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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Oct 27. 2023

헤어짐은 늘 갑작스럽고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베트남 생활을 시작한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낯선 땅에서 숨 쉬며 적응하는 게 어렵기만 했는데 그래도 2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치열하게 살아냈다.


이곳 토박이인 베트남인들과도 친해지려고 애를 썼고

이곳의 이방인인 한국인들과도 친해지려고 애를 썼다.


타고난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고파하면서도

타고난 외로움 때문에 혼자 있고 싶어지는 시간도 많았다.


사람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 지난 시절 때문에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겁이 났다. 사람을 고파하면서도 다가오려 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또 사람을 찾고 또 찾았다.  내가 먼저 선을 그어놓고 상대가 긋는 선에 혼자서 몰래 상처를 받았다. 그래도 좋았다. 곁에 아무도 없는 단절된 생활을 겪어본 나로서는 그래도 상처 주는 사람이라도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나는 늘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의심의 날을 세웠다.

엄한 가정환경 탓에 불편한 관계가 익숙했던 나는 내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계속 다가갔다. 싫으면서도 몸에 익은지라 그 쓴소리를 듣기 위해 다가가고 또 다가갔다.




늘 뒤통수만 보고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내가 신경이 쓰였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동네 반장 같은 사람이었다. 인상은 새침하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는 밝고 씩씩한 같은 아파트 엄마.

나의 연고지와도 인연이 있고 나랑 나이도 같은 동갑내기였다.


사람은 매일 나를 궁금해했다. 왜 반기지도 않는 사람 뒷 꽁무니만 쫓아다니는지...

나는 그 사람과 매일 마주쳤고 그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랬듯 내게도 안부인사를 건네왔다. 불편한 관계에 익숙해있던 나는 그녀의 물음에는 진심과 정성을 다해 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주치는 횟수가 많아졌고 그러다 우리는 수영을 함께 하기로 했다.


매일같이 수영을 하는 사이.

운동과 취미의 경계였던 수영을 운동으로 이끌어준 사람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을 가진 씩씩한 그 사람과 나는 함께 술을 마시며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와 나는 입맛도 비슷했고 술을 먹는 양도 비슷했다. 매일 습관처럼 함께 점심을 먹었고 간간이 격렬한 수영 후에는 간단한 맥주도 마셨다.


알면 알수록 괜찮은 사람.

그 사람은 처음으로 타국에서 만든 내 친구였다.


친구는 내게 많은 것을 공유했다.


맛집부터 수영법 그리고 사람상대하는 법 까지.

억척스럽게 엄마노릇도 잘 해내면서도 주위 사람까지 알뜰살뜰 잘 챙기는 친구.


보면 볼수록 배울 점이 많았다.


나는 그 친구 덕분에 낯선 세상에 한 발을 더 내딛을 수 있었다.

늘 함께였기에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았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매일 봤기에 가족 같은 느낌도 들었다.


눈을 뜨면 하루가 설레었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지 궁금했다.

아침수영이 끝난 후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는 것도 행복한 고민이었다.

하루는 동네 로컬식당에서,

또 하루는 시내 일본거리에서,

또 하루는 쇼핑몰에서.

그런 거나한 점심식사 후에 가족들 먹일 식재료를 한 보따리 사서 부른 배를 두드리고 하하 호호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친구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갑자기 마음이 매우 아파왔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많으면서도 나는 또 한 번 사람에게 상처받을 것에 미리 대비하지 않았다.

적정한 선을 유지하며 너무 정을 주지도 의지하지도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막상 간다고 하니 그제야 내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정을 주었고 그 관계에 길들여져 있었다.


헤어짐은 언제나 괴롭고,

언제나 익숙하지가 않다.


그 친구는 말했다.

만나면 헤어질 날도 있는 법이라고. 누구에게 의지할 생각 말고 혼자 잘 살아갈 생각을 하라고.

또 혹시 아나?

이 인연이 평생 갈지.


나는 마지막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 살 같던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생각에 한 순간 문득 눈물이 고이지만 꾸역꾸역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 친구 없는 일상이 익숙해질 날도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란다.


멀리 있어도 우리 인연은 끝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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