집어삼킨 목 끝은 서글프다.

 빨치산인 아빠의 딸로 태어나 발목이 잡혀 더 높이 더 멀리 날지 못한 것에 늘 한탄만 했는데 결국 아빠는 미안하다 말없이 떠나시고 말았다.

장례를 치르며 조위금을 들고 오는 손님마다 아빠와 함께한 사연들을 풀어낸다. 동지이자 반역자였고 가까운 가족은 힘들게 해도 주변사람들에게는 힘이 되어준 사회주의자 고상욱. 빨치산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가족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새겼는데도 조위금을 들고 오는 걸음 끊이지 않고, 어느 이름 높은 자들과 협회에서 보낸 성대한 화환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사회주의가 물러난 이 시대에서 아빠는 이 생이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반역자의 삶은 그림자이고 숙여지내고 숨어 지내는 것.
허구한 날 엄마의 지청구를 들으며 허약하지만 단단하게 살아낸
아빠. 자신이 앓던 치매가 수치스러워 끝내 자신을 스스로 죽임으로써 해방을 했다. 아빠의 해방은 삶 끝까지도 꿋꿋한 결기처럼 보인다.

아빠와 함께 지낸 대부분의 세월은 다 나쁘고 아프기만 한 기억들이었지만, 어린 시절 약한 엄마대신 물에서, 길에서 함께 놀아주던 아빠의 품, 체취, 어깨 위, 등허리를 그리워하며 진정한 아빠의 모습은 그때뿐이었으리라 끝내 딸은 자신을 위로하고 아빠에게 용서를 구한다.

이 생을 떠나서야 비로소 해방을 맞이한 아빠와
아빠의 빈자리에 서서 아빠를 이해하고 용서한, 미워하는 마음에서 해방을 맞이한 딸의 아버지를 위한 해방일지.

재작년에 읽은 소설 태백산맥 10권 대부분이 전라도 배경이어서 그리 생경하지 않은 구수한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를 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도 눈에서 입 안으로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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