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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Dec 21. 2024

그러하다

다시, 시를 읽는다

늘상 다니던 익숙했던 길도 어느날 생소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요즘, 나의 글쓰기가 그러하다.

마음은 여전한데 글이 써지지 않는다.

마치 더이상 갈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도착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양 손가락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러하다.

글쓰기가 싫증난것도,  게으른것도, 아픈것도 아닌데...


어느날 문득, 심란이 세상을 덮친 이후로 더 그러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지켜본 것은 진실이었으나 시간은 그것을 거짓으로 자라나게한다.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라, 더 큰 거짓이다'라는 대사가 떠오르는 요즘


늘 그러하듯

마음이 헛헛하거나 마음 속 고요함이 사라졌을 때

삶이 메마른 사막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때


다시 시를 읽는다.


가슴 설레는 사랑이야기도 있고

친구와의 우정을 노래하고

사람이 사람을 대함에 존경이 있고

미운 대상을 메타포를 이용해 고급지게 욕할 수 있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고

타인의 기픔을 같이 즐길수 있고


우리의 마음을 아는건 세상의 모든 시인, 그들은 그러하다


요즘 마음이 머무른 시는 러하다

정호승의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요즘 뭐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는 옥개석 한 조각부둥켜안고 산다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바람과 풀도 뜯어 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마라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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