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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Apr 15. 2024

외할머니 같은 사랑

내게도 외할머니가 계셨다.

월요일이면
귀한 분을 만난다.

'아이키우는 것도 바쁘고 힘들 텐데

이렇게 열심히 공부도 하다니'
라시며 수줍은 미소로 나름의 환대를 하시는 분.


만날 때면

나는 이제까지 해간 숙제와 함께 공부할 책만 들고 가는데

그분은 항상 책상 위에 뭔가에 싸인 비닐을 얹어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끝날 때마다 집으로 가져가보면


어느 날은
묵은지 두 포기


어느 날은
예쁜 채소 유부초밥


어느 날은
각종 과일과 반찬 등이었다.

그리고
이번 주, 그러니까 오늘은

제철풋망고와
흑임자죽
얼린 수제식혜..

이 더운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음식들을 주마다 나를 위해 직접 다 만드시거니와 불 앞에서 어지간한 인내가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 음식들만 만드시는 것이 나는 퍽 감동스러웠다.

받을 때는 어벙벙하고 쑥스러워서
멋쩍게 그냥 '감사합니다'라고만 하지만,
집에 와서 잠든 아이 옆에서 소리 내지 않고 조심스레 뚜껑을 열고 입을 앙다물고 먹으면

주신 분 미소가 떠오르며
마음이 먹먹해진다.

오늘따라 나에게 전달된 이 뜨거운 음식이 냉동실에 얼려져서 왔을 때

나는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살아생전 잘 뵌 적은 없다.


김포나 강화도, 일산으로 이사를 다니셔서 대구에서 살던 나는 그 먼 거리를 가는 게 힘들어서라기보다
허구한 날 처가와 변소는 멀수록 좋다는 문둥이 영남지방 경상도 사람이던 아빠의 사상이 집안 장판이며 벽이나 천장마다 안개처럼 스며들었기 때문에 엄마의 고향집을 방문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조차 더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나랑 70년 차이가 났다.
갈 때마다 말쑥히 반가워하지는 않으셨지만 적은 말 수 대신 늘 음식을 내어주시는 행동과 함께 그저 '이정이 많이 먹으라'는 말씀뿐이셨다.

돌아가신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외할머니가 문득 떠오르는 건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귀한 분이 나의 수고를 헤아려주고 잘 챙겨 먹으라며 수줍은 정이 가득스런 미소로 내어주시는 행동이 외할머니와 닮아서 인가 보다.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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