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플래너가 가르쳐준 것
한 문장 쓰는 데 왜 20일이나 걸렸을까
고민의 시작은 2025년의 마지막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난 후 커피 한잔 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러 스타벅스에 들렀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는 동안 팀원들은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다 채운 e-frequency로 '2026 Planner'를 받아왔다. 스카이블루 몰스킨 한정판이었다. 몰스킨 제품은 손글씨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아이템으로 직접 실물을 보니 종이 재질, 두께, 색상, 촉감 등 모든 면에서 마음에 들었다.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의 스타벅스 구매이력을 살폈지만 3개가 모자랐다. 조금 아깝지만 굳이 다이어리 하나 받자고 마지막날 다 먹지도 못할 커피를 추가 주문하기도 어색해 그냥 마음을 접었다.
이때 곁에 있던 직원이 '팀장님, 이거 한 권 쓰실래요?' 하면서 플래너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이 귀한 걸 나 준다고? 아냐, 집에 가져가서 와이프에게나 주지 그래?"
"우리 와이프는 플래너 같은 거 안 써요. 저는 이거 하나면 되고요. 팀장님 글 쓸 때 사용하세요!"
"나야 고맙긴 한데..."
"부담 갖지 마시고 받으세요!"
"그래, 그럼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게"
그렇게 귀한 한정판 스벅 플래너를 받았다.
그날 집에 돌아와 플래너 겉 포장용 투명비닐을 뜯고 이름과 날짜를 썼다.
그리고, 뽀얀 몰스킨 종이 위에 첫 문장은 정말 멋진 문장으로 꾸미고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곰곰이 문장들을 떠올려봤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의욕만큼 좋은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독서를 하면서 틈틈이 모아 둔 작가님들의 주옥같은 문장파일을 열어봐도 딱 어울릴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멋진 문장을 나 스스로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지난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빈 메모장에 여러 단어들을 열거해보기도 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때로는 손이 가는 대로 끄적여보기도 하고. ai에게도 배경과 취지를 설명과 함께 대화도 해보고 그렇게 하루 이틀... 결국 20일이 지날 무렵 드디어 초안 문장이 떠올랐다. 거기에 더해 나의 필명 '바람아래'가 포함된 문장이었으면 하는 욕심을 더했다. 필명이 들어간 문장을 수십 번 고치고 또 고쳐, 마침내 나온 한 문장.
바람아래 침묵했던 시간은
마침내 귀한 당신을 위로하는 문장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뭐 별거 아닌 문장 하나 만드는데 20일씩 걸렸을까 싶지만 이것의 본질은 '나의 다짐'이자 '나의 흔적, 나의 글 방향'을 한 문장으로 20일 동안 숙성해 담아낸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담아 한 문장을 만드는데 '시간이라는 숙성'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다 보니 그동안 쓴 글들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번처럼 한 문장을 쓸 때만큼 진심이었을까 하는 물음에 깊은 후회와 반성이 따른다. 집이든 도서관이든 책장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은 수십 년 글을 쓴 작가님들 의 인고의 시간이 만들어 낸 결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쓴 글들이 기분, 감정을 여과 없이 걸러 만들어낸 막걸리였다면 이제부터는 조금 더 감정, 감성을 담은 문장을 오크통에서 오랜 시간 저온 숙성한 와인처럼 향기 나는 글로 다시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