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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코스모스' 읽은 뒤 후유증

구름, 별이 다가와

by 바람아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기 시작한 지 세 달이 되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그 끝이 보이고 있다.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글로벌 스테디셀러. 작년에 동네 도서관에 들렀을 때 호기롭게 그 책을 집어 들고 몇 장 읽다가 포기했던 책이다.


지난봄, 우연찮게 그 책을 얻었다.

지난해 도전실패라는 구겨졌던 기억 덕에 이 두꺼운 책을 그냥 책꽂이 장식용으로 꽂아두지 않겠다는 결기가 생겼다. 그래서 다시 읽기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빨리' 읽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반년이든 일면이든 상관없었다. 일단 완독이 목표였다.

전형적인 문과인의 사고와 감성을 갖고 있는 내가 처음으로 읽는 천문과학서적이다.

읽다 보니 이해되는 내용도 있기는 하지만, 천문학과 관련된 내용 툭히 공식, 기호가 나오는 부문에서는 여전히 머리에 쥐가 나는 듯했다. 이해되는 부분은 이해한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넘어가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챕터를 읽고 있다.


읽다 보니 알게 되는 것은

단순히 천문과학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시민 작가의 추천사처럼 '인류역사의 발자취'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고(Who are we?),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Where are we from?),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Where are we going?)에 관한 내용이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지는 않지만 나처럼 천문과학에 대하여 방대한 지식이나 전문성이 없더라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끝까지 읽을 수 있다. 물론 일독이 쉽지는 않지만 이미 이 책을 읽어본 주위사람이나 유튜버 중에는 '코스모스를 열 번만 읽으면 인생도 바뀔 수 있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만큼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천문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북두칠성, 지구에서 가까운 행성은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를 외우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그 처럼 얄팍한 지식으로 이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시작했지만 읽다 보니 왜 이 책에 사람들이 열광하는지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된다. 코스모스 속에서 인간은 매우 미약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을 읽은 뒤 후유증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습관이 생긴 것이다. 우선 자주 하늘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낮의 구름을 보는 것도 즐겁다. 신호대기 중일 때 맑은 하늘의 구름을 즐겨보기도 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순간순간 변하는 구름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밤하늘 또한 자주 보게 된다.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라도 보일 때면 앱을 통해서 그 별이 무슨 별이고 어떤 별자리인지 확인하는 습관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하늘, 해, 달, 별, 구름이 훨씬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잘 보면 '태아' 형상이 보이는 구름


나는 봄부터 가을까지 시간과 날씨가 허락하면 백패킹을 즐기곤 한다.

그러다 운 좋은 날에는 밤하늘의 별들을 만나는 행운이 깃든 날도 종종 있다. 그전에는 '아 오늘 별 밝다' 정도의 감성을 갖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별자리 앱(Stellarium)을 통해서 그동안 몰랐던 별자리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갈수록 욕망은 커져 단순히 백패킹을 하기보다는 이제 별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Stellarium app화면

별을 보기 위해서는 달이 안 뜨는 날이 좋다고 한다. 당연히 구름도 없어야 한다. 인공광도 없을수록 좋다.

그래서, 얼마 전 오랜만에 금요일 연차를 냈다. 오전 개인 용무를 마치고 오후가 되어서야 한 적한 바닷가로 향했다. 장비라고는 아주 오래된 DSLR, 스마트폰 그리고 카메라에 비해 과하게 안정적이고 무거운 맨프로토 삼각대를 차에 싣고 떠났다.

그날밤은 별을 보기 좋은 최상의 날은 아니었다. 그래도 기대하는 시간은 새벽 2시다. 땅거미 내려앉은 바닷가, 바람은 없는데 부딪히는 파도소리는 성난 듯 숨 가쁘게 몰아친다. 밤이 깊을수록 구름의 변화가 심하다. 달을 가릴 때가 반대로 숨겨졌던 별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기회는 이 때다 싶어 아쉬운 대로 구입한 지 18년이나 되어가는 구닥다리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댔지만 F값도 형편없고, 셔터, 조리개, ISO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 차라리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게 그나마 낫겠다 싶었다. 만족스러운 사진은 얻지 못했다.

그사이 기대했던 새벽 2시를 훌쩍 지났지만 별들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 흐릿한 구름만 가득했다. 나중에 유튜브를 찾아보니 별 사진 찍는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DSLR, 스마트폰으로 어렵지 않게 촬영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유튜버들이 많았다. 나의 기술적 미흡함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엄한 장비, 날씨를 핑계 삼아 그날의 아쉬움을 달랬다.


어찌 되었든 첫 번째 별 출사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없다. 다음을 또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7월 말에 다시 도전해볼까 한다.




코스모스를 읽고 여러 가지 인생의 자극을 받는다.

하늘, 별과 같은 자연에 대한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확실하다. 거기에 더해 비록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같은 거창은 것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삶에 대한 방식이나 태도에 대한 '그 무엇인가'는 있는 듯하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겸손'이다. 오만하지 않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코스모스에서 아주 미약한 티끌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기억하고 필사하고 싶은 주옥같은 문장들을 정리해 봤다.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The Cosmos is all that is or ever was or ever will be.)


"우주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모두 별의 자손이다."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 지구에 사는 우리는, 우리의 고향 행성을 아껴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곳은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단순한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방식이다."


"우주의 광대함 속에서 인류는 한 조각의 티끌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딘가에 믿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진실은 거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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