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었을 정도로 여름을 즐겼던 나. 이번 여름은 무척이나 덥고, 습하고 뜨겁다. 어느덧 훌쩍 커버린 아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바다에 가서 함께 Sup 보드를 함께 타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여름 바다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만큼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갔으니 어쩌겠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올해는 이래저래 여름 나기가 수월치 않다. 게다가 열대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그 옛날 에어컨도 없던 어린 시절, 추억의 8할을 차지하는 '여름 바다'가 그리워지곤 한다.
내 고향집은 조그만 바닷가 마을이었다.
동네에는 또래 친구가 많지 않았고 마땅히 놀거리도 없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다에서 낚시를 한다거나,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해루질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한산하던 시골마을이 여름이 되면 도시 사람들이 몰려왔다. 도시 사람들은 그것을 '바캉스'라고 했다.
그래서 여름 바캉스 시즌에는 동네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시끌벅적했다. 하루에 시내버스 한 두대 들어오던 이 마을에 서울까지 직통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임시 운행되고, 서울, 인천, 수원 등의 목적지 안내판을 단 전세관광버스들은 마치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을 꾹꾹 채워 날랐다.
당시 도시에서 온 행락객들. 그중에 젊은 사람들은 주로 바닷가 몽돌 자갈밭 위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8월의 강렬한 태양빛으로 뜨겁게 달궈진 몽돌의 열기는 늦은 밤까지도 식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바닷가 모래 백사장위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기타를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동네사람들은집집마다 '민박'이라는 쓴 입간판을 세우고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은 모두 행락객들에게 방으로 내어줬다. 특히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은 화장실과 샤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박을 선호했다. 사람들은 민박집 앞마당 들마루에 둘러앉아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밤이 되면 모기향을 사방에 피우고 돗자리에 누워 밤하늘의 별, 달을 보면서 여름날의 추억을 쌓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바캉스 기간만큼은 만사 제쳐두고 손님맞이에 몰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농사나 어업으로 생계를 꾸렸던 마을사람들에게 일 년 중 이 한 달 동안 가장 큰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었으니 8월은 가장 활력이 넘치는 달이었다.
그 덕에 여름 방학 동안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두둑이 받기도 했다. 반면 인근 다른 동네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은 다른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우리를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나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몇몇 동네 친구들과 함께 썰물(바닷물이 육지에서 바다로 밀려 나감)에 맞춰 바다로 나가곤 했다. 밀려 나가는 바닷물을 따라 물놀이를 하기도 하고, 드러난 바위틈에서 소라, 해삼, 돌게 등을 잡기도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정신없이 놀다 보면 바다는 어느새 밀물(밀려 나갔던 바닷물이 육지로 들어옴)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때는 이미오후 늦은 시간, 마을회관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곤 했다. 아주 낯익은 목소리로 사람 찾는 방송이었다.
"000 씨네 둘째 아들 000, 000네 첫째 000은 이 방송을 듣는 즉시부모님들이 걱정하고 있으니 집으로 귀가하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해 드립니다. 000 씨네 둘째 아들 000, 000네 첫째 000은 이 방송을 듣는 즉시, 집으로 귀가하기 바랍니다".
우리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당시, 아버지는 마을번영회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내 친구를 찾는 방송을하기도 하고, 가끔은 물놀이 안전사고 경고 방송을 한다거나, 미아 및 분실물 찾기, 차량 이동 등 각종 민원 안내 방송도 했다.
그렇게 귀가 독촉 방송을 듣고 새까맣게 탄 얼굴로 집에 돌아오자마자 지하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지하수로 샤워를 했다. 한여름인데도 지하수는 얼마나 차갑던지 입술이 시퍼렇게 질릴 정도였다.
그런 날에는 해가 저물고 밤이 되면 새까맣게 탄 얼굴, 어깨, 등에서는 붉게 열이 오르며 화닥거렸다. 그럴 때마다 잠 못 들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항상 시원한 오이를 얇게 썰어 얼굴과 등에 붙여 주셨다. 그렇게 하면 일단 몸의 열기도 빠지고, 화닥거림도 금세 사라지곤 했다. 2~3일 뒤 피부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다행히 피부가 벗겨지는 일은 없었다.
유년 시절의 여름 바다는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줬다. 언제 어느 바다에 가든 바다는 내게 항상 열려있다. 그래서 그 바다는 여전히 삶이 무겁게 느껴지거나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내게 항상 기운을 아낌없이 채워준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은 이제는 그 시절 여름처럼 아버지가 나를 찾는 방송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내가 이제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고, 그때의 내 나이만큼 커버린 아들이 있다.
이제는 오직추억이 된 그의 목소리를 마음속으로 기억할 뿐이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그 시절 그가 그리워진다. 그의 기일이 다가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