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비워야 하는 것은 술잔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물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손이 자주 닿을수록 물건은 빛을 내고 수명은 길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는 점이다. 물론 아무 손이나 되는 것은 아니다. 못된 손이어서도 안 된다. 반드시 사랑의 손길이어야 한다. 사람의 손길은 곧 관심이며, 그 속살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집안 어딘가 구석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떠올려본다. 그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고 지낸 것들. 그런 것들은 십중팔구 머지않아 제 기능을 잃거나, 슬그머니 썩어가거나, 방심한 사이 곰팡이가 꽃을 피운다. 하물며 사람은 어떠한가. 가까이 있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람도 결국 먼지 쌓인 물건과 다를 바 없어진다.
아파트를 분양받아 살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훌쩍 지났다. 10년이란 시간은 멀쩡할 듯한 아파트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각종 전열기기는 고장 나기 시작하고, 가구의 페인트는 벗겨지며, 벽지의 얼룩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제야 한 번 두 번 손길을 준다 한들 이미 골든타임은 한참 지나 있다. 직접 고치거나 교체하기엔 너무 늦었다.
잘 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큰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청소 또한 타이밍이다. 10년 묵은 때를 한꺼번에 벗겨내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몸만 피곤해지고 짜증만 늘어갈 뿐이다. 그럴 때마다 '진작 관심을 갖고 청소라도 할 걸' 하며 후회하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늘 그렇게 반복된다.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이미 한참 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알아채지 못한 건 나였다.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늘 곁에 있어서 몰랐던 그 사람의 존재.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 존재. 손길… 아니,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물건과 마찬가지로 몸에는 각종 질병이 생긴다. 때로는 곰팡이처럼 우후죽순 마음의 병이 생기기도 한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10년 동안 손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아파트처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는 물건과 다르다. 다시 고치거나 다른 부품으로 교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지난 연말도 늘 그랬듯 송년회라는 거창한 연례의식을 어김없이 마쳤다. 역시나 큰 의미는 없었다. 대신 나는 지난 1년 동안 알게 모르게 찌들어 있는 집안 곳곳을 청소하기로 했다. 구석구석, 손길이 닿는 최대한 깊은 곳까지. 눈에는 보이지 않던 먼지는 청소하지 않으면 결국 나 자신과 가족에게 어떤 식으로라도 화풀이할 테니까.
동시에 한동안 잊고 지낸 주위 사람들을 보듬는 시간도 필요했다. 서운했을 수도 있는 사람, 소원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관계 유지로 내가 힘들다면 과감하게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의 손을 한 번 잡아주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쌓아온 마음속 먼지들마저 말끔히 지워버렸다. 지우고, 버리고, 비우고 나니 삶의 여백이 생겼다 새해부터 다시 채워갈 일만 남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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