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cm×50cm

이 면적이면 충분하다

by 바람아래

얼마전 까지 집에서 나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브런치를 한 이후로 독서, 글쓰기를 위한 전용 책상이 있었으면 했다.


어느 집에서나 다 비슷하겠지만 가정내 우선권(Priority)은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자녀들이 1순위, 엄마, 아빠 순이다.

우리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름 시작과 함께 가장 시원하고 아들이 공부하기 좋은 방을 아들이 우선 접수했다.

그 덕에 거실과 공용으로 쓰는 방의 집기들을 다시 재정리를 하고나니 예상치 못한 곳에 테이블 하나 놓을 공간이 생겼다.

어찌나 좋던지 드디어 기회다 싶었다. 적당한 크기의 원목테이블 하나 놓고 비오는 날 또는 선선한 날 커피 한잔 마시며 천천히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결단을 내렸다.

이 참에 원목테이블 하나 사기로 했다.


특별히 원목을 좋아하는 이유는 원목에서 풍기는 나무향으로 인한 안정감이 좋기도 하지만, 피부가 나무 재질에 닿을때 느껴지는 촉감이 좋다. 이와함께 종이책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 풍기는 종이향과 나무향의 조화가 잠들어 있던 감성을 자극하곤 하기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시를 쓰면 바로 시가 나올듯 하고, 에세이를 써도 매일 쓸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냥 기분탓인지는 모르겠다.


바로 비싸지 않은 원목테이블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검색을 하다보면 원목재질과 색상이 마음에 들면 가격이 만만치 않고, 가격이 저렴하면 원했던 원목을 찾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오랜 검색 끝에 고급원목은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냈다.


며칠뒤 배달 온 테이블을 설치하고 나니 정확히 120cm×50cm의 크기의 마침내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노트북, 스탠드를 옮겨 놓고, 좋아하는 책 그리고 만년필을 올려 놓고 보니 이게 뭐라고 오랜만에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 덕에 당장이라도 '총.균.쇠',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어마무시하게 두꺼운 책을 단박에 읽어 버릴 듯한 충동을 느낀다.


겨우 120cm×50cm 원목테이블 하나 놓았을 뿐인데 그게 뭐라고 인간에게 '공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이 생김으로써 각종 영상화면 보다는 책을 더 보게 되고, 잠자기 전에 그 테이블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고, 은은한 국화차 한잔 할 때의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요즘 처럼 열대야에 잠못이루는 밤 '브런치' 를 통해 알게 된 이웃 작가님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는 재미 또한 솔솔하다.


그것외에도 또 하나 좋은 일은 아들에도 긍정적인 메시지가 전달된 듯 하다.

아무래도 엄마, 아빠가 TV를 끄고 책을 읽는 모습을 자주 보이다보니 아들도 공부에 집중 안될 때 다양한 책을 읽는다.

분명 긍정의 영향력이다. 며칠 전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아들이 와서 책 한권을 넘겨주면서 의미신장한 표정과 함께 한마디 하고 사라졌다.

"아빠, 이 책 한번 읽어 보세요!"

"무슨 책인데?"

"유시민 작가가 2013년에 쓴 '어떻게 살 것인가'에요!"

"엥, 왜 아빠보고 똑 바로 살으라는 거야?"

"(묘한 표정으로)그냥 읽어보세요!"

"(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념겨주는 고1 아들의 마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빠 생각 좀 하면서 살아요'라는 뜻인지, 아니면 '좋은 책이니까 아빠도 한번 읽어보세요' 인지. 굳이 깊게 고민은 안하지만 단 한가지 아직 고1 이지만 본인의 삶을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래서, 그런 아들덕에 아빠 체면에 그 책을 안 읽을 수가 없어 이번 주말동안 '어덯게 살 것인가'를 마져 초집중해서 읽고 있다.


그래서, 120cm×50cm 의 공간은

나의 마음을 정리하여 글자들을 모아 문장을 통해 글을 만드는 공간이고

글자로 된 남의 생각을 나의 감성으로 만드는 공간이고

아빠와 아들이 서로 책을 권하고 소통하느는 공간이고

때로는 지친 하루 차 한잔의 위로외 치유의 공간이다.


딱 120cm×50cm 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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