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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Mar 14. 2023

난 단지 잘 들어줬을 뿐...

'경청'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나는 평소 누군가의 말을 진중하게 듣는 편인지 자문하면서 두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나는 경기도 연천에 있는 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

내가 상병 분대장을 맡고 있던 어느 날 이병 한 명이 다른 부대에서 전입을 해 우리 소대에 배치 됐다. 소대장은 그 이병(Y)을 어느 분대에 배치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이유는 각 분대장은 이미 Y에 대한 소문('문제사병 또는 관심사병')을 들은 터라 어떤 분대장도 그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를 원하지 안 했다. 결국 분대장중에서 일명 '짬(경력)'이 안 되는 내가 속한 우리 분대로 배치하기로 결정 났다.


Y가 분대에 배치되고 나서 면담을 해봤다. 듣던 대로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초점 없는 눈동자, 어딘가 불안해하는 얼굴빛, 자신감 없는 목소리 그리고 대인 공포증이 있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9시 뉴스에 나올 법한 사건)을 벌여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면담을 끝내고 나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Y와 어떻게 지내야 될지......

당장 그 날밤부터 야간 근무(2인 1조)를 서야 되는 상황, 우리 분대 내에서도 선임 후임병들은 다들 Y를 기피하는 분위기였다. 아무리 군대라고 해도, 저런 경우에 분대장의 권한으로 밀어붙였다가 더 큰일이 벌어질까 걱정스러웠다. 고민 끝에, 나와 Y가 같은 조가 되어 근무를 서기로 했다.


그 와의 첫날밤(?)은 일단 나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Y에게는 간단히 이름과 가족관계 정도의 기본적인 정보만 묻고 첫날의 근무를 끝냈다.

둘째 날은 첫날 보다 조금 더 많은 대화

셋째 날부터는 Y에게 더 많은 발언 기회를 주면서 근무를 했다. 그날부터 Y의 목소리 톤이 조금씩 밝아지는 느낌을 미세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넷째 날은 표정이 이전 보다 조금 밝아지고

다섯째 날은 둘째 날에 비해 훨씬 많은 말을 Y 스스로가 하고 있었다.

여섯째 날부터는 야간 근무뿐만 아니라 내무반 생활을 하는데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주일째 되던 날부터는 다른 분대원, 소대원과도 조금씩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되어 갈 무렵, Y는 전입할 때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져 더 이상 과거의 '관심사병'이 아니었다.


내가 Y를 위해 해준 거라고는 둘째 날부터 그 친구에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그동안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냥 들어준 것뿐이었다.


몇 달이 안되어 Y는 일병으로 승진을 했고, 그 밑으로 후임병도 받게 됐다. 그런데, 후임병이 생기자 Y는 후임병을 알뜰히 챙기며 내무반 생활, 훈련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관심사병이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내가 제대하던 날 Y는 내게 와서 씩씩하게 "충성! 분대장님! 전역을 축하드립니다"하고 경례를 했다. 위병소를 떠나는 내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웠다. 가끔 Y가 생각이 난다. 지금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군 제대를 하고, 복학할 무렵 내게도 시련이 다가왔다.

별 어려움 없이 성장했던 나에게도 집안에 여러 문제들이 생겼고 대학 학업을 마쳐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주위에 복잡한 내 심경을 마땅히 들어줄 사람도 없었다.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있을까 하고 방황할 때, 내 전공과목도 아닌데 교양과목으로 듣던 사회복지과 모 교수님은 많은 힘이 되어주셨다.


당시 그 교수님은 나를 상당히 의아스럽게 생각하셨다. 사회복지 전공 학생들이 주로 듣는 수업에 타과 전공자가 수업을 듣고 있었으니 이상하게 보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교수님의 수업은 항상 밝고 긍정적이셨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친 교수님께 다가가 내 소개와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상담신청을 했다. 그 교수님께서는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다.


상담이라고 해야 나무그늘 벤치에 앉아 내가 처한 상황을 한 시간 넘게 주저리주저리 나 혼자 일방적으로 마음속 심정을 털어 내는 게 고작이었다. 내 말이 끌나 갈 무렵, 그동안 답답했던 내 마음도 이미 어느 정도 누그러져 있었고,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했다. 중간중간에 교수님은 "그랬구나, 힘들었겠구나" 이 정도의 리액션이 전부였다.


상담 말미에 나는 교수님께 "교수님! 이럴 때 저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하고 물었더니, 교수님은 "지금 본인이 답을 다 말했네, 네가 생각하고 지금까지 한대로 그렇게만 해"하고 어깨를 토닥토닥 다독여주셨다. 그날 그 상담 후 정말 오랜만에 마음의 짐을 벗어던진 느낌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Y와 나에게는 우리들의 말을 그냥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 우리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지금 시대에는 어느 조직에서나 speaker는 정말 많은 것 같다.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말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자기주장이 많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Good Listener가 필요하다. 나는 기꺼이 Good Listener가 되고 싶다. 특히,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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