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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Jan 02. 2024

우리는 언제까지 이틀이상 붙어 있으면 안 되는 걸까요.

아빠와 사회생활 중인 가족


어제아침에는 좋았는데
밤이 되자 갑자기 남편이 돌변했다.

아침엔 온 가족 물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고 신나게 놀았더랬다.
전날 시켜놓고선 못 먹고 잠들어 꿈에서 생각나던 치맥을 참 삼아 먹으려 들고 내려갔다가 쉬는텀에 물 위로 올라와 썬베드에서 맛있게 먹고 온 가족이 집에 와서 낮잠을 잤다.

밤이 되어 상사와 저녁식사를 하게 됐고,
아들이 추천한 고깃집으로 모여서 술 한잔 곁들어 풍성하고 따뜻한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남편이 갑자기 아들에게 어른들 앞에서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호통을 쳤다.

바깥에 사람들이 다니는 앞에서 혼자 큰소리로 화를 낸 것이었다. 나는 이만하면 아들은 잘 해냈다고. 또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물었다가 남편은 더 크게 화를 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에도 아들의 태도 때문에 친분 있는 사람과 술자리에서 헤어지는 마당에 아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욕을 했기 때문이다. 민망한 것은 동석했던 언니가 훗날에 그 장면을 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편이 사춘기 아들에게 좀 심하게 대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고스란히 듣고만 있어야 했던 일이었다.




아들의 붙임성 좋은 4차원스러운 장난기는 많이 줄었다.


 사춘기라고 해도 사춘기 같지 않게 12살 어린 동생을 돌보며 오빠로서 애정 있고 착실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첫째지만 12살이나 많다고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는 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남편은 같은 문제로 몇 번을 얘기했냐며 호통을 쳤다.


 남의 눈에 들려는 모습을 그리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에게 다 참다 드디어 화가 났다. 나는 아들의 행동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만하면 말 수도 적었고 예도 갖춘 것 같은데..



자식은 자식이고
본인은 본인이지.


본인이 상사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게 힘에 부치면 우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부탁을 했으면 한다. 

잘 지내는 척.  괜찮은 척. 억지로 노력하고 있다는 걸 어제야 비로소 느꼈다. 그러나 가족에게도 자기가 하는 힘든 노력을 똑같이 하기를 요구하는 건 모순 아닌가. 옛 어느 성인도 자신이 힘든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고 하던 말이 있지 않았나.


당신 아버지도 당신의 행동에 못마땅해 속을 끓이는 세월을 얼마나 보냈을까.

아들도 인격체이고 그리고  이제는 남은 세월은 상황이 역전되어 우리는 힘없이 늙어가고 아들은 장성하여 힘이 세지지 않을 텐가. 그런 아들은 남편의 자식이지 부하가 아니지 않은가.

'대체 아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이렇게 대로하느냐 ,
예를 들어서 자세하게 말을 해달라'라고 나는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예는 들어서 일일이 말을 못 하겠고 그게 한 두 번이었겠느냐'며 날을 세우는 모습이 너무나 감정적이었다.

 일본에 죽음을 앞둔 사무라이 부하 납셨네...

상사 말이라면 가족도 죽이고 본인 스스로도 할복해서 죽을 인간 같으니라고

일부러 당신 애 먹이려고 아들이 짓궂게 행동했겠어요?

대체 아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아들은 크면서 부끄러움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말수가 많아 스스로 표현을 자중하며 버벅대는 모습이 느껴졌는데 남편은 아들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상사에 대해 잘 대하지 못하는 부분을 가족이 대신해 주길 바란 건데 우리가 그에 비해 너무 건성이었던 것인지 여러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솔직한 자신의 표현은 숨기고 오로지 아들의 사회성이 아들의 인생을 망칠까 봐 화가 났다고 끝까지 소리를 내지르는 모습. 그럼 당신 말대로 내가 아들과 대화를 해보겠다고 하고 아들방으로 들어가 단둘이 대화를 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나도 누르고  참았던 분이 오르기 시작했다. 남편의 화에 나도 약이 올랐던 것이다.


 늘 외톨이로, 온몸을 방 한 구석으로 나태하게 만들며 예의는 가르쳐주지 않는 그의 유일한 친구인 컴퓨터를 다혈질인 나는 그 자리에서 던져 부숴버렸다. 아들의 유일한 낙이지만 나도 아직은 마음을 다 열어주지 못해 미안하기만 한 친구를 서서히 받아들이는 중이었는데..


남편은 깜짝 놀라 방으로 뛰어들어왔고 아들은 두 손을 비비며 내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이 불이 나게 빌며 오열했다.


 그 순간에도 남편이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아들아 이제 괜찮을 거야. 컴퓨터와 핸드폰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운 것이니 이제는 싸우지 않게 될 거니까'


라는 어이없는 한 마디.

그렇게 말하는 남편의 모습이 더 가증스러워졌고 나는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거기서  술을 더 떠서 남편은 핸드폰은  자기가 부숴 버리겠다고 다.  폴더 폰을 잡고 닭 목을 비틀듯 반대방향으로 꺾어버리는 남편. 눈이 돌아간  나는 그 폰을 당장 빼앗아 들고 내 눈앞에서 바닥으로 집어던져 버렸다. 아들의 무너지는 모습 앞에서도 아랫집에서 시끄러워할까 봐 걱정을 하는 사람..


이성적인 척 나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초지일관 모순된 태도


그리고 덧붙이는 한 마디


<우리는 이틀이상 붙어 있으면 안 된다.>


신혼 때부터 주야장천 들어온 이 말.


목 끝에서 꺄악! 하는 고함이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선 것처럼  튀어나갈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내가 그 폰을 한번 더 던져 부숴버린 게 교양 없어 보인다는 듯 능멸하는 눈을 흘기는 남편.




오늘 아침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는 내가 좀 심했어.

미안했다.

근데 핸드폰은 어쩌지?'



...

이제야 망가진 물건을 걱정하고 내가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으면 걱정을 할 거라 걱정하는 남편.



나는 무너진 네 마음이 걱정스럽다.



상사와 매번 식사자리를  같이 하고 난 후면 꼭 시험결과를 듣는 기분이 든다.

하기사 그 마음 나도 이해는 한다.

 나도 결혼초에 당신네 집에 갈 때 선생님이셨던 아버님께 나의 어릴 적 습관과 성격이 치부처럼 드러날까 봐 괜찮은 척 애써봤으니까...



기대지 말고 살라며 야멸차게 돌직구를 날리던 남편.

당신이 약해지고 있는 게 보인다.

그러면 이제는 좀 화합할 때가 아닌가.


그러려면 먼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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