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자연의 순리라고는 하지만, 아직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건 어색하기만 하네요. 헤~헷"
일 년에 한두 번, 계절이 바뀔 때쯤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내의 친구 부부가 그렇다. 지난 1월 그들의 딸 결혼식장에서 본 이후 거의 일 년 만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만남과 만남 사이를 성큼성큼 건너뛰며 흘러간다.
우리 셋은 동갑내기다. 나와 아내, 그리고 아내의 친구. 친구의 남편은 우리보다 몇 살 위지만, 그 역시 오십 대 중후반을 지나고 있다. 그들의 첫째 아들은 군에서 부사관으로 복무 중이고, 둘째인 딸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월 결혼을 했다. 가끔 전해지는 소식에 따르면, 그 딸이 얼마 전 아이를 낳아 잘 키우고 있다고 했다.
연말을 맞아 두 부부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그동안 묵혀둔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아이들 양육 이야기부터 부동산, 정치, 경제까지. 준비된 레퍼토리가 끝날 무렵 자연스럽게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각자의 관심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아내 친구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댄다. 그녀의 딸에게서 걸려 온 영상통화였다. 화면을 켜자마자 귀여운 아기가 방긋 웃으며 옹알옹알 '할머니!'를 외쳤다. 스피커폰을 통해 퍼지는 그 맑은 목소리에 우리 모두 빵 하고 터졌다. 이어서 옆에 앉은 남편 쪽으로 화면이 넘어가자 이번엔 '할아버지!' 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그 젊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전화를 끊고 난 뒤, 그들 부부는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손자가 이제 막 말을 하려는 듯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단어를 옹알옹알해서 예쁘긴 한데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이 어색하고 적응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그럴 만도 했다. 둘 다 아직 오십 대 초중반이다. 법적으로, 물리적으로는 분명 할아버지, 할머니가 맞지만, 사회통념상 오십 대에 듣는 그 호칭은 여전히 낯설다. 그들은 일찍 만나 결혼했고, 그래서 자녀들도 일찍 성장해서 결혼을 하고, 어느새 그 아이들도 부모가 되었다. 시간은 그렇게 하염없이 흘렀지만, 정작 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마음의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한 듯했다.
옛말에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하늘의 운명을 아는 나이. 그 시절이라면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를 듣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오십은 다르다. 하늘의 운명은 고사하고, 나의 운명조차 아직 모를 판이다. 세상에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고,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해가며, 인간의 수명은 평균 백 세를 바라본다.
이 시대의 오십 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마땅히 해야 할 일도 많은 나이다. 자식에 대한 헌신은 여전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도 중요하게 여기는 새로운 인류, 한 때 X세대라고 불렸던 그들이 이제 오십의 문턱을 넘어섰다. 예전에 없던 오십, 새로운 오십(Young Fifty)이다.
그들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문득 계산을 해봤다.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되면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그것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삶은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그저 흘러갈 뿐이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라고 한 소설가 손원평의 말처럼 말이다.
그날,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누군가는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고, 누군가는 또 다른 변곡점에 서 있다. 비록 호칭은 바뀌어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며, 여전히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중이다. 오십은, 끝이 보이는 나이가 아니라 어쩌면 지난 온 시간을 되돌아볼 중간 지점에 딱 도착한 것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만큼 다시 가야 할 나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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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무사진 : Chatgpt ai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