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이 마을 저 마을 저수지며, 개천이며 전부 메마른 때가 있었다.
생활용수라도 아껴야 된다며 상수도 사용시간제한을 둔 적도 있었다.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는 마을에서는 낯설지만 기우제를 지낸 곳도 있었다.
그해 봄은 사람들의 노력 덕에 겨우 겨우 버텼는데 그다음 해 봄에도 물은 여전히 부족했다.
다행히 요 몇 년 동안은 충분치 않은 강수량이지만 그 덕에 그때만큼 심각한 건조한 봄은 없었다.
이번 주 내내 비가 쏟아져 물이 넘쳐난다.
어느 마을에서는 황소가 떠 내려가고 또 다른 마을에서는 덤프트럭도 떠 내려간다.
소, 덤프 주인뿐만 아니라 뉴스를 보는 사람들 마음도 함께 떠내려간다.
비가 마구 쏟아지던 목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직원들로부터 연락이 온다.
빗물이 구내식당으로 넘쳐흘러 들어왔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직원은 이른 새벽부터 나와 밀대를 밀며 물과의 한판 전쟁을 치르고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하 나 둘 구호에 맞춰 밀대로 물을 힘껏 밀어낸다.
빗방울도 서서히 가늘어지고 몇 시간을 합심해 겨우 평온을 찾았다.
이 순간 지난봄을 회상해 본다.
바삭 바삭 마른 산야가 불길에 휩싸였다. 간절히 바라던 비는 오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만 타 들어갔다.
비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미량의 빗방울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환호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불이 모든 걸 태워버린 곳에 다시 물이 차오르기도 하고
물이 모든 걸 휩쓸었던 곳에 다시 불이 피어나기도 한다.
물과 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물이 무서울까 불이 더 무서울까'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가 더해지기도 해 둘 다 무섭고 두렵다.
물과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인간뿐이다.
자연을 그렇게 만든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라는 모순된 현실
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닌데 하며 조금은 억울함도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이 내일 보다는 오늘이 조금은 좋았을 것이기에 그래서 우리의 자식을 포함한 미래세대에게 조금은 덜 훼손된 자연을 물려줘야 하는 책무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어릴 적 구호가 떠오르는 폭우가 쏟아지던 날 아침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