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러는 걸까요?
게으른 별이 아직 남아있는 새벽 4시
가족이 모두 잠든 사이 쥐 죽은 듯 중년 남자 3명이 각자 집을 나선다. 새벽 적막을 깨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시골의 한적한 저수지
차에서 수상한 장비들을 꺼내 각자 자리를 잡는다.
뭐가 그리 좋은지 그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이 나있다. 익숙한 듯 그들의 수상한 행동은 5분을 넘기지 않았다. 각자 자기만의 의식과 함께 모든 세팅이 끝났나 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남자들은 각자 자기 의자에 앉아 새벽 물안개 자욱하게 올라오는 수면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잠시 후 수면 위로 물결의 작은 파장이 느껴지자 남자 1호는 번개같이 일어나 낚싯대를 챈다.
멀리서 끌려오는 작은 생명체에 환호가 터져 나온다. 기껏해야 10cm도 안 되는 붕어다. 마수걸이 첫 수확을 기념해 인증샷을 찍는다. 낡은 모자와 운동복을 입은 그들 행색은 영락없는 부랑자들 같다. 행색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도 마냥 좋다고 한다.
'뭐지 이 사람들!' 하며 이 광경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낯설다. 이야기는 민물낚시에 빠져있는 동료들 이야기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바쁘게 산 그들이다. 그 와중에 가족들도 챙겨야 했다. 그중에는 사춘기 자녀를 둔 이도 있다. 예민한 아이들 눈치까지 보느라 본인들도 쌓인 게 이만저만한 게 아닐 터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 날을 포함한 긴 연휴, 온전히 가족들로부터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 새벽 4시부터 오전 9시. 9시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가야 한다. (자기들이 신데렐라도 아니고…)
가족들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까지 그들이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민물낚시. 그래서 그들은 몇 년 전부터 그와 같은 그들만의 새벽 이벤트를 즐기고 있다.
그들만의 이번 이벤트에 나는 백패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격려차 그들만의 축제장에 방문했다. 도착한 시간은 아침 7시. 아침 태양은 붉게 타오르고 있지만 밤사이 차가워진 온도 탓에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다. 그래도, 그들이 직접 만든 폐페인트(깡)통 화덕 안의 마른나무 잔가지가 타고 있어서 비록 불꽃은 작지만 그것의 온기는 움츠린 남정네들의 어깨를 펴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의 시선이 물과 불을 차례로 바삐 오가며 멍 때리는 나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권한다. 아침 쌀쌀한 공기가 코를 통해 온몸으로 퍼질 때 따끈한 차 한 모금으로 묘한 희열이 느껴진다. '이 맛인가' 이들을 이토록 미치게 한 것이...
어창으로 쓰는 양동이를 들여다봤다. 붕어 겨우 서너 마리가 좁은 공간에서 유영을 하고 있다. 정말 운이 없는 녀석들 같아 보였다.
8시가 될 무렵
이번에는 가스불에 물을 올려 끊이기 시작한다. 몇 분 뒤 물이 끓자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내게 전달해 준다. '아침 낚시터에서 먹는 컵라면이 끝내준다'며 세상 순진한 표정으로
사방에서 면치기 소리가 맛깔나게 들린다. 국물도 사발째 들이켠다. 그래도 이들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정말 행복한가 보다. 컵라면까지 먹고 난 순간 이들의 모든 이벤트도 끝이 났다. 곧바로 짐을 정리하고 밤사이 이들에게 행복을 전해준 자연을 온전히 원형 그대로 회복시켜 놓고서야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돈다.
내가 산이 좋아 백패킹을 즐기는 것과 이들이 낚시를 좋아하는 것, 추구하는 행위만 다르지 결국 같은 합법적 일탈이구나 싶었다. 결국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것. 딱 그런 거 하기 좋은 나이인가 싶다. 그런 짧은 일탈은 또 다른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그런 시간 속에서 잠시나마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볼 수도 있으니 '나만의 시간'은 결국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결국에는 '채우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다음 일탈을 꿈꾼다.
[대문사진 :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