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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Mar 25. 2024

창문너머 옛 생각이 어렴풋이

공주에 봄 피다.

주말 나들이 겸 친구를 만나러 오랜만에 공주에 갔다.

언제 어느 때 가도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그 위에 앙상하게 뻗는 철재 구조물 금강철교는 늘 한결 같이 정겹게 날 반긴다.


학창시절 할 일 없을 때 친구와  뛰놀던 공산성이 어느덧 세계문화문화유산이 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 옛날의 정겨움은 온데 간데없지만 봄날 따사로운 창가에 다정하게 앉아 공산성 View를 즐기며 망중한을 즐기는 연인인들, 공주의 자랑 밤케이크를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관광객들. 그 모든 이들의 얼굴은 봄 햇살만큼이나 여유로워 보인다.

  

비좁은 골목길을 지나 간신히 주차를 하고 그 동네 1등 맛집. 시장정육점육회비빔밥을 먹으러 갔지만 그곳도 소문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 대기표를 받아 들고 내 차례까지 기다리는 10분 동안, 시원한 봄바람이 건조해진 피부를 스쳐지나지만 긴 겨울 느끼지 못했던 따사로운 기운이 온몸에 퍼진다.


테이블 기다리는데 10분, 주문하는데 3초, 서빙되는데 2분, 먹는 시간 10분, 그렇게 육회비빔밥 한 그릇 뚝딱하고 나오는데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 맛이야 이미 허영만 선생님과 여러 방송을 통해 검증된 맛. 요즘처럼 입맛 없을 때. 겨우내 죽어있는 입맛 다시 심폐소생해 주기에 충분한 맛이다. 특제 비법의 빨간 양념, 신선한 육회와 갖가지 야채. 그리고 공주의 자랑 공주 알밤이 들어었어 맛의 품격을 더해 주니 입안은 호화로워지고 배는 거북하지 않아 다이어트를 걱정하는 분들께도 한 그릇 추천하기에도 큰 무리가 없다.  


주말 관광객들이 붐비는 공산성 앞 동네를 빠져나와 제민천변을 걷는다. 지금은 사라진 '청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라는 커피숍이 생각난다. 주말 멀리 있는 고향집에 가지 못할 때 친구들과 둘러앉아 오렌지 주스 한잔 시켜 놓고, 세상 고민 다 짊어진 사람들처럼 수다 떨던 그때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제민천 하숙촌 거리를 지나 봉황동 골목길 굽이굽이 돌아 큰 샘물터까지 올라가니. 그 옛날 동네 공동 우물로 사용했던 큰 샘물터가 그대로 있다. 황동으로 만들어진 빨래 하는 동네 아낙의 모습에서 정겨움이 묻어난다.


큰 샘물터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

다른 곳 보다 빠르게 활짝 핀 매화, 산수유 가득한 앞마당이 훤히 보이는 카페에 들어섰다.

아름다운 바흐의 선율이 반긴다. 손님은 우리뿐이다. 우리가 갑자기 세상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어서 더 기분이 좋다. 주문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주인장의 감성이 예사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감성이 카페 곳곳에서 묻어난다. 역시 카페 이름(예술가의 정원)처럼 남다르다.

특히 바깥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는 창, 그 창을 통해 햇살에 실려 봄이 들어오고 있다. 그 창이야 말로 세상밖을 보는 Frame. 이 순간 그 창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온통 봄과 꽃들 뿐.  얼마 만에 느껴보는 호화롭고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시공간인지.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자연과 어우러진  예술가의 작품이 펼쳐질 때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동시에 받는다.  


카페 한편에 전시된 윤희수 작가님의 '바치다'라는 설치 예술에 시선이 고정된다.

이 작품은 100여 개의 놋그릇에 빨간 실을 풀어놓은 작품이다. 특히 평생 가족을 위해 매일 식사 준비하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 힘들게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또는 이상한 날씨와 멀리서 녹고 있는 빙하,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보잘것없는 것부터 위대한 것까지 모든 것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됐다.  


갑자기 이소영 작가의 <미술에게 말을 걸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쓸모없음의 가치를 인정하는 여유를 가진 것이 예술입니다. 슬플 때 우리를 위로하는 것들은 효율과 성과가 아니라 대부부 비효율적인 시간들이라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체감합니다. 우리를 안심하게 하는 세계는 효율의 세계가 아니라 쓸모없을 인정하는 세계입니다. 우리 모두 천천히 쓸모없어짐의 세계로 가고 있기에 우리가 쓸모없다고 느낄수록 예술은 꼭 필요한 것이지요.


나에게 공주의 봄은

자연의 숨소리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풍경 소리 또한 바흐의 선율만큼이나 흥미롭다.

바람의 움직임에 금속과 금속의 마찰로 나는 차갑고 거친 소리마저 봄이 오는 소리만큼 설레게 한다.


골목에서 추억으로 마음으로,

대지에서 창으로 눈으로,

바람에서 풍경으로 귀로,

다시, 공주에서 그렇게 봄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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