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음의 힘'을 기대해 보며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독서를 하다 보면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본 듯, 답답했던 마음 한구석을 톡톡 건드리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받는 작은 위안 말이다. 나에게는 박준 시인의 문장이 딱 그렇다. 그의 문장은 요 며칠 심란한 마음을 달래준 유일한 친구가 되어 내 마음속으로 슬며시 젖어든다.
십이월 산문 <계절 산문 / 박준>
삶이란 것이 혹은 계획이라는 것이 늘 마음처럼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바람'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루어진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테니까요.
(중략)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음의 바람'과 '삶의 현실'과 '인간의 말'은 서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멀지 않음의 힘'으로 우리는 더 멀리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역시 오래된 저의 바람입니다.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는 것보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고 느껴질 때, 몸과 마음이 더 지쳐가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이런 일상의 반복이 화석처럼 굳어버린 '삶'의 본질을 한참 전에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나지만, 자식에 대해서는 아직 알아야 할 게 훨씬 더 많이 남았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요즘 나의 궁금함은 '왜 가끔씩 남의 자식이 부러울 때가 있을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게는 휴식 같은 직장 내 친한 팀장이 한 명 있다.
Y팀장에게는 늦게 결혼해 힘겹게 얻은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올해 중학생이 된다. 아쉽게도 공부와는 이미 담을 쌓은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오직 게임에만 몰두한다고 하죠. 그는 그동안 아들이 게임이라는 개미지옥에서 벗어나도록 온갖 솔루션을 시도해봤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남은 건 아들과의 불신뿐이라며 연신 한숨과 함께 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그런 그에게 나는 한없이 의미 없는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그 정도면 게임을 무척 좋아하는 거니까, 진로를 아예 그쪽으로 생각해 보는 게 어때? 게임도 많이 해본 사람이 새로운 아이템으로 기획도 하고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러게요. 그럴까 생각 중이긴 해요."
"살다 보니, 어떤 게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맞아요, 그 말이 맞죠."
반대로 그가 나에게 묻는다.
"팀장님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들었는데, 참 부럽네요."
"아주 열심히 하지. 대견해. 그런데 갑자기 멘붕이 왔나 봐. 다 그만두고 싶다고 하네. 그냥 응석 부리는 게 아니라서... 갑갑하기만 해. 말도 못 걸겠어. 말을 걸더라도 어떤 말로도 녀석에게 도움이 안 되니까..."
"나는 팀장님이 부럽기만 한데요."
"그러게, Y팀장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또 다르네... 나는 우리 아들이 너무 높은 목표를 세우다 보니 스스로를 너무 압박하는 것 같아. 목표와 현실 사이 간극이 너무 커서 엄청난 스트레스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어해서 안타까워. 마음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좋겠는데..."
"나는 S팀장님이 지금 하고 있는 그런 걱정 한 번 가져보는 게 소원입니다."
"아이고, 참 힘드네. 뭐가 맞는 건지 나도 모르겠어..."
나는 Y팀장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아이의 태도와 노력에 대해서는 더 바랄 게 없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대학 간판이 중요한 게 아님을 아들이 빨리 깨우쳤으면 한다.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가려하지 말고,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을 갖고, 본인이 평생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을 우선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 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물론 나도 아들의 나이에 그런 생각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과 그때는 정보의 양과 접근성에서 비교할 바가 아니다.
며칠째 의욕도, 식욕도 잃은 채 멘붕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고교 자퇴생 2만명 시대에 '대학'이라는 족쇄에 갇혀 몸과 마음을 다칠까 하는 걱정이 제일 앞선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704512818
요즘처럼 '평범하게 산다는 게 뭘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런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이것저것 노력하는 18세 아들의 오늘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럽기만 하다. 이럴 때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문장이 아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궁금하다.
나와 아들,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삶은 계획대로 쉽게 가는 법이 없다. 그래서 삶은 힘들지만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말처럼 '바람'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음'을 되짚어 보면 아들은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 드리워지길... 그런 날이 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