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고둥이 전하는 말

by 바람아래

무엇을 향해 그리 열심히 움직이는가 라며

기껏해야 그저 한 발걸음도 안 되는 거리인 것을 이라며 쉽게 말하는 당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지금 나는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오

내 몸체보다 훨씬 큰 집을 등에 업은 채 한평생 지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시오


당신이 보기에는 그저 한심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지금 움직여야만 하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한 순간 갈매기의 밥이 될 수도 있고

곧 밀려오는 파도에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쓸려가니 한 순간도 게을리할 수 없소


그러니 당신은 내 앞길 가로막지 말고 어서 사진이나 찍고 얼른 비키시오

나는 당신처럼 한가롭게 그럴 여유가 없소


당신이 보기에는 내가 한없이 느려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들 세상의 시간이 아닌 나만의 시간과 속도로 깊이 있게 달리고 있는 것이오



믿지 못하겠다면 보시오 내가 지나 온 자리를

모래 위에 깊이 굴곡진 내 삶이 보이시오?


나는 한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았소


아쉽지만 내가 이룬 삶의 흔적이 파도에 의해 자비 없이 사라질지라도

나는 단 1초도 쉬지 않고 움직일 것이오

그것이 내 숙명이기에...

그러니 너무 안타까워마오


아~하! 그래도 다행히 당신과 나의 삶에서 공통점은 하나 있소

잠시 내가 온 길을 다시 한번 자세히 보시오


어떻소?


당신과 나의 삶 속에서 고속도로처럼 쉽고 빠르게 온 구간은 별로 없소

언제나 작은 변곡점들이 하나하나 모여 있는 게 삶이요


직진으로 가면 편하지 않겠냐고 묻고 싶소?

나라고 왜 그러고 싶지 않겠소

그러나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소

때로는 나 보다 큰 조개를 만나기도 하고 자갈도 만나기도 하오


굽이 굽이돌고 돌아오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니겠소


이만 나는 저 물이 들어오기 전에 다시 가야겠소

당신도 떠나기 전에 당신 삶의 방향대로 가고 있는지 되돌아보시오 그리고 계속 가시오


마지막으로

잊지 마시오 '시간은 상대적이란걸... 그래서 조금 느리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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