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점심시간에 동료와 급하게 점심을 먹는 건지, 입에 그냥 밀어 넣는 건지 그렇게 허걱지겁 식사를 마치고 인근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직 2월인데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햇볕이 따스하게 내려쬐었다. 동료와 함께 소화도 식힐 겸 커피를 Take-out 해 인근 공원을 함께 걷기로 했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금손 사장님이 직접 만든 자수, 도자기 등으로 가득한 엣지 있는 인테리어를 감상하면서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붉은 벽돌로 차곡차곡 쌓인 한쪽 벽면에 우리의 시선이 멈췄다. 그 곳에는 예전 시골에서 자주 보았던, 매일 낱장으로 뜯어 내던 추억의 달력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예전의 달력과는 사뭇 달랐다. 심지어 달력이 재미있다.
미모의 모델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상주의 화가들인 그린 명화가 있는 것도 아닌 하얀 종이에 달랑 시커면 숫자와 글자만 쓰여있는 아주 단순하고 밋밋한 달력이 흥미로웠다.
2月 바람타구 탑세기*가 많이 널러 왔네 16 바람에 먼지가 많이 날아왔네
'탑세기'는 '먼지'라는 뜻의 충청도 방언으로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이 자주 쓰던 말인데 그 단어 한마디에 반가움, 그리움이 몰려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네 사람들 중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 시절 평소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내가 산으로 들로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러 다닐 때마다 '00야 탑세기도 많은디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녀~!' 하며 걱정반 우려반 철없는 둘째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에게 당신에게는 최선이었을 그런 방식으로 애정을 드러내곤 하셨다.
추억의 달력에 탑세기라는 한 단어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갑자기 그렇게 소환되었다. 보고 싶어도 다시 볼 수 없는 그를 그 짧은 순간에 말이다. 얇디얇은 그 낱장의 달력 한 장으로 어릴 적 추억과 함께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2월 16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