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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May 13. 2024

타국살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행기를 타고 5시간

정확한 경로는 모르겠으나 태평양을 지나고 중국령도 지나는지도 모르겠으나 동북아시아인 한국입장에서는 서쪽으로 또 남쪽으로 와서

열대기후인 나라에 몇 년간 아님 평생을 모를 세월을 살러왔다.


지리가 달라지니 언어도 다르다.

내 인생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국에 살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도 너무나 많은 의미부여를 하며 밤새도록 나 자신을 힘들게 괴롭히던 나는


이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소이 바디랭귀지로 소통하며 지낸다.


주로 얼굴표정과 손짓 그리고 발의 방향이면 대충 알아듣는다.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다. 그저 사는데 도움되는 방향으로만 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각이 많아지면 안 된다.

생각은 의심이 되고

의심은 부정이 되고

부정은 비판적인 시선과 표정을 만들어내고 

그러면 소통하기를 거부하게 되고

결국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남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서 종교도 바뀌었다.

터부시 하고 편견을 가지기만 했던 교회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한국사람이 많고 혼자서는 지내기 힘든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면 같은 한국인이라도 선한 표정으로 온 마음을 다해 열어 환영해 주었다. 상처가 많은 한국인들은 이 곳에 와서도 서로 말이 와전될까 소문날까 고립될까 관계 없이 지내는게 대부분이니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 어떤 삶을 살았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바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기도를 드리고 찬양을 하는데 그동안 나지 않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버렸고 그렇게 폭포수처럼 마르지 않는 뜨거운 눈물을 펑펑 흘리고는 속이 후련해졌다.


한국에선 울면 자꾸 울 일만 생긴다고 , 울면 지는것이라고 몰아세우는 시선때문에 우는 것 자체를 안 좋게 바라봐주어 울음을 참고 또 참았는데 교회 안에선  은혜받은 사람들이 서슴없이 예배당 안에서 자기만의 속사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기 때문에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게다가 그 모습은 진정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적어도 그것은 누구를 위한 속임이 아닌 진심을 다한 눈물이었으므로.


어쩌다 한국인 여행객 한 분이 수영을 하다가 말을 걸어오셨는데 이 곳에 조카가 살아서 2주간 여행을 왔다가 다음 날 한국으로 떠나는데 이 곳에 가까운 교회가 있다면 가고 싶다며 내게 소개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그렇게 나는 그분과 주일에 교회버스를 기다리며 약간의 담소를 나눴는데 뜬금없이 내게 '우리는 하나예요. 공동체니까요. '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히 울리는 것 같다.


멀리서 찾아온 낯선 손님.

하루만 보았는데도 '우리는 하나다.' 라는 말.

하나님을 믿기때문이라기보다

그리고 종교와 종교아님을 떠나서

만물이 그리고 온 우주가 하나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어쨌든 모든 것이 다 달라져간다. 


생활은 단순해지고 비빌곳은 오직 한 곳뿐이고 그래서 삶의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것 같다.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너무나 많았던 한국에서의 생활. 남들과의 비교와 경쟁 속의 시선에 잃어버렸던 나 자신을 열대지방에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골방에 앉아 혼자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레 지내며 본래의 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타국인들과 소통을 하면서 말투나 단어선택 때문에 예민해질 수가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달라도 사람은 사람이니

웃음과 긍정,배려와 베풂은 통한다.



여긴 베트남이야.


까딱하면 칼부림으로 목숨을 잃어도 모르는 외국인노동자와 그의 가족으로 온 입장.

한국인의 사고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내려앉기도 하기도 ,

또 이 나라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이방인이지만 ,


사람이 사람도리만 잘 행한다면

살만한 곳이 또한 이곳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온 사방에 퍼지고

낯선 사람들에게도 터놓고 말을 걸어오며

눈만 마주쳐도 미소를 지어주는

곳 사람들의 순박함이


때 묻은 나의 모습이 이제는 때 묻은 채로 있어서도 안되고 그렇게 있을 수도 없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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