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말고사 시험에서 하나 틀린 놈들 전부 앞으로 나와 뒤돌아서 칠판 잡아! 그리고 꾹 참아"
"퍽"
"윽~"
"퍽"
"윽~"
"퍽"
"윽~"
"퍽"
"윽~"
"다음 두 개 틀린 놈들 앞으로 나와서 똑 같이 잡아"
"퍼벅"
"으~악"
"퍼벅"
"으악, 악"
"다음 세 개 틀린 놈들 ~~~ 알아서 좀 나와"
"퍼버벅~~"
"헉, 헉, 크악~"
"네 개 이상 틀린 놈들은 한꺼번에 나와! 시간도 없고 땀난다. 얼른 맞고 점심 먹자!"
"퍼버버~벅"
"꽉 잡고 똑바로 서 안 그러면 다쳐, 인마"
~
나에게는 중학교 음악시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수학 다음으로 음악시간이 싫었다. 일단 시험을 보고 난 뒤 틀린 개수대로 사랑의 매로 둔갑한 선생님들의 매질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시절 우리 학교의 그런 문화에 대해서는 강한 반항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식의 수업에 대해서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았지만 그 두 과목을 과감하게 포기함으로써 정신봉이라는 명분하에 자행된 폭력에 대한 반항의 의사를 표함과 동시에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수학은 무슨 공식이 그리 많은지. 숫자, 기호, 그래프 등에 대한 강한 거부반응 탓에 어쩌면 나는 자연스레 일찌감치 수포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나는 처음에는 음악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다.
매달 오백 원짜리 포켓가요가 나올 때마다 문구점에 달려가 최신 아이템을 손에 쥐었다. 구매 이유는 간단했다. 그걸로 최신가요 가사를 외우기도 하고, 맨 뒤에 붙어있던 주소를 통해 전국의 펜팔을 원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것도 큰 재미였다.
나로 하여금 음악과 거리를 두게 한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음악 선생님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총각 선생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깡마른 체구에 수업 내용은 한번 설명하면 끝이었다. 일방 주입식, 암기식이었다. 이해 안 된 부분에 대한 재설명, 즉 그에게 리바이벌은 있을 수 없었다. 중간고사 때는 교과서에 나와있는 노래 부르기 또는 리코더 실기 시험으로 대체했고 기말고사 때 필기시험 딱 10문제를 출제, 1문 제당 10점짜리. 전 과목 평균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음악이 중요했다.
총각인지 유부남인지 알 수 없었던 그 선생님은 퇴근 후나 휴일이면 동네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소문에 의하면 상당한 당구 고수라서 동네 당구장 VVIP 고객이라는 소문이 학교에서 전설처럼 내려왔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사랑의 매는 아주 반들반들하고 묵직하고 늘씬한 '당구채'였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것으로 허벅지 한 대만 맞아도 피멍은 기본이었고, 두 대 이상만 맞으면 자칫 살이 터질 듯하여 친구들은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해 충격과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묘책들을 동원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잔꾀를 부려봤자 완벽한 선생님의 풀스윙 자세 덕에 묘책 따위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감수성 예민한 중학교 시절 그런 음악시간은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사랑의 매를 맞다 피가 나도 누구 하나 컴플레인을 할 생각도, 저항하지도 못했다. 부모님들은 무조건 너희들이 잘못했으니까 맞는 거지라고 여기는 사회적 관례가 통용될 때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음악이라는 과목 그리고 음악 자체와 오랫동안 작별을 고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2학년이 되자 음악실보다 당구장이 더 잘 어울리던 남자 선생님을 대신해서 천사 같은 여자 선생님이 부임해 왔다. 피아노를 잘 치셨고 첫 발령인지라 남학생, 여학생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렇다 한들 나는 이미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은 상태였다.
그 덕(?)에 고등학교 음악시간도 나에게는 그냥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시간이었고, 귀찮은 과목일 뿐이었다.
과목으로서 음악시간은 지옥 같았지만, 대중가요는 하숙집 형, 기타 치는 친구덕에 가끔씩 듣기도 했다. 그래도 큰 관심은 없었다.
그렇게 음악과 음악시간에 대한 불편한 기억을 오래도록 갖고 살았다.
그러다, 첫 직장을 갖고 회사 일을 한참 배울 때였다. 짧은 시간 안에 멋진 기획안을 제출해야 하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갈수록 퇴근 시간은 점차 늦어졌다. 마감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을까 잠도 오지 않고 불안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아무리 잠들려 해도 잠도 오지 않는 상황, 일찍 사무실에 나가서 밀린 일이나 하자는 마음에 새벽 4시에 텅 빈 사무실에 나와 일을 시작했다. 걸려오는 전화도 없고, 사람도 없으니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일에 집중하려 하니 너무 조용한 탓에 작은 소리에 민감해졌다. 그럴 바에야 라디오를 틀어 놓는 게 낫겠다 싶었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목도 모르고 알 수 있는 것은 그냥 피아노 연주곡이라는 것뿐. 듣기 거북하지 않아 그냥 틀어놓고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신기하게도 꽉 막혀있던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굳어있던 손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피아노곡에 푹 빠졌다. 불안했던 마음이 안정되자 막혔던 고속도로가 뚫린 듯 순식간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는 일을 하다 뭔가 막히고 답답하면 무조건 음악을 듣는 습관이 생겼다.
집에서도 밤에 잠이 올 때나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무조건 음악을 즐긴다. 심지어 지금은 음악 예찬론자가 되었다. 가끔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나처럼 기한에 대한 압박을 받는 동료에게 적극적으로 음악 듣기를 추천하곤 한다.
나에게는 이제 음악 편식도 없다.
클래식, 가곡, 영화음악, 발라드, 트로트, 뮤지컬, Rock 'n' Roll, 헤비메탈, 치유명상음악, 가스펠 등
음악은 감정을 통제하고 그로 인해 경직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킨다. 불안감은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되면서 뇌의 활동이 활발해지는지 새로운 아이디어와 의욕이 솟아난다. 신나면 신나는 대로,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음악은 알아서 사람의 기분에 맞춰 Auto tuning을 해준다. 그러니 음악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만약 내가 당구채 음악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음악과 거리 두기를 했던 긴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벽 4시 텅 빈 사무실에서 나를 구원한 그 피아노 선율의 의미도, 지금처럼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음악은 죄가 없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내가 듣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