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분들! 솔직히 그런 경험 한 번씩 있으시죠?
남편 손에 '전동드릴'을 쥐어줘 보면 집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대한민국의 남편들은 늘 피곤하다. 그래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자유시간도 별로 없고,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프로야구를 보다 낮잠 한숨 자면 그 맛이 끝내준다. 요즘처럼 폭염으로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때 시원한 에어컨 바람맞으며 넥플릭스 영화 한 편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다.
그렇게 낮잠을 잔다거나 TV를 보며 빈둥거리는 것 마저 지겨울 때가 있다.
아내의 눈치도 보이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뭘 할까 고민하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몇 가지 일들을 생각해 낸다. 반나절 빈둥거렸으니, 고장 난 집기들이나 슬슬 고쳐볼까 하는 마음에 얼마 전 구입한 전동드릴세트를 들고 나왔다. (사실 전동드릴이라는 게 어쩌다 한번 사용하는 물품이라 사자니 아깝고, 가끔 필요할 때마다 아파트 관리소에 빌리러 다니는 게 귀찮기도 한 물건인데 얼마 전에 큰맘 먹고 하나 장만하고는 미개봉 상태였다.)
상자를 열고 완충된 전동드릴에 십자드릴 비트를 장착한다. 마치 군인들이 K-2 소총에 탄창을 끼우고 사격장 사로에 나가는 것 마냥 아주 비장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TV스탠드다. 윙~ 윙~ 전동드릴로 나사못을 제거한 후 삐걱거리는 스탠드 바퀴를 새것으로 뚝딱 교체했다. 바로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으스댄다.
"여보 이것 봐, 단돈 8천 원으로 30만 원 벌었어, 대단하지!"
"~눼~눼(건성), 어이구 대단해라"
뭘 대단한 것도 아닌데 나는 그저 성취감과 자아도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한껏 신이 난 나는 전동드릴을 들고 이방 저 방을 기웃거린다. 또 뭐 고칠 게 없나 마치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당장 고칠게 보이질 않는다. 많이 아쉬워하며 그날의 첫 사냥을 마친다.
또 다른 주말, 나의 독서와 글쓰기를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원목책상이 도착했다. 어김없이 드릴세트부터 세팅을 한다. 이번에도 역시 비장하다. 드르륵~ 드르륵 몇 번의 총성(?) 끝에 책상의 모든 나사못을 조여 조립을 마쳤다. 다시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빠진다.
그런데, 전동드릴이 생긴 후 이상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십자드라이버로 간단하게 할 일도 전동드릴부터 챙겨 나오는 습관이 생겼다. 선풍기 회전이 뻑뻑해 보인다 싶으면 바로 드르륵~ 드르륵... 선풍기 마저 고친 뒤 이방 저 방 모든 나사못을 확인한다. 그뿐 아니다 주방 싱크장, 서랍장 문을 흔들어 보기도 하며 힌지는 이상 없는지 모두 살핀다.
딱히 고칠 게 없을 것 같은 순간 다행히 아들방 책상 주변의 충전케이블과 멀티탭이 너저분한 게 거슬려 보인다. 반가움에 기쁘기 까지 하다. 바로 책상을 살짝 움직여 공간을 만든 뒤 멀티탭선을 책상뒤로 안 보이게 고정시키기 위해 나사못을 박고 케이블 타이로 고정한다. 아들이 충전기 탈착을 편하게 하도록 멀티탭은 책상 왼쪽 편에 손이 닿을 거리에 나사못을 박아 고정시켜 주니 완벽하다. 성공리에 사냥을 마친 부족장 마냥 의기 냥냥하다.
그렇다.
남자들에게 전동드릴과 같은 도구는 마치 군인들의 '무기'와 같다. 손에 쥐어지면 목표물을 정하고 반드시 정복(?) 해야 하는... 특히 가정에서는 나와 가족의 '불편'이라는 적을 반드시 섬멸시겨야 한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올라가 보면
석기시대 인류에게 '돌'은 무기, 농기구였다. 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돌의 역할은 청동기, 철기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인류의 그런 변화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남자들의 도구 본능'이다. 군대를 가본 남자들은 다 겪어 봤을 것이다. 땅을 파는 '삽'을 땅을 팔 때만 쓰지 않는다는 것을... 심심할 때 PX 간식내기 '스카이 콩콩'이 되기도 하고, 겨울 내리막에서 썰매 대용으로도 사용해 본 경험들 말이다. 남자들 손에 뭔가가 들려있다면 반드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아내들은 알아야 한다.
그러니,
휴일에 하루 종일 소파에서 뒹글거리는 남편이 꼴보기 싫다면 짜증낼 필요도 없다 아주 간단하다 전동드릴 하나 사줘 보시라. 확신건대 그들은 분명히 소파를 걷어차고 일어나 그들의 수선 본능을 보여줄 것이고 어느 순간 집안에 있는 나사못을 드르륵~드르륵 돌리고 있는 남편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