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를 읽는다
정호승의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요즘 뭐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는 옥개석 한 조각부둥켜안고 산다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바람과 풀도 뜯어 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마라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