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을 다 떠안은 듯 바쁠 때 나는 늘 '제발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곤 했다.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늘 부족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짬짬이 읽기와 쓰기를 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유럽행 기내에서도, 잠 못 드는 출장 중 숙소에서도 무언가를 쓰고 늘 무언가를 읽으며 사색하기를 반복했다. 그것이 지적허영이든, 삶의 압박이든, 의무감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바쁜 일상 속 내 모습이었다.
지난해 여름 뜻하지 않게 부서가 바뀌고 예전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내가 원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특히 글쓰기와 독서는 그중 제1순위였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난 지금 내 생활을 되돌아보면 아이러니하다.
뜨거운 열정으로 읽기와 쓰기에 정진하려 했던 마음은 한 없이 식어버렸다.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예전의 나를 잊게 했다.
촌각을 다퉜 던 일과 바쁜 시간이 내 삶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자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것은 '게으름'이라는 불청객이었다. 그 게으름은 시간과 내 의지 사이에서 반비례 관계였다. 잉여시간이 늘 수록 의지는 약해지고 그것을 대신하는 것은 게으름이었다. 그 게으름의 본성은 현실과의 타협 그리고 현실안주였다.
시간이 머물렀던 자리에 그 무엇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게으름
그 게으름은 삶을 녹슬게 한다. 때로는 삶의 의지를 무너뜨려 어떤 자율적 움직임도 거부하게 하니 일상에서 깊게 뿌리내린 그것을 제거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요즘들어 박준 시인의 '우리는 서로에게 번화했으므로 시간은 우리를 웃자라게 했다'는 문장이 자주 떠오르는 것을 보니 아쉽게도 그 시간은 또한 나를 웃자라게 하고 있나 보다.
[사진 출처 :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