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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Mar 24. 2023

진짜 맛 집의 자격

방송 따위는 필요 없다. 오직 맛으로만 승부한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우리 가족의 아침 루틴은 조금 다른 면이 있다.

눈을 뜨자마자 배꼽시계는 긴 밤 공복에 짜증이라도 난 듯 밥 달라고 정확하게 울려댄다. 그래서 평상시 일어나자마자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도 어떠한 형태의 아침 한 끼는 반드시 챙겨 먹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일명 '국밥 Day'이다.

여유로운 주말 아침, 평소 보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퉁퉁 부어있거나 부스스 한 얼굴로 오늘 소개할 이 국밥 집을 자주 찾곤 한다. 사실 남들은 주로 "브런치 먹으러 갈까?" 이러는데 우리는 "국밥 먹으러 갈까?"가 토요일 아침 인사가 된 지 오래다.


 브런치 작가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음식 이야기는 절대 쓰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그러나, 결국 이 맛난 국밥을 전국적으로 알리지 않는 것은 브런치를 구독하는 많은 독자들과 작가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드디어 작심하고 이 집을 소개한다.


국밥집 이름은 '두꺼비 식당', 옛날 삽교역 앞에 있는 아주 허름한 외관의 노포

우리 가족이 자주 가는 이 집은 가수 조영남 님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삽교(일명 삽다리)에 있다. 우선, 나무로 된 뻑뻑한 식당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련 내내 연탄난로가 제일 먼저 손님들을 맞이한다. 여름을 제외하고는 그 연탄난로 위에는 항상 노란 양은 주전자에서 보리차가 온기를 뿜어내곤 한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뭐 이런데가 식당이야'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메인셰프는 뽀글이 파마를 하고 약간은 무뚝뚝한 표정의 사장님. 그러나 보기와는 달리  인정 많고 늘 친절하시다. 그리고 그 옆에서 서빙을 담당하시는 얼추 봐도 거뜬히 여든의 나이가 무색하게 활동하시는 할머니 웨이트리스가 한 분 계시고 바쁠 빼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는 장남으로 보이는 듬직한 남성, 그리고 그분의 아내로 보이는 여성분이 함께 일 손을 돕는다.


이 집의 주 메뉴는 단연 '빨간 소고기 국밥'이다.

엄청 매울 듯 해보이는 강렬한 빨간색이 식욕을 돋운다. 갈기갈기 쭉쭉 찢어 넣은 소고기와 그 위에 두꺼운 겨울 이불처럼 덮여있는 노란 계란 고명이 이 집 국밥의 시그니처다. 


거기에 손 수 만든 각종 밑반찬으로 상을 내시는데 계절에 따라 김장김치, 열무김치, 파김치와 콩나물 등 그때그때 상차림은 다르다. 얼마 전에 갔을 때 파김치가 제대로 익어 감칠맛이 극에 달 해 있었다. 국밥 한 숟가락 위에 얹은 파김치의 조화는 그야말로 '천상의 맛'. 이 정도면 국밥 자체로도 이미 어나더 레벨, 평범하고 소박해 보이는 사장님 표 직접 담근 김치며 갖가지 반찬의 맛도 훌륭해 소고기 국밥의 풍미를 한 것 높여준다.


국물 맛은 보기와는 다르게 맵지 않아 아이들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맛있게 맵고, 딱 알맞게 간이 맞다. 살짝 띄워져 있는 고추기름은 쓱쓱 썰어 넣은 파를 완벽하게 감싸줘 파의 알싸한 맛은 잡아주고 고기 육수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그리고 한 숟가락씩 떠먹기 딱 좋게 적당히 데워진 뚝배기 속 국밥은 첫 숟가락질이 시작되면 그 바닥이 보일 때까지 한시도 멈출 수 없다. 이 정도면 얼큰, 시원, 개운한 맛의 향연이다. 


우리 가족은 10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오는 날부터 이 집의 단골이 되었다.

우리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부터 다녀서 우리 가족을 잘 알고 계신 사장님은 늘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이 집은 우리 가족 외에도 근처 공단으로 일하러 다니는 근로자, 들과 밭에서 농사짓는 농부들에게 이미 찐 맛집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요즘처럼 먹방이 성행하고 맛집 소개가 많은 시절에 이런 집이 각종 SNS 등에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는 그런 소문을 타고 각종 예능이나 TV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서 방송 촬영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는 사장님의 말을 들었다.


매번 그 집을 갈 때마다. 사장님과 우리의 인사와 주문은 늘 이런 식이다.

"오늘은 왜 아들 안 데려 왔어?"

"아들이 이제 중2라 안 따라다녀요!"

"그 집 아들 엄청 많이 컸던데, 여기 처음 왔을 때는 쪼끄만 얘기였는데, 이제는 장정 다 됐어"

"세월 빠르죠! 하하"

"국밥 먹을 거지?"

"네"


늘 우리가 먹던 대로 국밥을 주문하면 채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오랜 세월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사장님의 투박한 손으로 직접 여러 번 잘 토렴 된 국밥 두 그릇이 테이블 위에 놓인다. 그러면서 약간은 무뚝뚝해 보이는 사장님은 "요새는 여기저기 방송국에서 촬영하자는 데 다 거절했네, 얼마 전에는 젊은 아가씨들이 와서 먹어보더니 원래는 포장 안 해주는데 사정사정해서 그냥 포장해 줬어. 그런데, 글쎄 그 아가씨들이 방송국 작가 들이었나 봐 그래서 그게 어느 테레비 프로에 나왔어. 그걸 또 어느 단골손님이 우리 국밥인 거 알아채고 TV에 출연했냐고 대뜸 묻는 거야 "하며 묻지도 않은 말을 툭 건네셨다.


툭 던진 사장님의 말씀의 진의는 이랬다. 

방송을 통해 알려지게 되면,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을 텐데 그렇게 되면 본인도 힘들고, 우리 같은 단골손님들이 편하게 식사 한 끼 하기 힘들어질까 봐 단골들에게 미안해서 방송은 사양한다는 말씀이었다. 그 외에도 방송으로 알려지게 되면 초심도 잃고 맛도 잃을까 걱정도 되신다는 사장님의 뒤 이은 말씀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현실적으로 내가 보기에도 사장님 본인도 연세가 많으시고, 같이 일하시는 할머니는 그 보다 더 연로하셔서 그분들이 감당하기에는 물리적으로도 힘드실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저런 이유를 종합해 보면 실제로 내 생각에도 방송출연을 사양한 사장님의 의견에 100% 공감한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늘 점심과 저녁 시간에는 손님들로 부쩍 거린다.


그런 사장님 덕분에 먹는 우리들이야 편한 시간 아무 때나 가서 한 그릇 뚝딱 편하게 해치우고 온다지만, 1년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사장님은 찾아오는 단골들을 위해 정성스레 맛을 낸다. 그래서, 이 뚝배기 한 그릇의 국밥은 그냥 국밥이 아니다. 하루종일 공장에서, 논과 밭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 길에 쓴 소주 한 잔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지친 이들의 허기와 시름을 달래게 해주는 그야말로 '인생국밥' 그 이상이다.


TV에 방송된 집이 맛집이 아니라, 늘 한결 같이 오랜 단골들을 위해 진심으로 요리하는 이런 사장님과 식당이 이 시대의 진짜 맛집이 아닐까......


오늘 메뉴는 국밥 어떠신가요? 저는 오늘 이 집 국밥으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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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7월 두꺼비식당이 멀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재오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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