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고암미술상 수상작가 김성래의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여름을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나와 우리 가족은 한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어디 멀리 가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집 가까운 맛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좋은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을 마시는 동안 별 대화 없이 나는 글을 쓰고, 아내는 책을 보고, 아들도 본인이 좋아하는 책 또는 웹을 보는 방식으로 연휴 또는 휴일의 여유를 즐긴다. 이 방식은 세 식구 각자에게 만족도가 좋은 편이라 이 보다 더 경제적이고 가성비 좋은 방식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까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한여름 피서로는 제격이다.
얼마 전 광복절 연휴에도 우리 가족은 변함없이 여름 주말 루틴대로 집에서 멀지 않은 곳, 아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가볍게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이능노의 집'이라는 작은 미술관에 들렀다. 이곳은 고암 이능노 선생의 홍성 생가터에 위치해 있어서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이곳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미술관과 그 주위 풍광이 멋지게 어우러져 비록 규모는 작지만 마음에는 큰 여유를 선사하는 곳이다.
내가 이 근처로 이사와 산지는 13년이 되어간다.
그전까지는 '이응노 화백'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응노 화백뿐만 아니라 미술 자체에 대한 지식은 물론 관심조차 없었다. 다만, 가까운 곳에 비록 작지만 이 기념관의 존재 덕분에 자주 들러보다 보니 점차 그와 그의 작품세계 그리고 미술에 대해 점차 관심을 갖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이응노 화백의 '문자추상'을 참 좋아한다. 한글 자체를 미학적으로 그려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켈라그라피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 외에도 그 유명한 '군상'이라는 작품 등. 내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피카소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미술관 외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생각나는 노출 콘크리트건축물이다. 큰 유리 통 창을 통해 외부(자연)와의 조화가 자연스러운 공간. 그 덕에 아무 생각 없이 들러서 훌륭한 미술 작품 감상은 물론 부속건물로 있는 무료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공간 또한 있기에 우리 가족에게는 이 보다 더 좋은 놀이터가 있을까 싶다. 참고로 이응노 미술관은 대전에, 이응노의 집(기념관 및 작은 미술관)은 홍성에 있다.
이번에는 참 오랜만에 들렀다
마침 제7회 고암미술상 수상작가 김성래의 <돌아보면 돌이 된다>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내가 어떤 전문 지식이나 식견을 갖고서 찾는 것은 아니다. 그냥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고, 느끼려는 것뿐이다.
이날도 그랬다. 성인 입장료 천 원을 결제하고 입장을 했다. 전시가이드를 통해 작가 김성래와 그의 작품에 대한 기본정보를 읽고 첫 작품부터 34번째 작품을 하나씩 감상해 나간다.
첫 번째 작품부터 사람을 압도시킨다.
'돌아보면 돌이 된다 1인상'(스티로품, 우레탄폼, 지점도에 드로잉, 픽사티브)을 지나 '돌아보면 돌이 된다 3인상'이 전시실 입구에서 나를 맞이한다. 가족 같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관램객을 맞이한다. 웃으면서 맞이하는 듯 하지만 슬퍼 보이고 으슥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34개의 마지막 작품까지 하나하나 감상한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역사, 그중 아픈 역사 속에서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듯했다. 그 본질은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고 평화'인 듯했다. 전쟁, 이념갈등 속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아픔, 슬픔이 그의 작품을 통해 묻어난다. 그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차별과 혐오'에 관한 것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런 주제의 작품을 이응노 기념관에서 전시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응노 선생 역시, 독재시대에 일명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던 경험이 있다. 한 인간으로 마땅히 가져야 할 '인권'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던 시대를 살며 예술 혼을 불태웠을 그이기에 그 또한 슬픈 역사의 피해자였다.
작품을 볼수록 '참 공교롭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읽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갑자기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제주 4.3 사건을 통해 인선의 부모가 겪은 아픔, 슬픔. 결국 한강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던 대로 '작별하지 않는다'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사랑'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모든 전시작품에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웃는 얼굴, 애매모호하게 무표정한 얼굴 등
그러나 언뜻 보면 기괴해 보일 수 있지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얼굴이 정겨워 보이는 것이 바로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에 빠져본다.
얼마 전 광복 80주년을 맞아 연휴 내내 다채로운 행사들이 있었다.
화면을 통해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또한 다채로워야 한다는 것과 반면,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비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글을 쓰는 사람은 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연기하는 사람은 연기로
그런 달란트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광복절 같은 날에는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잠시라도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게 아니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