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포해변에서
삶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누를 때면, 나를 치유해 주는 것은 온전히 바다였다. 푸른 파도 넘실거릴 때나, 한 겨울 나를 삼킬 듯한 성난 파도가 일렁일 때도 바다는 나를 반겨주었다. 언제나 포근한 엄마의 품처럼 나를 반겨주던 바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날은 2009년 12월 7일. 대학원 입학 면접시험을 보던 날.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만난 충격적인 소식에 숨이 막혔다. TV 화면에서는 만리포 앞바다에 떠있던 대형유조선에서 검은 기름이 바다로 펑펑 쏟아지고 있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바다가 검은 눈물로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금방 조치되겠지 생각했으나 긴급하게 이어지는 뉴스 속보를 통해 전해지는 내용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월요일이 되어 소속기관으로 출근을 했다. 동료들은 온통 그 뉴스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렇게 오래된 기억 속의 그날. 2009년 12월을 절대 잊을 수 없다. 내 고향에서 일어난 사고였기에 더 큰 관심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다. TV 화면 속 대형유조선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시커먼 원유를 바라보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 사고가 아니라, 내 꿈을 키워준 내 고향 사람들의 심장이 멈추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바다는, 푸른 파도 넘실거리는 늘 아름다운 곳일 리 없다.
나에게는 한 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던 시원한 놀이터이기도 했고, 심심할 때면 물고기를 낚으며 시간을 보내던 편안한 친구 같은 존재였고, 따뜻한 봄날 친구들과 소풍을 다녔던 추억의 저장소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자연의 이치를 일깨워준 선생님이기도 했다. 또한 여름이 되면 이글거리는 태양, 하얀 모래사장에서 청춘남녀들이 만들어 놓은 모래성 같았던 젊은 날의 추억이 넘실거리는 그런 낭만의 바다이기도 했다. 또 고인이 된 연인의 혼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누군가에게 바다는 뜨겁게 달궜을 그들의 사랑이 무르익은 곳이기도 했다.
동시에 바다는 가난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려 부단히 싸워 온 갯마을 사람들의 고단하고 거친 삶터이기도 했다. 전쟁 때 열혈단신 북에서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고 우여곡절 끝에 정착해 뱃일로 겨우 연명할 수 있었던 마을 늙은 어부들의 삶이 진하게 농축된 세월의 공간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낮 동안에 바구니 한가득 캐논 바지락을 긴긴 겨울밤 내내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쪼그려 앉아 예리한 칼로 조갯살만 발라내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장에 내다 팔아 아이들 학비에 보탰고 남은 돈은 이불장 밑에 한 푼 두 푼 모았다. 마을 해녀들은 바다가 허락하기만 하면 바다로 나가 해삼, 전복, 소라 등을 잡았다. 그러니 그들에게 바다는 부엌이었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그들이 맞서야만 했던 척박한 환경을 결코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으려 했던 그 시대 갯마을 늙은 어부, 어머니들의 땀, 눈물이 방울방울 모여 그대로 바다를 적셨는지도 모른다. 가난만은 유산으로 남겨주지 않겠다는 부모님을 둔 덕에 당신의 자식들은 도회지에 나가 공부하고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그 은혜받은 자식들에게 바다는 슬픔보다는 기쁨이, 아픔보다는 행복이 넘쳐흐르는 추억의 바다, 감사의 바다 일지 모른다. 바다는 유난히도 그들에게는 더더욱 푸르렀을 것이다.
바다에 대한 추억이나 아픔 하나쯤 가슴에 묻어둔 사람들 게 예고 없이 찾아온 재앙은 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모든 마음이 같을 리 만무하다. 그런 바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그날 이후 온 나라에는 검은 재앙이 드리웠고 사람들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하룻밤 사이에 시커멓게 재앙으로 덮인 세상에는 더 이상의 희망도, 생명도 없을 것만 같았다. 이유도 모른 채 검은 기름을 온몸에 뒤집어쓴 갈매기 마음도 사람들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빗물에 바다는 젖지 않는다고 하였던가? 하지만 눈물인지 땀방울인지 모를 액체들이 마치 기름처럼 끈끈하게 사람들의 골 깊은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 끝내 주민들의 그 알 수 없는 끈적이는 액체는 검은 바다에 끊임없이 떨어졌다. 눈물도 사치라고 여겼을까 한숨 쉴 겨를도 없이 평생을 갯일로 허리 굽은 노인들, 한겨울 살을 에일 듯한 서해 바다 칼바람을 맞으며 쪼그려 앉은 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무작정 닦기 시작했다. 그들이 닦아 내는 것이 검은 재앙인지, 야속한 세월인지, 새 생명에 대한 그들의 바람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오직 그들이 살아온 터전이기에 닦고 닦고 또 닦고 있을 뿐이었다. 그보다 더 처참한 상황을 견뎌 냈던 그들이기에 그 누구를 향한 원망도 욕할 기운도 없다. 마치 아픈 자식을 밤사이 뜬눈으로 보살피던 그 시절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 그대로라고나 할까
앉기조차 힘든 각지고 미끄러운 바위에 쪼그려 앉아 있는 갯사람들...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쭈글쭈글 주름진 얼굴의 할머니들부터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워 보이는 할아버지들, 낚싯배며 고기잡이배 생업을 마다하고 달려 나온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 그리고 그곳 어딘가에 계셨을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 그들의 그림자, 눈물, 땀방울은 새까만 기름 덩어리로 흡수되어 버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기름 범벅이 된 몸, 온몸이 쑤시고 결려도 누구 하나 아픈 내색 한번 하지 못하고 그들은 매일 검은 바다로 나갔다.
끝도 없는 절망의 연속. 어느 순간 전국 각지에서 국민 각 개인, 가족, 수많은 회사, 기관의 자원봉사자들이 개미처럼 몰려들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군청에서도 지원단을 파견할 때 나는 가장 먼저 자원을 했다. 하루 종일 바위, 자갈을 덮고 있는 잘 닦이지도 않은 검은 기름띠를 쉴 틈 없이 문질러 댔다. 그 순간은 빛 하나 없는 긴 터널에 갇혀있는 듯했다. 바다를 덮어버린 시커먼 원유는 야속하게 아무리 닦아도 닦이지 않았다. '이런다고 파괴된 자연이 회복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만 가득했다.‘누가 이 무지막지한 일을 벌였을까?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누가 이 파괴된 자연, 상처 입은 주민들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을까?’라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절망감 탓에 그 넓은 바닷가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밀려드는 파도 소리뿐이었다. 그래서 더 유난히 슬펐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수백만 명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복구의 기대가 하나 둘 모여 마침내 기적을 일궈 냈다. 시간은 검은 재앙을 서서히 걷어내기 시작했다. 검은 절망은 차츰 희망의 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처절한 시간의 무게를 무던히 버텨낸 바다. 드디어 사라졌던 게, 고동, 불가사리, 파래, 조개 등 수중 생물들이 하나 둘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고 외롭고 차가웠을 바위에는 갈매기들이 서서히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곳을 한동안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던 사람들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마침내 검은 기름이 완전히 사라진 그 바다는 예전의 푸른빛을 되찾게 되었고 쑥스러운 듯 점잖게 밀려오는 파도 덕에 서해안 제일의 서핑 명소가 되었다. 완전히 회복된 그 바다에서 나는 나의 아들과 함께 서핑과 SUB(Standing Up Board)을 즐길 뿐만 아니라 검은빛으로 물들었던 바다는 이제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되었고, 그 위대한 자연의 회복력에 대하여 아들과 아낌없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곳은 이제 더 이상 그 옛날 고단하고 척박하기만 했던 곳이 아니다. 추억이 파도에 실려오는 바다가 되었다. 여전히 갯마을 아낙네들은 진달래꽃 필 무렵이면 감칠맛 제대로 품은 바지락을 캐고, 어부들은 욕심부리지 않은 채 용왕님이 허락한 만큼 어창을 채우고 귀항한다. 부지런한 낚시꾼들은 우럭이며 노래미며 광어며 제대로 손맛 가득 낚시를 즐긴다. 인간의 한 순간의 실수로 앗아갔던 이 모든 일상이 완벽하게 돌아왔다.
이제는 기념관에나 가야 그 아팠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해 겨울 검은 재앙은 셀 수 조차 없을 만큼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혔고, 주민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인간의 어이없는 부주의로 파괴된 자연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을 쏟아내야 했는지 사람들은 한 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과 헌신에 바다도 감동을 받았는지 자연 스스로의 놀라운 회복력이 더해져 검은 재앙으로 뒤덮였던 바다는 다시 온전한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그제야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에 드리워졌던 검은 악마는 사라졌다. 바다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일 때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간의 오만함과 잘 못된 행동은 자연, 사람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준다는 것을...
2025년 8월, 주말을 맞아 가족과 다시 그 바다를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해 검은 바다의 기억은 이제 기록으로만 볼 수 있다.
파란 하늘과 마주한 바다는 푸르디푸르기만 하다.
태안유류피해기념관에도 잠시 들렀다.
아들에게 그 당시의 기록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아들도 그날의 광경에 놀라워했다. 그 검은 바다가 다시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자원봉사기록을 확인해 보니 내 이름 석자 나온다. 아들에게 그런 기록을 보여주니 아들이 놀라워한다.
그렇게 역경은 기록이 되어 역사로 남았다.
그 역사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교훈을 남겼다.
뻔하지만 오랜만에 기억하는 문구, 영원히 새겨야 할 문장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