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글 Jeonggeul Jul 21. 2023

2021년 7월 20일에 썼다가 내 서랍에 들어간 글.

왜 서랍에 넣어뒀을까.

오늘은 7월 20일 오후 3시.

최고로 더운 한여름의

뙤약볕으로 달궈진

육지의 열이 최고로 오른

한 낮..

차 본넷에 삼겹살도 굽히지 싶다.

작년여름 뉴스에 어떤 기자가 한여름 뙤약볕에 포일을 깔고 계란프라이를 해 먹던데,.

올해도 그런 기자가 있겠지.



난 방바닥에 누워 책을 읽고 있다.

그러고 보니,


매일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은 우리 아들은 오늘은 별일 없었나?

외동아들이라 누가 어쨌다고 매일매일 돌아가며 새로이 등장하는 친구이름들을 들먹이며 나한테 찡찡대는 울아들. 그냥 원격수업 안 하고 학교 가는 게 귀찮고 힘들어서 그런듯 싶다.

오늘은 전화가 없는 걸 보니 별일이 없었나 보다.



내가 방구석에 누워서 집안 일도 안 하고 뒹굴뒹굴 책이나 보는 거 아시면서도

내가 뭘 하는지 한 시도 가만 놔두지 않고 내 방에 슬그머니 찾아오셔서

까꿍~ 우리 며느리 뭐 어해애~~

 물어보시는 어머니가 오늘따라 조용하시다.




이 시간이면 에어컨 틀고"여보 안주! 나 막걸리 한잔 하게" 하며 돼지부속물 또는 닭똥집 안주를 주로 드시는 아버님께서 웬일로 뒷산에 운동하러 가신다고 등산복을 입고 계신다.




오롯이 혼자인 이 시간.

우리 아들 별 탈 없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학교생활 잘 끝나서 다행이고,

우리 어머니 내가 방에서 뭘 하든 안 보여도 쉬겠거니 마음 헤아려 주셔서 다행이고,

좋지 않은 술 매일 드시던 아버님 건강해지려 등산 가신다니 참 다행이다.




신혼 때 산 10년 된 선풍기 모터가 시원치 않아서 강풍을 틀어도 날개가 "왤왤왤왤" 거리며 바람을 힘들게 불어내지만 산들바람처럼 바람을 주어 고맙고

비록 시댁이지만 뜨거운 뙤약볕 피할 집이 있어 고맙고

집안 젤 작은 손님방 돼지우리인지 창고인지 정리되지 않은 짐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지만 누울 바닥 있어 고맙고

책 읽을 수 있는 나만의 시간 주신 모든 가족 구성원의 무탈함이 고맙고

이 글을 쓸 수 있는 핸드폰이 있어 고맙고

내 눈과 손이 협응이 잘 되어 내 몸에게 참 고맙다.





고맙다. 다행이다.

억지로 짜냈다 하더라도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은

당연한 게 아니라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이 글은 재작년 오늘의 내가 쓴 글이다.

시집살이 3년 후, 탈출한 지 정확히 2년이 지났다.

한 여름 정점에서 뜨뜻한 공기와 매미소리가 공간을 메우고 에어컨보다는 낡은 선풍기로 무더위를 지낸  때.

얼음을 가득 채운 커피와 방바닥 키스로 여름 낮 종일을 보냈던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른다.

방바닥이 제일 시원해서 후끈후끈 열을 발산하는 내 몸을 식히느라 맨바닥에 누워 책만 읽고 뒹굴대던 2년 전 오늘.

내 머리맡에 틔워진 창문너머 베란다에서 지금도 어머니가 수도아래 쭈그리고 앉아 찰방찰방 걸레를 빨러 딸깍딸깍 슬리퍼를 밀어 끄시며 걸어오실 것만 같다.

탈출이라고 표현한 시댁이지만 지나고 나니 모든 게 추억이요, 2023년 7월 21일 새벽 5시, 베트남 호찌민에서 동트는 새벽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뇌에는 재작년 시집 살던 그때 그날의 그 시점, 그 장면을 그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견디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