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내가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을 때 일이다.
내가 원했던 학과가 아니라 입학의 즐거움도 모른 채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원했던 학과가 아니기에 수업은 지루하고 답답했다.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는 부모님의 걱정과 심려를 고려해 어찌 되었던 학교생활을 버텨 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뭔가 다른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했고 그래서 찾은 대안이 동아리 활동이었다. 나 처럼 적응 못하고 있던 친구와 함께 이곳저곳 몇 군데 동아리 방을 배회했다. 내 성격에 맞고 관심을 끄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헤매다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들러보자고 한 곳이 사진동아리였다. 어색해 하는 우리에게 동아리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환대해줘서 바로 입회서를 작성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디지털카메라가 없을 때라서 회원들은 필름카메라를 사용했다. 카메라는 대부분 렌즈교환형(SLR) 기계식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시간 날 때마다 출사를 가거나, 암실에서 현상과 인화를 실습했다. 특히 내가 찍은 필름을 내가 직접 현상과 인화를 한다는게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불행히도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못했지만 그 덕에 군 입대 전까지 대학생활을 하는데 활력이 되어준 건 분명했다.
처음에는 나는 카메라가 없었기에 동기나 선배들 카메라를 빌려 찍곤 했다. 그렇게 지내다 나만의 카메라를 장만해야 겠다 싶어서 한 동안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결국 당시 최고의 인기 아이템이었던 니콘 FM2를 갖고 싶기는 했으나,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사기에는 부담이 컸다. 결국 알바로 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FM2와 같은 기계식 수동카메라인 PENTAX MX 중고를 샀다.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흑백사진은 물론 칼라 사진도 나름 만족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사진에 대해서 참 열정적으로 관심을 갖었던 것 같다. 아마 내 인생에서 '무언가에 빠진다'는 것을 처음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사진에 빠진 덕에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나와 내 동기들의 모든 대학생활의 내 카메라에 담겼다. 물론 사진기술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다 나도 테스트 삼아 촬영해 본 것도 많다. 지금도 친구들이 만나면 종종 나와 내 카메라 덕에 대학생활의 추억을 갖게됐다고 감사해 한다.
지금처럼 사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튜브, 블로그 등이 있던 때가 아니기에 사진에 대한 정보나 사진촬영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곤 했었다. 또한 가끔씩 회원들과 멀리 안동 하회마을이나 구미 금오산 등으로 출사라는 명목으로 놀러 다녔고 그렇게 청춘의 추억을 하나 둘 만들어 갔다.
내가 수동 카메라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몇 가지 요소가 있었는데 뭐니 뭐니 해도 당연 내가 찍은 사진의 결과물에 대한 기다림, 설렘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찍고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 사진을 받기 위해서는 하루, 아니면 2~3일씩 걸리던 시절이었다. 그 사진 결과에 대한 기다림은 행복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마치 오늘날 택배를 기다리는 그 심정과 매우 흡사했다.
또 다른 이유하나는 기계식 카메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버튼을 누를 때마다 '찰~칵'하고 나는 셔터소리가 매우 감성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앞서 말했던 FM2나 PENTAX MX 같은 기계식 카메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성 포인트다. (요즘은 대부분 디지털 카메라이기 때문에 그런 감성은 찾기 어려울듯하다. 사실 디카라 해도 전문가용 고급카메라는 사용을 안 해봐서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프레임이다.
조그만 뷰파인더로 보이는 사물 또는 세상과 같은 피사체를 내가 원하는 각도, 방향에 맞춰 카메라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사진이라는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내가 의도하는 대로 연출을 하고 그 결과에 만족한 나머지 도파민에 취할 때 극도의 행복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내게 사진은 거창한 '예술'로 다가온 것은 아니다. 뷰파인더로 보이는 세상은 보다 아름답게 찍고 싶었고, 사람이라는 피사체는 더 밝고 화려하고 예쁘게 찍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활동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점도 한층 밝아졌다.(렌즈밝기에 비유하자면 F5.6에서 F1.4정도)
그래서 나에게 사진이란 '뷰파인 속 세상을 프레임에 담아 인화지에 써내려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러니 그 프레임은 항상 못난 것은 더 예쁘게, 어두운 것은 더 밝게 만드는 요술램프였다.
사진과 관련하여 벌써 30년이 지난 추억을 지금 다시 소환하게 해준 것은 앞을 알수 없는 요즘 세상이다.
최근에는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프레임'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곤 한다. 내가 30년 전에 사진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인 '프레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의미 일 것이다. 대선이라는 중대한 국가적 행사를 목전에 두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이미 '프레임전쟁'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프레임'은 얼마나 중요하고 위험한 것일까...
30년 전의 내가 느낀 프레임은 온전히 '의도적이지만 주관적'이다. 한 피사체를 보다 아름다운 사진에 담기 위해 이래 저래 방향을 바꿔가며 구도를 바꾼다. 그런데 언론이나 정치에서 만드는 프레임은 '의도적'인거는 마찬가지지만 반드시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와는 반대로 특별한 (나쁜)의도를 갖고 피사체를 왜곡하여 대중의 관점을 흐리게 하고 결국 대중들로 하여금 나쁜 인식을 갖게 하기 때문에 그들의 프레임은 아주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한번 덮혀진 프레임을 벗겨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그것은 꼬리표가 되어 사후에도 따라다니기도 한다. 요즘은 알고리즘까지 더해져 디지털로 박제되어 그렇게 한번 잘못 씌워진 프레임을 걷어내기는 어쩌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게 프레임의 덫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특별한 묘수는 없을 듯하다. 다만, 각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밖에 없다. 우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탐독하고 대중매체들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정 매체에 치중하게 되다 보면 우리 뇌는 이미 그들의 프레임에 걸려들게 마련이다. 마치 알고리즘이 우리를 감시하는 것 처럼 말이다.
혹시라도 프레임에 빠져서 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될 때는 항상 그 기준은 '상식'이 되어야 한다. 상식을 벗아나는 주장과 이야기에 대해서는 '왜'라는 의문을 갖고 사실 확인을 하는 습관을 두다 보면 그 어느 프레임이나 가짜뉴스에 이끌리는 일은 적어진다. 오히려 이런 습관을 통해 지식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참에 일부 레거시 언론은 물론 특정 유튜버들의 프레이밍을 완벽하게 '처단'하여 잃어버린 우리들의 일상이 회복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이 같은 마음이 또 다른 마음을 모으고 또 모아 그 넘치는 시대의 기운으로 하여금 끝도 없던 절망이 소망을 거쳐 마침내 꽃으로 피어날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